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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정책이 마주치기 쉬운 함정, 양극화

입력 2020-03-09 10:42 수정 2020-06-05 10:5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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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6)

2018년 연말부터 이듬해까지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집회가 있었습니다. 노란 조끼(Gilets Jaunes) 집회입니다. 프랑스에선 화물차든 승용차든 사고에 대비해 자동차에 형광 노랑의 조끼를 의무적으로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왜 자동차에서 이 조끼를 꺼내 입고 거리에 나왔을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정책이 마주치기 쉬운 함정, 양극화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탄소세'의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탄소를 배출하는 일에 세금을 더 부과하겠다는 거죠. 탄소 배출량을 억제하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유류세의 경우, 2018년 디젤은 23%, 휘발유는 15%를 인상시키고, 2019년엔 추가로 더 높일 거라는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이 정책으로 당장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서민들이었습니다. 우선 파리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와 같은 전세 개념도 없을뿐더러, 파리의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 하는 서민들이 많습니다. 정부가 월세의 일정부분을 보조금(현지에선 Allocation이라고들 부릅니다.)을 지급하기도 하지만 가족 단위의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선 시내에 집을 두기가 매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파리 시외 근교에서 거주하며 시내로 출퇴근을 합니다. 파리의 경계선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지내려고 해도 월세는 매우 높습니다. 요즘의 시세는 잘 모르지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한 달에 300~400유로 가량의 월세를 내고 20제곱미터(약 6평)의 방에서 지낼 정도였습니다.

집이 시내라면 촘촘하게 이어진 지하철과 버스, 벨리브(서울의 '따릉이' 같은 공유 자전거) 등을 이용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지만 교외, 그것도 도시 경계선과 꽤 떨어진 곳에 살수록 자동차는 필수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의 선택은 주로 작고 낡지만 실용적인 '디젤 해치백'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정책이 마주치기 쉬운 함정, 양극화 노란조끼 시위에 마크롱 대통령은 '소득세 인하' 카드를 꺼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 그래도 유류세를 올리는 게 치명적인데 휘발유는 15%, 디젤은 23%를 올린다고 하니 서민들에겐 더 가혹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보다 극단적으로는 배신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진보적 성향일 거라 믿고 뽑은 대통령이었기에 한 번, 경제 부양을 위해 기업들에겐 여러 세제 혜택을 주려던 와중에 나온 정책이었기에 또 한 번.

그런데, 이렇게 세금을 활용해 에너지의 사용량이나 탄소 배출량을 억제하는 방법은 비단 프랑스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정부가 가장 손쉽게 수요를 조절하는 대표적 방법이죠. 전기요금을 올리거나 유류세를 올리면 당장 사용량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통제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한겨울, 유럽에서 많은 이들이 집에서도 스웨터 같이 두터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보다 유독 더 지구를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비싼 비용 탓에 절약을 하게 된 것이죠. 결국엔 '스윗 스팟(Sweet Spot)'을 찾는 것이 관건일 겁니다. 적당히 소비를 줄이면서도 크게 불편이 발생하지 않는, 생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점을 찾는 것 말입니다. 시민사회와의 소통 없이, 공감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되는 정책의 결과는? 프랑스에서 이미 우리는 그 답을 봤습니다.

기후변화,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에 있어 가장 맞닥뜨리기 쉬운 것은 바로 '양극화의 심화'입니다. 기후변화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정책이 마주치기 쉬운 함정, 양극화 평균기온 1도 상승이 1인당 GDP에 미치는 영향. (자료: IMF 세계경제전망보고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이를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기온 상승이 농업과 제조업의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리게 되는데, IMF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일수록 농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크다"며 "선진국 내에서도 낙후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후변화로 똑같이 기온이 올라도 빌딩숲의 도시가 받는 영향보다 논, 밭, 공장 등이 있는 도시가 받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겁니다. 경제규모나 인프라에 따라 국가간 양극화도 심각해지지만, 한 나라 안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분석입니다.

