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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갈수록 진화하는 '악마의 목소리' 보이스 피싱

입력 2013-12-22 20:33 수정 2013-12-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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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TV 오락 프로그램에 고정 코너까지 등장한 보이스피싱, 그런 어설픈 속임수 전화에 왜 넘어갈까 하고 의아해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매일 20명이 피해를 보고 있고 자살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의 실태를 박성훈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고객님 되시죠? 지금 저희 쪽에서 확인해 본 결과 고객님은 보증서 발급이 충분히 가능하시구요. 대출 실행이 가능하실 겁니다. 일단 저희 쪽에서 고객님 거 조회 후에 금액과 금리 뽑아드릴 거구요.]

누가 봐도 금융기관 직원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정돈된 음성.

[저희가 일단 본인 인증하면서 이쪽으로 신용 조회 할 건데요 인증번호 6자리 한번 불러주시면 되시구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도탄에 빠뜨린 악마의 목소리,보이스피싱입니다.

경남 김해시 장유면. 4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잊지 못합니다.

[이웃주민 : 2년인가 3년동안 모았던 돈이 보이스피싱으로 두 차례 자기 계좌에서 빠져나간 거지….]

21살 여대생의 등록금 640만원을 앗아간 건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절망감에 여대생은 목숨을 끊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만 흘립니다.

[피해자 어머니 : 시간이 그만큼 지나갔는데도….]

광주의 한 아파트. 지난달 29일 5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졌습니다.

[이웃주민 : 보이스피싱인가 그거에 그랬는 가 보더만.]

수소문해 집을 찾은 취재진은 부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 편씨가 휴대폰 명의를 빌려줬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당했던 것.

[고 편모씨 부인 : 중국 그런 데다가 국제전화를 많이 써가지고…요금이 1000만원이 나와버렸대. 이런 억울함을 어디다… .]

기초생활수급자였던 편씨가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고 편모씨 부인 : 다 안 된대요. 그러면 살 수가 있겠어? 이 아픈 사람 데리고 다니면서….]

갚을 길이 없어 몇 달을 고민하던 편씨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단란했던 한 가정이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고 편모씨 부인 : 이렇게 가야 쓰겠소. 이 세상을…. 우리 아저씨가 없으니까 내가 이러고 다녀야 되겠소.]

인터넷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넘쳐납니다.

평생 청소로 모은 돈 8천만 원을 날린 아주머니, 출산 비용으로 모아온 2천만 원을 날린 아기 엄마, 전세자금을 날려 이사도 못가는 40대 가장까지.

보이스피싱 피해가 처음 발생한 2006년 이후 7년 동안 피해자만 4만5천 명, 피해액은 5천억 원에 달합니다.

[김동성/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3대 팀장 : 개인의 어떤 정보라도 전화 상으로 혹은 인터넷으로 알려주길 요구하는 경우 반드시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해봐야 합니다.]

수 많은 경고가 나왔지만 아직도 매일 20명의 사람들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 : 고객님 신용등급에 비해서 평점이 많이 떨어졌어요. 이거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편법인데….]

[앵커]

사건을 취재한 사회부 박성훈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박 기자, 아직도 이렇게 보이스피싱 피해가 많이 발생하나요?

[기자]

네, 보이스피싱이 오래 전부터 일어난데다 수법도 많이 알려져 안 당할 것 같지만, 새로운 수법으로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계속 피해자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렇게 속을 수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은 계속 남는데요.

[기자]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피해자들을 만나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 함께 보시죠.

[최대한 힘을 써서 대출이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리는 부분인데 이것만 처리해주시면 30분 내로 송금이 되시는데.]

51살 김모씨는 이 목소리에 속아 1800만원을 날렸습니다.

시작은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고 건 전화 한 통.

[김모씨(51)/보이스피싱 피해자 : 일반 상담사처럼 그렇게 진행을 하더라고요. 일반 대출해주는 기관같은 데서 그렇게 해요. 어느 정도 얘들은 아는 애들이야.]

사채까지 쓰고 있던 김씨는 2천만원을 빌려준다는 말에 의심없이 신원보증료 30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러나 대출은 되지 않았습니다.

[김모씨 : 나 자신도 어떤 생각도 안 나는 거예요. 평상시에는 이렇게 저렇게 물어도 보고 알아도 보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 도달하니까 그런 게 잘 안 되더라고요.]

다음날, 취재진과 함께 있던 김씨에게 또다시 보이스피싱 사기범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김모씨/보이스피싱 사기범 :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데 안 되시고요.) 대출금이 안 나오니까 나도 참 막막하잖아요.]

김씨를 속게 한 결정적인 미끼는 팩스로 날아온 대출상담사 증명서. 증명서에 나온 실제 인물을 찾아가봤습니다.

[박모씨/실제 대출상담사 : (주민번호는 맞으세요?)틀려요. 이런 거 딱 보면 조잡하잖아요. 이거 스캔했네. 제가 이런 건으로 3건 전화받았어요.]

취재진은 보이스피싱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박모씨/가짜 대출상담사 : (JTBC 박성훈 기자입니다. 성함이 XXX라고 하셨죠?)
네. (본인이 맞으십니까?)….]

지난달 9일, 서울 용산의 한 오피스텔. 사무실 집기라곤 칸막이 책상과 컴퓨터,구형 휴대전화뿐입니다.

그런데 곳곳에서 발견되는 개인 금융정보들, 보이스피싱 범죄 현장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경찰의 협조를 얻어 사무실에서 나온 압수물을 면밀히 확인해 봤습니다.

