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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그들에겐 '위기'뿐일까

입력 2020-08-24 09:04 수정 2020-08-24 12:5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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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0)

어느덧 매주 기후변화, 기후위기에 대한 연재를 이어온 지 40주가 됐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떠올릴 때마다 미안해지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들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태어나 '걱정 없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것'은 단 한 순간도 할 수 없게된 아이들 말이죠. 그 미안함에 연차를 사용하든, 아이가 태어나든, 명절이 찾아오든, 몸이 아프든 쉬지 않고 누구도 시키지 않은 연재를 이어오는 걸지도 모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그들에겐 '위기'뿐일까

영국의 기후변화 NGO '카본브리프'는 세대별로 뿜어온(혹은 뿜어낼 수 있는) 탄소 배출량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지구가 품어줄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한정되어 있죠. 누군가 많이 뿜어냈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덜 뿜어야만 합니다. 카본브리프는 "아이들은 조부모 세대가 뿜어냈던 것보다 8분의 1 수준으로 뿜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뿜어낼 수 있는 탄소의 양이 2/3도 채 되지 않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평생 1인당 300톤 넘는 온실가스를 뿜어낸 것에 비해 X세대는 200톤 안팎만 뿜어낼 수 있는 거죠. 그나마 밀레니얼(1981~1997년생)은 좀 낫습니다. Z세대(1997~2013년생)가 배출 가능한 수준은 반토막 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그들에겐 '위기'뿐일까 자료: 카본브리프

위의 그래프는 각각의 생년별로 '탄소 예산'을 계산한 결과입니다. 베이비부머, X, 밀레니얼, Z… 세대별 스무살 터울로 살펴볼까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로 묶으려면, 1955년생은 328톤, 1975년생은 266톤, 1995년생은 169톤, 2015년생은 56톤밖에 뿜어낼 수 없습니다.

이 자료에 기초해서 직접 3대의 '탄소 예산'을 따져봤습니다. 아버지와 기자 본인, 그리고 저의 두 아들 중 첫째를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카본브리프의 연구자료는 출생연도에 기반한 자료이기 때문에 60대의 부모와 자녀가 있는 30대의 성인이라면 저와 상황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그들에겐 '위기'뿐일까 실제로 계산해 본 3대의 탄소 예산.

구체적인 개별 배출 가능량은 이 글에서 직접 소개드리지 못 하지만, 그래프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2/3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아들의 차이는 컸습니다. 제가 뿜어낼 수 있는 양의 고작 1/5밖에 쓸 수 없는 겁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그 차이가 얼마나 났을까요. 7.6배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걱정 없이 내뿜없던 탄소의 8분의 1밖에 뿜어내지 못 한다는 겁니다.

감축이 늦춰질 때마다 미래 세대가 줄여야 하는 양은 배로, 혹은 그보다 더 많아집니다. 위의 카본브리프가 발표한 그래프, 그리고 제가 그에 맞춰 그린 그래프는 모두 우리가 '1.5도 시나리오'에 맞춰 열심히 감축을 했을 때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두 가지 미래가 우리 아이들 앞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는 감축의 압박이 더 커지는 미래입니다. 아이들은 오늘날 우리가 더 뿜어낸 것만큼만 줄여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보다 훨씬 더 많이 줄여야 합니다. 당장 해마다 신기록 경신 중인 전 세계(그리고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하향 곡선을 그리지 못 한다면, Z세대의 탄소 예산은 아예 0이 되거나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2015년생의 경우 평상 뿜어낼 수 있는 탄소의 양이 56톤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드렸습니다. 혹시나 '56톤이면 충분히 많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까 싶어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2리터급 가솔린 자동차를 1년에 1만 2천km 주행한다고 했을 때, 2톤 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자동차 만으로 해마다 2톤입니다. '평생 56톤'이라면 당장 내연기관 자동차는 '못 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연기관 자가용'은 이들에겐 '전설 속 유물'인 셈입니다.

이렇게 감축의 압박을 견뎌내는 것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미래는 절멸뿐입니다. 지금 부모가,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따르고, 답습한다면… 1.5℃ 올랐을 때, 2℃ 올랐을 때 펼쳐질 각종 재난, 재앙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불덩이 지구'만 남겠죠.

