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긴급출동] '이산가족 상봉' 응답없는 북한…애타는 실향민

입력 2014-02-03 08:18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이번 설 연휴 동안 이산가족들은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보냈을까요? 우리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북한은 일주일째 묵묵부답입니다. 북한이 정치적 계산을 하는 사이에 이산가족의 속은 타들어갑니다. 이들의 애타는 심정, 오늘(3일) 긴급출동에서 들어봤습니다.

한영익 기자입니다.

[기자]

[장춘/이산가족(83세) : 내가 83살이예요. 19살에 집을 떠났어요. 70년 가까이 만나지 못하다가 처음 상봉하니까 얼마나 반가울 거야.]

한국 전쟁 당시 가족들과 헤어진 장춘 할아버지.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재회 3일 전에 상봉이 무산됐습니다.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어야 간신히 걸어다닐 정도입니다.

[장춘/이산가족(83세) : 이제 담담하죠. 한 번 그렇게 속았으니까. (안된다.) 이야기를 들어도 담담해요.]

다른 이산가족들도 북한의 소극적 자세가 아쉽기만 합니다.

취재진은 지난해 9월 최고령 상봉자로 뽑혔던 93살의 강능환 할아버지를 만나 봤습니다.

그는 63년 전 이북에 두고 온 부인에게 주려고 선물을 한가득 준비했습니다.

[강능환/이산가족(93세) : 그 때 준비한 게 한 보따리 되는데 전부 처분했죠. (상봉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참 답답하죠.]

상봉 대상자로 뽑히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 합니다.

시각 장애 2급인 조장금 할머니의 보물 1호는 잘 보이지도 않는 수십 년 전 가족 사진입니다.

[조장금/이산가족(82세) : 이게 내 보물이예요. 나는 재산이 이것밖에 없어요. 둘째 언니는 짓궂고 심술이 있고 못됐어요. 반찬이 입에 거의 들어간 걸 뺏곤 했어요. 그래도 그 정이 더 그리워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언니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할머니를 더 절박하게 만듭니다.

[조장금/이산가족(82세) : 죽기 전 고향이라도 한 번 가서 언니들 없으면 조카 피붙이들 냄새라도 맡고 싶어요. 어떨 때는 울고 싶어도 못 울어요.]

지난해 선정된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의 평균 연령이 85살, 이 중 27명이 90살이 넘습니다.

한 분은 그 사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의지가 있는 걸까.

지난 1월 1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연이어 평화 공세를 취한 북한은 지난 25일엔 우리 정부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까지 수락합니다.

[조선중앙TV/지난달 24일 :우선 올해 설 명절을 계기로 북남 사이에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 행사를 진행하자는 것을 남측에 제의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2010년 10월을 마지막으로 3년 넘게 중단됐습니다.

김정은 취임 이후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키는 등 대남 초강경 노선을 이어온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취재진이 북중 국경지대를 가본 결과,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 측 경비가 한층 강화된 모습이었습니다.

경제적인 고립이 이어지면서 국경지대에선 북한 주민들은 물론, 군인들도 구걸과 밀수에 나선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애초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금강산 관광 재개와 연계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입니다.

[김용현/동국대 교수 :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이 북한 쪽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렇게 시간만 흐르는 사이 이산가족들은 애가 탑니다.

매번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추첨에 탈락한 송창수 할아버지.

60년 전 고향 개성에 두고 온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송창수/이산가족(83세) : 96년 12월 26일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 5살이었던 막내 동생이 지금도 눈에 아른 거립니다.

[송창수/이산가족(83세) : 죽기 전에 동생 만나봤으면 소원이 그거밖에 없어요. 이렇게 평생 만나지 못하는 동생을 왜 때렸나 하고 (후회돼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물꼬가 트여, 지금까지 이산가족 2만 1천여 명이 직접, 또는 화상으로 그리운 가족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중단됐고, 이후 남북한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부침이 심했습니다.

지난해 9월엔 만남 사흘 전에 상봉이 결렬되기도 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수락한 북한이 우리 측의 구체적인 일정 제의엔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이 자신들의 치부를 쉽사리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박건하/NK지식연대 사무국장 : 북한으로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부담이죠. 북한 사람들이 회담에 나오려면 얼굴도 통통하게 만들어야 되고 사상 주입도 시켜야 하니까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이거죠.]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강일/옌벤대 교수 :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가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구축할 때 의미가 있다. 한국이 북한만 기다리면서 신뢰 쌓겠다면 그 프로세스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관련기사

'이산가족 상봉' 응답 없는 북한…실향민들의 '애타는 설' 북한까지 불과 1.8km…'평온 속 긴장' 최전방 설맞이 정부 "북한 이산상봉 진정성 보여야…핵무기 진전 유감" '2월 상봉' 제안에 여전히 침묵…남북 실무접촉 무산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