IMF는 농업, 임업, 광업, 제조업, 건설업, 운송업 등을 기온상승에 악영향을 받는 산업 분야로 꼽았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낙후지역에서의 노동생산성이 2100년 2~3%포인트 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기후변화 자체를 인지하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양극화를 피하기 어려울 거라는 우울한 전망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정책이 마주치기 쉬운 함정, 양극화 RCP 시나리오에 따른 낙후지역의 노동생산성 저하량 (자료: IMF 세계경제전망보고서)


"기후변화로 사회적 양극화까지 심해지겠어?"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마스크의 가격을 보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쉽게 구할 수 있던 마스크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매점매석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끝을 찾기 어려울 만큼 긴 줄을 선 우리 시민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민들은 또 다른 양극화와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리 지구를 걱정하고, 그래서 보다 '친 지구적' 소비를 하고 싶어도 금전적인 부담이 커지는 경우입니다.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소비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 바로 전기차입니다. 전기차의 가격은 여전히 동급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쌉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그 보조금의 수준이 해외보다 많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격 측면에선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기후변화 정책이 마주치기 쉬운 함정, 양극화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 (자료: 현대자동차)


환경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개편(이라고 쓰고 '축소'라고 읽습니다)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코나 일렉트릭'입니다. 출시가격은 트림에 따라 4690~4890만원으로, 옵션을 더하다 보면 5600만원을 훌쩍 넘어갑니다. 정부 보조금 820만원에 지자체 보조금 400만원(세종시)~900만원(전북)을 더하면 최소 1220만원에서 1720만원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실제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차량 가격은 3900만원~4400만원이 되죠. 가격으로만 보면, 아반떼 급의 자동차를 옵션 충분히 선택한 그랜저 가격으로 사는 셈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를 예로 들어서 그럴 뿐, 다른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가성비'로는 기존의 자동차를 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전기차 타이칸을 출시한 포르쉐는 애초 "우리의 고객층은 '책임감 있는 부유층'으로 테슬라와 명확히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모델 라인업의 3분의 2가 1억원 넘는 차량으로 구성된 테슬라인데도 말이죠. 테슬라의 '의문의 1패'입니다.

"전기차는 연료비가 적게 들어 상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행거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5~10년 가량 운행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득을 보고 미리 수천만원을 더 쓰는 결정을 내리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전기차 충전요금의 '정상화(라고 쓰고 인상이라고 읽습니다)'로 인해 5~10년이라는 시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전기차의 충전요금은 기본요금과 사용요금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현재 기본요금은 '면제'이고, 사용요금은 '50% 할인'인 상태로 현재 전기차 운전자들은 킬로와트당 평균 64원을 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2년 7월까지 이를 정상화 할 계획입니다. 기본요금은 100% 다 내고, 50% 할인 받던 요금도 다시 100% 다 내야하는 겁니다. 사용자 입장에선 '요금 정상화'로 느껴지기보단 '요금 상승'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도 '스윗 스팟'을 찾는 일이 중요할 겁니다. 요금이 정상화되는 속도와 전기차의 판매가격, 보다 정확히는 전기차의 제조원가가 낮아지는 속도가 잘 맞아야겠죠. 차량의 가격이 지금처럼 고공행진을 유지하는데 정부만 보조금을 줄이고 요금을 올리면(물론, 요금을 정상화하는 것이겠지만) 그 결과는 '친환경차 보급 목표 달성 실패'로 돌아올 것입니다.

전기차의 예가 참 '배부른 예'로 느껴질 만큼, 기후변화는 경제뿐 아니라 식량안보에도 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앞선 취재설명서들을 통해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단순히 몇몇 전문가들만 그런 전망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연구기관과 다수의 전문가들이 우려한 것이죠. 경제 전반의 위기 속에서, 그리고 원초적인 식량 안보의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체감하는 것은 취약계층일 것입니다. 취약계층의 피해는 곧 우리 사회 전반의 흔들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 시민들의 부담은 최소화하는 일, 분명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범부처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을 하고 있고, 전문가와 시민사회를 모아 포럼도 만든 것이겠죠. 부디 지구의 상처도 최소화하고, 시민사회의 상처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에서 모든 정책이 시작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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