노트북을 열자 파일이 빼곡합니다.

'50만 개', '3만 장'. 모두 개인정보였고, 해당 대부업체만 알 수 있는 대출정보까지 다 갖고 있습니다.

수법이 고스란히 담긴 수십 개의 보이스피싱 대본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등급이 낮다고 꼬투리를 잡으라"고 지시하고 "대출이 안 되시니까 은행 거래내역을 봐야한다"며 유도한 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불이익은 가지 않는다"며 상대를 안심시키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직원용 대본을 따로 만들어 양쪽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피해자를 이중으로 속이고 있었습니다.

한 번 통화한 뒤 피해자의 성향까지 일일이 기록하며 관리한 사실도 충격적입니다.

빼낸 돈과 이름이 빼곡히 적힌 장부. 서민들의 피와 눈물이 얼룩져 있습니다.

[태모씨/검거된 보이스피싱 총책 : 아주 소규모예요, 나 같은 경우는 구멍가게라고 보시면 되는데 대형 크게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지금.]

[앵커]

은행과 신용보증기관 직원으로 사칭해 여러명이 전화를 걸어오면 정말 속기 쉽겠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거기에 범죄자들이 해킹으로 개인 대출정보를 빼낸 뒤에 범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관을 사칭해 접근하면 두려움까지 겹쳐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 못하는 거죠.

[앵커]

그렇다면 뭔가 철저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자]

물론 당국은 계속 대책을 내놓습니다. 문제는 범죄자들이 그 대책을 오히려 역이용한다는 겁니다. 금융기관과 당국은 뛰고 있는데, 범죄자는 날아다니는 셈이죠. 이 내용 함께 보시죠.

[국제금융사기집단을 검거했는데요, 현장에서 김XX 명의로 된 농협은행 계좌하고 하나은행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냈기 때문에 연락드린 겁니다.]

[하나은행이거나 농협은행을 거래한 적은 있습니까?]

[하나(은행)은 없어요.]

[다른 계좌가 발견됐을 경우에는 저희가 불법 계좌인 줄 알고 동결 정지시켜도 괜찮으시죠?]

[아, 그래요? 그러면 잠깐만요. 또 어디가 있었지? 우리, 국민, 제일….]

[만일 진술한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위증죄와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네.)]

[집에서 간단한 인터넷 접속같은 거 가능하시죠?(네)]

[아, 지금 컴퓨터 앞으로 가라구요?]

중국 동포의 억양이 묻어나는 목소리. 누가 속을까 싶지만, 자신이 범죄자로 의심된다는 얘기에 34살 주부 정모씨는 당황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카드 대출이 이뤄졌고 1800만원이 날아갔습니다.

[정모씨(34)/보이스피싱 피해 주부 :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 나한테 불이익이 온다…카드기 가서 시키는 대로 통화를 하면서 누르는 거예요. 이상하다 하면서도….]

취재진은 보이스피싱의 진원지를 추적해 봤습니다.

부산에 사는 피해자 24살 김모양이 은행에서 받은 IP주소를 조사해보니 중국 베이징으로 나옵니다.

집단 소송을 하고 있는 피해자 일부의 사례 역시 전부 중국으로 드러났습니다.

8800만원을 뜯긴 대기업 임원 A씨의 계좌 접근 정보.

중국 베이징의 한 컴퓨터에서 지난달 30일 새벽 1시부터 5분 간격으로 손을 뻗쳐왔습니다. 그리더니 1시간 동안 4번 돈을 집어 갔습니다.

B씨의 계좌 역시 지난 10월 22일 새벽, 국IP가 계속 침입해 20번에 걸쳐 3400만원을 빼갔습니다.

[이준길/변호사 : 100%가 중국 컴퓨터예요. 그렇다면 그렇게 반복되는 어이없는 사건이 있으면 당연히 이체 금지를 시켜놔야죠.]

당국은 이 같은 수상한 접근에 대비하라는 주문을 해놓은 상태.

[금감원 보안팀장 : 금융회사들이 이상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방안을 마련했었습니다.]

하지만 B씨 돈이 들어있던 증권사에 확인한 결과, 중국에서 들어온 수상한 접근을 놓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박OO/OO증권 전산팀장 : 새벽에 일어난 부분이라 그것은 저희가 발견을 못 했어요. (근무자가 없었던 건가요?) 네, 근무자도 없었고요.]

지난 9월에는 본인이 지정한 컴퓨터로만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를 비웃듯, 중국의 사기범들은 자기가 예금주인 것처럼 컴퓨터를 지정한 뒤 유유히 돈을 가져갔습니다.

[이모씨(30)/보이스피싱 피해자 : 걔네들이 두 번을 PC등록을 했던 기록이 있더라고요. 이게 나중에 보니까 중국 IP로 나오더라고요.]

당국은 예금주가 아예 중국의 접속을 원천 차단하도록 은행에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보이스피싱이 심각해지자 중국 공안당국도 칼을 빼들었습니다.

지난 9월 중국 샤오싱시에서 90억 원대 보이스피싱 범죄단이 체포됐습니다.

[전국 8개의 성에서 은행카드 1호 사건을 수색했다. 그 중 피해자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고 태국 사람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재판에 넘겨진 8명은 한국인.

한국인이 한국인을 뜯어내는 범죄가 중국 공안당국의 수사를 받는 국제 망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앵커]

이젠 중국의 수사까지 받는 망신을 당하는군요. 더 철저한 대책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성훈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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