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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어떻게 저항했나…평화시위 '찬란한 유산'

입력 2016-12-09 16:46

이화여대에서 최초 대학가 시국선언…각계로 확산

추운 날씨에도 중·고교생, 가족 단위 자발적 참여

사상 최초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입건자는 '0'

일상 속 시민 저항도 동력, 결정적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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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서 최초 대학가 시국선언…각계로 확산

추운 날씨에도 중·고교생, 가족 단위 자발적 참여

사상 최초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입건자는 '0'

일상 속 시민 저항도 동력, 결정적 장

촛불은 어떻게 저항했나…평화시위 '찬란한 유산'


촛불은 어떻게 저항했나…평화시위 '찬란한 유산'


촛불은 어떻게 저항했나…평화시위 '찬란한 유산'


촛불은 어떻게 저항했나…평화시위 '찬란한 유산'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탄핵안 가결의 일등공신은 정부도 정치권도 아니었다. 매주 광화문 광장 등에서 촛불을 밝혀온 시민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분노한 시민들은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고 또 외쳤다. 정치권이 외면하기에는 민심은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였다.

특히 시민들의 지치지 않은 다양한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촛불민심의 불을 붙인 것은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계기가 됐다. 대학가 시국선언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가 속해있는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개별 학교 단위 중에는 최초로 발표했다.

학생들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자녀가 이화여대에 부정입학하고 온갖 비상식적인 학사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며 "이번 사태는 헌정사상 최악의 국기문란·국정농단이다. 심지어 대통령은 스스로 불법 문건 유출과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을 인정했다. 어떻게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학생들도 나섰다. 학생들은 '선배님, 서강의 표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선배님께서는 더 이상 서강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십시오"라며 "비선실세의 권력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국기를 흔드는 현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후 한양대, 건국대, 경희대 등을 비롯해 전국 유수 대학의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이어갔다. 지난달 25일부터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동맹휴업으로 퍼져나갔다.

대학가에서 촉발된 시국선언은 노동계, 종교계, 여성계, 문화계를 비롯해 정치에 둔감한 청소년들에게까지 확산됐다. 최순실 게이트와 박 대통령 퇴진 촉구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시국선언 바람은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촛불집회가 회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참여는 더욱 늘어났다. 분노한 민심을 박 대통령과 정치권이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차 주말 촛불집회는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주최 측 추산 2만명(경찰 추산 일시점 최대 1만2000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박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다음날인 지난달 5일에는 2차 주말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이번에는 주최측 추산 20만명(경찰 추산 일시점 최대 4만5000명)이 참여했다. 한 주만에 참가인원이 10배가 늘었다.

이때부터는 행진대열이 종로나 명동 등 서울 도심을 지나면 인근에 있던 시민들이 합류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친구, 연인과 함께 자발적으로 퇴진 요구에 동참했다.

3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달 12일에는 100만 시민(경찰 추산 일시점 최대 26만명)이 광장에 운집했다. 한 주 뒤인 4차 주말 촛불집회에선 수능을 마치고 참여한 고3 수험생들과 청소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앞선 집회에서 모금한 돈으로 지방 학생들이 서울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광버스를 대절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지난달 하순 들어부터는 영하권 추위 속에 눈과 비까지 내리는 '날씨 변수'로 시민의 참여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지만 기우일 뿐이었다. 지난달 26일 5차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서울 150만명, 지방 40만명 등 전국에서 190만명이 참여했다. 역대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1987년 '6월 항쟁'(140만~180만명 추산)의 기록을 넘어섰다.

끝일 것 같았던 기록 경신은 바로 일주일 뒤 한 차례 더 이뤄졌다. 이달 3일 진행된 6차 촛불집회에서는 서울 170만명, 지방 62만명 등 전국 232만명이 촛불을 밝힌 것이다. 경찰 추산도 서울 32만명, 지방 10만9000여명으로 전국 43만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평화시위는 이번 촛불의 가장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광장 내 촛불의 크기가 커지면서 경찰과의 충돌·대치를 비롯한 안전상황에 대한 우려도 높아졌다. 하지만 폭력 대신 평화의 물결이 자리를 잡았다.

이런 평화시위 기조는 중·고교생은 물론 가족, 연인, 친구 단위의 참여가 큰 원인이 됐다. 행진이나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 폭력이나 도발 등의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폭력", "평화집회" 등을 외치며 다독였다.

역사상 최초로 청와대 100m 앞 지점까지 벌이는 행진에도 불구하고 불법시위로 경찰에 입건된 참가자는 없었다. 다민 일부 시민과 경찰관이 탈진 증상 등으로 병원에 이송된 정도였다.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경찰이 세운 차벽에 '꽃모양'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경찰도 고생한다" "저들이 저러고 싶어서 저러고 있겠나"라며 경찰관과 의무경찰 대원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경찰 버스 등 차벽에 붙인 스티커를 손수 제거하기도 했다.

시위 때마다 각종 풍자와 패러디도 만발했다. 단순히 울분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머'로 승화시키며 참가자들은 '웃으면서 분노하는 법'을 터득했다.

생계문제로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일상 속 '저항행동'도 한몫했다. 각자 일상생활 속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든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 진행 중인 '집 앞에 박근혜 퇴진 현수막 걸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 사진 바꾸기', '퇴진 시 00하겠다 등 공약 만들기'와 함께 '1분 소등 및 경적 울리기', '박근혜 퇴진 조기(弔旗)걸기' 등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성 투쟁이 촛불민심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0일로 예정된 7차 촛불집회는 대통령 퇴진 외에 보다 구체화된 요구와 논의가 오가는 투쟁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탄핵안 가결을 시민들이 직접 일궈낸 '시민 혁명'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승리감과 해방감을 만끽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될 전망이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다하더라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치'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만든 주범 처벌, 정책 폐기, 총리 및 장관 즉각 사퇴 등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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