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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SK는 왜 대포폰을 만들었나

입력 2014-09-23 23:46 수정 2014-09-2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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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SK는 왜 대포폰을 만들었나

보이스피싱, 대출 사기, 성매매 등 각종 불법 행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포폰. 남의 명의로 개통했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범죄 집단이 아닌 국내 이동통신 1위 SK텔레콤이 속한 SK그룹의 계열사인 SK네트웍스가 불법 대포폰 10만 여대를 만든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SK네트웍스는 SK텔레콤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유통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LG에서 폰을 구매한 다음 이를 SK텔레콤 소매점에 재판매하는 것이지요. 직영점과 대리점 운영도 했는데, 이 부분은 올해 초 SK텔레콤에 매각을 했다고 합니다.

대구지검 강력부는 SK네트웍스 직원 2명을 구속 기소했고, 팀장급 간부에 대한 구속영장도 최근 청구했습니다. 또 조만간 경영진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검찰이 개인 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는 '자금'입니다. 검찰은 대포폰 양산에 들어간 40~50억 원이 SK네트웍스의 돈이었고, 개인 횡령이 아니라는 근거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만들어진 대포폰이 시중에 유통되지는 않은 점, SK텔레콤에서 SK네트웍스에 개통 수당을 지급하면서 비용을 보전해 준 측면도 고려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흔히 '강력부'라 하면 마약 범죄가 떠오르는데 왜 여기서 대기업 수사를 하는 것일까.

대구지검 강력부는 대구경북 지역 일대의 대포폰 조직을 일망타진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붙잡은 피의자들로부터 대기업 SK가 비용까지 들이며 대포폰을 만들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겁니다.

검찰에 따르면 전형적인 대포폰 양산 수법이 사용됐는데요. SK네트웍스도 적발이 어려운 선불폰을 이용해 대포폰을 만들었다는게 검찰의 설명입니다.

선불폰 가입자 명의로는 주로 외국인 명의가 도용됐습니다. 국내에 잠깐 머물면서 선불폰을 이용한 적 있는 외국인들의 정보를 불법 도용한 것입니다. 외국인이 "왜 내가 가입자냐", "명의도용이다" 등 문제 제기를 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점을 노렸습니다.

검찰이 지금까지 확인한 대포폰만 지난 4년 동안, 10만여 대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대구경북 지역서만 이 정도니까, 전국적으로 보면 수십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두 번째 궁금증. 그렇다면 SK는 왜 대포폰을 만들 걸까.

검찰은 "SK네트웍스의 대포폰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고, 같은 명의로 선불폰이 일정 간격을 두고 재개통 돼왔다"며 시장 점유율 방어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올 7월 기준으로 SK텔레콤의 가입자 점유율은 50.1%. 여기서 0.2%만 떨어져도 50% 선이 무너집니다. 현재 이동통신 가입자가 5천 6백만 명이니까, 0.2%면 약 11만 명입니다.

이통 시장에서 50%를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고, 요금을 올리려면 미래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등 각종 규제가 더해집니다. 업계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1위 사업자라는 시장의 가치 때문에 50%는 중요하다. 이 수치가 낮아지면 경영 실패가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SK텔레콤이 관련사인 SK네트웍스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불법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SK텔레콤 관계자에 대한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대기업이 대포폰 양산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SK네트웍스 측은 "수사가 진행 중이고 직원이 구속된 것은 맞다"면서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SK텔레콤 측은 "시장점유율 지키려고 대포폰 양산을 지시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다"며 "SK네트웍스의 대포폰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오히려 수십억 원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기자는 수도권 최대 케이블사업자 씨앤앰(C&M)이 다양한 수법으로 약 28만 명의 가입자를 뻥튀기한 의혹에 대해 취재수첩을 썼습니다. 유료방송와 이동전화 모두 국내의 한정된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것이겠지만, 기업들이 너무 쉽게 불법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JTBC 정치부 봉지욱 기자 bongga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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