2020년의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이를 막기 위해 감축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아이들에게도 당장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 배우는 겁니다.

과거의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아예' 모르거나 '자세히는' 몰랐습니다. 어두운 탄광에서 열심히 석탄을 캤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자신이 하는 일이 가족을 배불리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매일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 속에서 온몸이 시커먼 재로 뒤덮이며 고생을 해온 것이죠. 열심히 방방곡곡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곳곳을 누빈 '상사맨'에게 그들이 달려온 '마일리지'는 자긍심이자 노력의 증거였습니다.

때문에 앞서 처음에 소개해드린 세대별, 출생연도별 탄소배출이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데에 쓰여서는 안 되겠죠. 갈등을 막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설명해주는 일이 바로 학교, 선생님의 몫입니다.

지난달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의로 모인 교육감들은 한 목소리로 기후위기를 선언했습니다. 기후위기, 환경재난 시대에 대응하고 미래를 위해 변화를 이끄는 지속가능한 학교 환경교육을 실천하겠다는 겁니다. 선언문의 내용은 연재글 말미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0년 넘게 기후환경에 무관심하던 교육당국의 늦었지만 반가운 선언이었습니다. 2008년 이후로 교육당국은 단 한 번도 환경교사를 선발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전국의 교육감이 기후위기와 그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거죠.

다행히 선언에만 그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1학년도 중등 교사를 새로 뽑는 데에 환경교사 TO도 포함된 겁니다. 12년 만의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환경교사를 뽑는 곳은 단 5곳. 서울, 부산, 울산, 충북, 경남에서 딱 7명의 환경교사를 뽑습니다. 이미 환경교사가 충분해서였을까요? 그동안 선발된 환경교사는 전국에서 70명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7명의 교사를 추가한다고 해도 전국 각지에서의 제대로 된 환경 교육이 고르게 이뤄지길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그들에겐 '위기'뿐일까

교육감들의 선언 못지않게 각 학교장들의 실천도 중요합니다. 환경교사를 뽑지 않는 사이, 환경을 교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은 학교도 늘어났습니다. 2007년만 해도 20.6%였던 비율이 2014년부턴 한 자릿수로 줄었고, 2018년엔 불과 8.4%만 이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환경교육 전공이 아닌 선생님이 이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교사가 없어서 과목 채택을 안했다, 과목 채택을 안 해서 교사를 안 뽑았다…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질 상황은 아닌 듯 합니다. 비상선언을 하고, 위기에 공감대가 만들어진 이상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래의 선언문 전문을 읽어보면, 모든 교육감 분들이 그런 움직임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후위기·환경재난시대 학교환경교육 비상선언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교육가족 여러분 지금 인류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세 가지 위협과 맞서고 있습니다. 감염으로 인한 건강과 안전의 위협, 세계적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과 빈곤의 위협, 국경폐쇄와 접촉차단으로 인한 격리와 고립의 위협입니다. 여기에 수많은 경고에도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기후변화는 다음 세대의 미래까지 위협하며 더 큰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이로 인한 다양한 자연재해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환경난민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낳은 무분별한 개발과 탐욕적인 소비는 함께 살아가야 할 다른 생명체들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번도 해본 적 없었던 낯선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가 존재할 것인지. 미래세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 교육감들은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교육을 대전환해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이념과 교육을 혁신하여 지속 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교육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17명의 교육감은 전국 600만의 학생, 60만의 교직원과 함께, 기후위기·환경재난 시대에 대응하고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교육의 대변화를 이끄는 지속 가능한 학교환경교육을 실천할 것을 선언합니다.

1. 기후위기 대응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환경학습권을 보장하고, 미래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배우는 「생태문명의 핵심 학교」를 만들어가겠습니다.

1.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지혜를, 학교를 넘어 마을과 지역에서 함께 찾아 미래세대의 건강권과 안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으로 학교와 교육청에서 시작할 수 있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1. 기후위기·환경재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통해 다가치(민주, 인권, 평화, 다문화, 환경 등)를 내면화하면서 지구공동체의 생태시민으로서 성장하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2020년 7월 9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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