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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2회] 전화기 뒤에서 매 맞는 텔레마케터

입력 2014-02-16 23:02 수정 2014-02-1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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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탐사플러스가 한 직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가혹 행위가 찍힌 동영상을 입수했습니다.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전부 여성입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나 싶을 정도인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박소연, 손용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해 4월.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한 여성이 소리칩니다.

[여기 다 모여.]

다른 여성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자, 뺨때리기 10대씩 때려. 때려, 빨리.]

그러자 직원들은 구호와 함께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합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하지만 강도가 약하다며 더 강하게 때리라는 주문이 들려옵니다.

[빨리 때리라니까.]

지목 당한 여성은 점점 더 세게 뺨을 때립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그 때 명령을 하던 사람이 직접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가 때려줄게.]

맞을 때마다 구타의 충격으로 온몸이 휘청거리지만

[똑바로 서!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습니다. 매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자녀를 둔 여성인 듯, 부모답게 행동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부모답게 굴어. 빨리 오더 해. 한 시간 내로. 파이팅 해. 맞을래?]

믿기지 않는 화면 속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폭행이 일어난 회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회사 측은 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경찰에 가고 나서 그 때 알고 있었죠. 그 전에는 몰랐었고.]

취재진은 영상 속에서 매를 맞던 여성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30대와 40대 여성 네 명이었습니다. 폭행 사실에 대해 묻자 처음엔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합니다.

[권00/피해자 : 과연 우리가 맞은 것에 대해 불쌍하다고 해줄까. 오히려 나를 바보로 보지 않을까.]

여성들은 텔레마케터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영상 속에서 때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팀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박00/ 피해자 : 이 영상은 팀장이 절 때린 것의 100분의 1도 안돼요. 방망이로 진짜 사람을 미친 듯이 때리고 사람을 저기서 저기까지 사람 머리를 다 흐트러질 정도로 쓰러질 정도로. 영상이 다 그거예요. 매출 없으니까 때려. 진짜 그거예요.]

실제 취재진이 입수한 또다른 영상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사무실에 들어선 여성이 다급하게 우산을 찾습니다.

[0이잖아. 우산 가져와, 우산. 빨리. 우산 없어? 빨리 우산 찾아.]

두려움에 질린 직원들이 급하게 우산을 찾아 건넵니다. 우산을 찾은 건 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러려고. 이러려고.]

우산을 쥐고 사정없이 여성들의 얼굴과 머리를 때립니다. 폭행의 이유는 매출 부진 때문인 듯했습니다.

[팀 매출이 0이라는 게 너무 화가 나는 거야. 사람 취급을 안 받아야지만 서로가. 서로가.]

우산이 펴져 얼굴이 찔릴 듯한 상황이 벌어져도 폭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진짜 화가 나는 거는 팀매출이 0인데 전혀 개념이 없는 거야. ㅇㅇ ㅇㅇ아. 내가 벌금 때문에 화내는 거 같애? 인식해, 안 해? 해 안해?]

대답하지 못한 직원은 다시 우산으로 맞습니다.

[니네 지금 얘네 따라 간 이유가 뭐야? 응?]

매질이 이어지자 몸을 움츠려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둘이 6시 반까지 오더해. 팀매출 팀매출. 빨리 둘이 하면 100만 원이잖아. 6시 반까지 오더 안 나오면 다 죽여버릴테니까. 그만해! 나약한 짓.]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전화 드린 곳은….]

[앵커]

취재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박소연 기자.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죠?

[기자]

네 지금 보여드린 건 일부분일 정도로 상당히 폭행이 많았습니다.

[앵커]

피해자들이 텔레마케터들이라고 했는데 저렇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참는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가 않네요.

[기자]

저희도 영상을 처음 입수하고 그 상황이 연출이 아닌가도 의심할 정도였는데요. 왜 저렇게 폭행을 당해야 했는지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준비된 영상 좀 더 보시겠습니다.

지난해 5월. 사무실에서 다시 폭행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벌 서, 벌 서. 빨리.]

그러더니 옛날 군대에서나 있을 법한 오리걸음을 시킵니다.

[맞을래?]

신발끈을 매는 것도 버거워 보입니다.

[이 악물어. 진짜.]

그런데 이렇게 동료들이 가혹 행위를 당하는 동안에도 한 명은 전화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3800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잖아요. 워낙 저렴하니까 부담 없이 보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박00/ 피해자 : 속으로는 정말 미치죠. 그 다급한 마음을 숨기고 저는 오더를 해서 줘야 다른 애들 벌이 끝나잖아요.]

