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취재수첩] 눈물바다가 된 KBL 신인 드래프트장

입력 2014-09-18 17:55 수정 2014-09-18 17:57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프로농구 KBL 신인 드래프트가 지난 17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드래프트 참가자는 39명. 세 줄로 정렬된 의자에 앉아 이들이 기다린 건,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살짝 주먹을 쥔 모습이었습니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 한 올 한 올 다 느껴졌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오늘 하루로 이들은 자신의 지난 20년 인생을 평가받고, 남은 수 십년 인생이 결정되니까요.

39명의 면면을 보니 대학선수들이 대부분이고, 일반인 트라이아웃을 거쳐 선발된 외국 교포선수 2명과 선수 경력이 있는 일반인 2명이 있었습니다. 오늘을 기다리며 고민 끝에 골랐을 것 같은 정장과 유리처럼 투명하게 반사되는 구두. 선수들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이번 드래프트엔 많은 구단이 탐내는 유망주들이 나왔습니다. 전 구단이 '혹시나' 싶어 유니폼까지 준비해왔다는 고려대 이승현(오리온스 1순위 지명), 죽지 않을 만큼만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죽을 만큼 연습했다는 연세대 김준일(삼성 2순위 지명), 게다가 KCC 허재 감독의 아들로도 유명한 연세대 허웅(동부 5순위 지명) 등인데요.

그런데 자식을 프로선수로 키워낸 선수 부모의 표정이 왠지 환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원하던 팀에 보내지 못해 아쉽고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20년간 한 길만을 달려온 아들의 노력이 첫 결실을 보던 날에조차, 웃지 못한 부모. 그만큼 가슴을 졸였고, 눈물을 쏟아냈던 겁니다.

5순위까지 마친 드래프트. 6순위 차례가 됐는데, KGC에 지명된 선수가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제2의 김태술'이라는 연세대 김기윤은 "아직도 밤늦게까지 못난 아들 뒷바라지해주시느라 "라고 고생 많으십니다. 말하며 입술을 떨었습니다. 생중계 중인데 한참이나 정지화면처럼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본 어머니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조용히 흐느꼈고, 그 옆의 아버지도 주름진 볼 위로 눈물을 떨궜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눈물은 더 잦아졌고, 부모들의 눈물은 더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부모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선수들은 행복한 선수들이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드래프트 장에 '000 선수 가족' 명찰을 달고 와서, 행사 내내 눈을 감고 기도를 했지만 끝내 호명되지 않은 선수들과 그 가족들은 위로하며 체육관을 떠났습니다. 서로 선택받지 못한 18명 선수들은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농구밖에는 몰랐던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 드래프트 전에 실시 됐던 일반인 트라이아웃에서 만난 강효종씨는 대학까지는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첫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했고, 이듬해에는 2군 드래프트에서도 탈락했습니다. 결국 군 복무까지 마친 뒤 지난 4일 일반인 트라이아웃에 나왔지만, 그마저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신인 드래프트가 시작된 이래 모두 623명의 선수가 도전장을 던졌지만, 1, 2군을 합쳐 356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확률은 57% 정도 됩니다. 게다가 지난해까지 5년간 실시 됐던 2군 드래프트마저, 참가구단 감소로 결국 폐지됐습니다.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선수들에겐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요. KBL 관계자한테 물어보자 "탈락선수 중 일부는 운이 좋으면 초중교 코치로 가기도 하고, 피트니스센터 트레이너로도 좀 가고, 일반 영업직으로 진출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애써 미소 지으며 선택받은 친구들을 축하하던 탈락선수들을 보자, 얼마 전 해체한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진작 은퇴했어야 할 선수였지만 고양 원더스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던 한화 외야수 송주호. 삼성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가 방출된 뒤, 특전사를 다녀와 고양원더스를 통해 다시 프로 무대에 입성한 경우입니다. 물론 이젠 고양원더스도 없습니다.

2군 리그를 만드는 것도, 독립야구단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KBL이나 KBO, 구단들만 힐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농구의 리바운드처럼, 축구의 세컨드 볼처럼,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할 기회는 꼭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츠에도, 세상 어떤 일에도.

스포츠문화부 송지영 기자 jydreams@joongang.co.kr

관련기사

[취재수첩] "케이블방송에도 호갱님 즐비"…방통위, 씨앤앰 조사 착수 [취재수첩] KBS 길환영 전 사장, 박 대통령과 소송전 [취재수첩] 대한민국 영주권 5억원에 세일하는 정부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