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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정부 대책 살펴보니…웃다 울다

입력 2020-02-24 11:00 수정 2020-06-05 10:54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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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

최근 환경부가 지난해 핵심 정책들을 평가하고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과 그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항상 하던 일'이라고 보기엔 반성도 앞으로의 계획도 남달랐습니다. 어떻게 달랐던 걸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정부 대책 살펴보니…웃다 울다


과거 정부가 기후변화 정책에 대해 반성보다는 칭찬과 격려로 일관했던 것을 취재설명서를 통해 꼬집기도 했죠.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해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기후대응 주무부처로서 기후정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범국민적인 실천을 견인하는 리더십 역할이 미흡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진단을 내렸습니다. "최악의 폭염, 기록적 한파 등 기후위기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으나 우리나라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 속도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 산업구조 변화 등 경제·사회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나 국민 개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움직임은 부족하다." "주요 선진국은 '넷제로(탄소 순배출 0) 선언' 등 기후대응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껏 석 달 넘게 취재설명서를 써오면서 가장 뭉클했던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살펴보면서 갑자기 맥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럼 그렇지"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말이죠.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에 서명한 195개 나라 중 하나입니다. "2100년까지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묶자"고 약속한 겁니다. 단순히 선언적인 합의가 아니라 195개국이 모두 약속을 지켜야 하는 최초의 글로벌 기후합의입니다.

그리고 2018년, 바로 우리나라 송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선 이 '2도 이내'라는 것도 위험하기에 1.5도 이내로 묶자는 보고서도 만장일치로 채택됐습니다. 총회의 개최지가 한국일뿐 아니라 IPCC의 의장 역시 한국인입니다. 2도 시나리오, 1.5도 시나리오에 대해선 앞선 취재설명서들을 통해 상세히 설명해드렸기에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정말 큰일납니다!" 한 마디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파리협정에 서명한 나라들은 올해 안에 감축 계획안을 유엔에 내야 합니다. 이름하야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s, LEDS)'입니다. 이미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14개국이 계획을 공식적으로 제출 완료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정부 대책 살펴보니…웃다 울다 주요 국가들의 LEDS 목표 (자료 : 환경부)


뿜어내는 탄소의 양도 많지만 그 분야도 다양하다보니 이 계획을 만드는 일은 여간 복잡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을 만들었는데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비상에 걸렸던 이달 초, 이 포럼이 검토안을 내놨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 100여명이 9개월 동안 머리를 맞댄 결과는 어땠을까요. 여기서 나온 제안을 토대로 범정부 협의체와 대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정부안의 초안이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보니 이 포럼의 제안은 곧 '대한민국 탄소 저감 정책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죠. 첫 단계인 만큼, 포럼은 2050년 목표로 1에서 5안까지 다섯 가지 안을 내놨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정부 대책 살펴보니…웃다 울다 (자료 : 환경부)

 
가장 강력한 '축'에 속하는 1안의 감축률은 75%, 5안은 불과 40%에 불과합니다. 이미 제출을 마친 주요 국가들의 감축계획과 비교해보면 미미하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단순히 감축률만 낮은 게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안인 1안조차 프랑스(1억 3200만 톤), 캐나다(1억 4600만 톤), 영국(1억 6천만 톤)보다 많습니다. 그나마 '중간 안'이라고 정한 3안의 경우에도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경제활동도 활발한 독일(2억 4400만~2억 6100만 톤), 일본(2억 6800만 톤)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IPCC가 내놓은 시나리오(AR5, 인당 배출량)에 맞추려면 우리나라는 2050년 1억 1400만~1억 4300만 톤을 뿜어내야 하는데, 1안조차도 이를 충족시키지 못 합니다. 지금은 환경단체들만 우리 정부를 향해 '한국은 기후악당'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불과 30년 후면 국제사회가 우리를 기후악당이라고 부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포럼은 100여쪽의 보고서에서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비전으로 "저탄소 사회 전환과 지속가능한 탄소중립 국가경제 구현"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포럼이 내놓은 안으로는 이 비전은 그저 말뿐인 비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선 포럼의 최대 감축안인 1안의 배출량(1억 7890만 톤) 만큼 추가 감축이 필요하다." "포럼 논의 결과, 탄소중립 목표는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국민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게 포럼이 내놓은 결론입니다.

사실상 '2050년 탄소중립'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보니 발표 직후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민간 차원의 검토 결과를 정부의 제안한 것"이라며 "아직 확정된 정부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실시하고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안을 올해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도 했고요.

얼핏 '더 강력한 감축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몇 주 전, 장관을 비롯한 정책 담당자들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답은 어땠을까요. 앞선 두 번의 경험을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를 통해 답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봄, 미세먼지 대란 때 '대기정체 문제는 해결할 계획이 없는지' 물었을 때 "아직 과학적으로 대기정체의 기여도가 나오지 않았다. 정책으론 시기상조"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고농도 때마다 "대기정체에 국외 미세먼지가 유입되면서 농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을 내놓은 국가기관은 과학적이지 않았나 봅니다.

올해 뉴욕에서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개최된 이후 '프랑스를 비롯해서 유럽이 탄소 국경세를 논의중인데, 우리도 대응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지' 물었을 때 "이들이 말하는 탄소 국경세는 다 레토릭"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만에 유럽에선 새 EU집행위원장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본격적인 추진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탄소중립에 대해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는데, 그럼 언제쯤 실천할 수 있는지'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탄소중립이 현실성은 적지만 지향할 방향으로 포함해줄 것을 부탁해놨다. 올해 정부안을 논의할 때 공식 제안엔 포함하지 않더라도 국민적 논의 대상엔 포함할 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충분하다면, (탄소중립을) 목표로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2020. 2. 6, 조명래 환경부 장관)

"포럼에서 제시한 비전을 보면, 탄소중립이라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 목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탄소중립 시점을 그럼 언제 할 거냐는 부분에 대해선 논의가 열려있다. 사회적 합의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논의될 수 있는 것이고, 국민이 원하시면 되는 것이다." (2020. 2. 6, 황석태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내놓는 것이 정부의 할 일입니다. 그렇다보니 서두에서 설명했듯 환경부는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해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되돌아봤죠. "기후대응 주무부처로서 견인하는 리더십 역할이 미흡했다"고 반성했던 부처이기도 하고요. 과연 이 자리에서도 "국민이 원하면 되는 일"이라며 책임을 미뤘을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이 같은 답이 책임을 미룬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서 그 자신감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 계획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시민들이 원한다고 했을 때, 정부는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어떤 방향을 제시하게 될까요.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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