텔레마케터들이 처음부터 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권00/ 피해자 : 지금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당시 마음이 뭔지 모르겠는데 제가 말씀드렸지만 저한테는 저를 위해서 살아라 한 사람이 그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오히려 주위에서 부러워했던 팀이었습니다.

[고00/다른 부서 팀장 : 그 쪽은 일을 잘 하는 것 같다. 단합이 잘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되게 부러워했어요. 부러워하는 팀 중에 하나였어요.]

실적도 뛰어났습니다.

[안00/퇴사자 : (회사 내에서) 걔 말이라면 신적인 존재였어요. 다른 팀이 못하는 몇 배의 계약을 하니까. 결과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니까.]

그러나 텔레마케팅 실적이 올라갈수록 팀원들이 느끼는 업무 강도는 점점 세졌다고 합니다.

[정00/해당 팀 전 직원 : (팀장이) 자기 오더를 시키면서 더 심해졌죠. 2007년 제가 나올 때도 되게 심했거든요. 개인 할당량이 10개, 11개였으니까. 집에 설날하고 추석만 가고 토,일요일 놀지 못하고.]

모든 것이 실적으로 평가 받으면서 해도 해도 실적 스트레스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직원들은 왜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던 걸까. 계약직이면서도 팀 단위로 실적을 평가받는 업무 특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00/ 다른 부서 팀장 : 저희는 대리점이에요. 건물만 빌려 쓰고 있는 거예요. 각각의 대리점 안에서 직원들만 관리하고 내가 (다른 팀) 관심을 둘 필요는 없죠.]

그러다보니 가혹 행위도 단체 기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김00 팀장 : (실적) 빵 치는 사람 한 명이라도 오늘 밖에 계속 서 있을 거다. 밖에 네 명다 서있어. 알겠지? 지금 이런 거 못 봐.]

한 명이 퇴사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다른 팀원들에게 지워졌다고 합니다.

[박00/피해자 : 너 그만두면 다른 사람 다 자르겠다고. 니가 쟤네 인생 책임지라고.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다 사람이 얘기 못하게 끔 분위기를 몰아가요.]

무엇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터를 박차고 나가기엔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이00/ 피해자 :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조금만 더 참자. 그렇게 하면서 왔던 시간이 이렇게 된거지. 제가 지나왔던 시간을 돌아보면 그냥 일만 했어요.]

[권00/피해자 : 저는 나이가 있잖아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더 절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00/피해자 : 제가 참았던 이유는 뭐냐면 반드시 나는 학원을 할거다. 내 일에 대해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한 거예요.여기서.]

이러는 사이 이들 텔레마케터 사이에선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무감각해졌는지 모릅니다.

사무실을 나서며 팀장은 직원들에게 스스로 뺨을 때리라고 말합니다.

[이따 올테니까 그때까지 해. XX는 오더 내자 10대.]

명령대로 여성들이 자신의 뺨을 때립니다.

[오더 내자. 오더 내자.]

자신의 뺨을 10대 때린 직원은 다시 수화기를 붙듭니다.

[뚜. 뚜. 뚜. 뚜.]

여성들은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면서 결국 지난해 6월 회사를 나왔다고 합니다.

[이00/피해자 : 저희가 참다 참다 6월 25일 남들은 그냥 그만뒀다 생각하지만 저희는 창살 없는 감옥에서 뛰쳐나온 거예요.]

아직도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이00/피해자 : 그 사람이 나한테했던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까 그게 계속 불면증으로 이어지더라고요. 3달, 4달 가까이 되다가.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보기 위해 피해자들과 함께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권00/피해자 :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지속된 가혹 행위로 인한 정신적 충격은 무척 큰 듯했습니다.

[최명기/심리센터연구소장 : 사람이 맞게 되면 아무 생각도 못해요. 며칠동안. 멍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거기에다 그동안 했던 게 아까웠다는 부분. 서로 고립이 되면서 이 세 분 네 분이 보호해주는 관계가 된 거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어떤 심리가 됐냐면 나 혼자 빠지면 나머지 사람들이 고생할텐데… 굉장히 분노와 우울 상태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정신과적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앵커]

박 기자, 텔레마케터만의 고충이 있다고 쳐도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팀장이라는 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네요.

