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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L의 운동화'는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입력 2016-06-0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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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사이즈 270mm. 삼화고무가 생산한 흰색 타이거 운동화.

한 짝만 남은 그 하얀 운동화는 밑창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운동화는 정확히 29년 전인 1987년 오늘 전투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청년, 이한열이 거리에서 신고 있었던 유품이었습니다.

청년은 그날 그 거리에서 단단히 끈을 조여 매고 신었던 운동화를 잃어버렸습니다.

"운동화가 있어야 집에 갈 텐데…"

누군가 병원으로 찾아와 건네주었던 그 운동화… 그러나 운동화의 주인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사람들은 부서진 운동화를 복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루처럼 바스러진 밑창을 다시 이어붙이고 소설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그렇게 다시 살아난 운동화에는 21살 젊은이의 땀과 체취. 걸음걸이와 운동화 끈을 매는 습관. 그날의 매캐한 최루탄 내음까지 그대로 배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운동화를 보면서 제각기 다른 기억을 떠올립니다.

"나는 꼭 오래오래 살아서 오래오래 아들을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어머니.

청춘을 빼앗기고, 용서를 강요받고, 시간마저 재촉당하고 있는 소녀들.

그리고 끝까지 꿈을 놓지 않았던 19살의 그 청년.

"그러니까 L의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면서…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

작가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기억해야 하는 그의 운동화 한 짝.

270mm짜리 작은 운동화의 복원이 단지 시대의 기억을 소환해내는 일에 그치지 않음을… 87년 6월. 그날을 통과했던 이들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일임을.

다시 세상에 나온 운동화는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L의 운동화는 세대를 걸쳐 다시 복원될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복원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지금도 L의 운동화는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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