[기자]

네 저도 팀장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간단하게 통화가 된 뒤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폭력 사태를 둘러싸고 양쪽 모두 상대방을 고소하면서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 내용 조금 더 보시죠.

무자비한 폭행과,

[때려. 빨리.]

온갖 욕설.

[빨리 벌 서. XX들.]

그리고 가혹행위까지.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오지만 인생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

매를 맞은 여성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팀장은 어떤 입장일까. 취재진은 팀장과 직접 통화를 시도해봤습니다. 팀장은 오히려 자신이 공갈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김00 팀장 : 그분들이 공갈을 하셨어요. 저한테. 명예훼손이 아니고. 그분들이 공갈하고 그런 걸로 제가 고소를 한 상태거든요.]

하지만 폭행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김00 팀장 : (팀장님께서 폭력을 가했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건 사실인가요?) 그거는 만나뵙고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건데.]

취재진은 어렵게 팀장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전 이사를 떠난 상황.

[이웃 주민 : (얼마 전에 갔어요, 이사? ) 얼마 안됐어요. 1~2주도 안됐어.]

다시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도 남겼지만 아무런 답변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담당 변호사 사무실도 찾아갔지만 만날 순 없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 : 제가 전해드릴게요. 연락처 주세요.]

몇 시간이 지난 뒤 팀장의 담당 변호사로부터 "사법기관에서 판단할 것이므로 반론할 게 없다"는 짤막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취재진은 폭행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을 했지만 팀장과 변호인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현재 팀장은 폭행 피해자들을 명예훼손과 공갈 협박으로 맞고소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매를 맞은 여성들은 억울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권00/피해여성 : 대질 때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했다는 게 설마 쇼겠냐 생각했지만은 그럴 수도 있는 애라서 저희도 걔가 어떻게 사용할줄 몰라서 저희도 음성을 땄지만, 그걸 가지고 그렇게 이용했다는 건 어차피 처음부터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회사는 이들에게 벌어진 가혹 행위를 정말로 몰랐을까?

취재진이 확보한 또 다른 영상입니다.

[김00 팀장 : 10분 동안 서 있으세요. 5시에 내려 오세요.]

팀장의 명령에 따라 직원들이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갑니다.

잠시 뒤 사무실에 들어온 한 남성에게 팀장이 말을 건넵니다.

[김00 팀장 : (이제) 내려보내주세요 애들.]

사라졌던 여직원이 나타나고 팀장의 질타는 계속됩니다.

[김00 팀장 : 9층 올라가 본부장 옆에 서 있는 거 부끄럽잖아.]

해당 본부장은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본부장 : 제가 관리할 수 있는 직원이 아니고 개인사업자 본인이 직원을 뽑고 직원을 관리하고. 저희들은 업무적으로 출퇴근이나 그런 것만 관리했지, 내부적으론 안 했습니다.]

본부장은 이 사건이 소송으로 번지면서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됐고 그 때서야 사내 폭행을 알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본부장 : 아쉽고 안타깝고 그래서. (폭력을) 알고 무마했다면 벌을 받았을 수 있을텐데 진짜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였고.]

그러나 피해자들은 회사에서도 폭행 사실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6월 팀장의 폭행으로 해당 여직원이 회사를 무단 결근한 사흘 뒤 본부장과 통화한 내용입니다.

[본부장과 여직원 통화 내용 : 요즘도 때려? (무슨 요즘도 때려예요. 계속 때렸는데.) 그 전에는 때린 거 아는데. 요즘에는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회사 측에도 법적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이성우/변호사 : 당연히 회사 측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이런 부분은 사실은 학대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는 거라서 회사 측이 단지 몰랐다는 걸로 면피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만해도 희망차게 출발했던 여성들의 인생은 이미 악몽으로 변했습니다.

[권00/피해자 : 술직히 제일 걱정되는 건 10년을 정말 열심히 살았다. 뭔가가 바뀔 수 있을까 열심히 살았는데 그냥 그 10년 자체 시간도 없어진 거예요. 저 한테는. 다시 일을 해서 빨리 하면 되겠지 했는데 내가 이제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폭행과 명예훼손 여부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텔레마케터들에게 가해졌던 가혹 행위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지, 아니 이 순간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앵커]

결국 더 정확한 진실은 법적 절차를 따라 밝혀지기를 기대해 봐야겠네요. 박 기자, 수고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곳곳에서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저희 탐사플러스는 또 새로운 현장을 취재해 다음 주 일요일 10시에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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