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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시계는 똑딱똑딱

입력 2020-08-17 09:2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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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9)

날씨가, 기상이 기분이라면 기후는 성품과도 같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JTBC 소셜라이브에 출연해 기후위기의 심각성,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기분이 좋기도, 나쁘기도 한 것처럼 기상도 달라질 수 있지만(또는 달라져야만 하지만) 기후는 지속적인 것이라는 얘기죠. 한 여름 펄펄 끓는 맑은 날이 1년 365일 이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사막이 될 것이고, 반대로 장마철 쏟아지는 장대비가 연중 내내 내린다면 모두가 산 중턱에서만 살아야 할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시계는 똑딱똑딱

그런데, 이 기후가 변하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몸으로 '체감'하기엔 그 변화의 크기가 너무 큽니다. 우리가 시속 1600km가 넘는 자전의 속도를 느끼지 못 하는 것처럼 말이죠. 지난주 연재글에선 최근 3년(2018~2020년) 사이에 나타났던 이상 징후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렇게 모아놓고 보면 '체감'은 아니더라도 작은 '느낌적인 느낌'은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엔 보다 더 넓게, 더 긴 시간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직접 몸으로 느끼긴 어려워도 객관적인 숫자로는 확연히 그 변화가 드러납니다.

WMO(세계기상기구)가 최근 한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발표자료에 맞춰 우리나라 기상청 기후변화감시과도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는데요, 발등에 불이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떨어지는 중이었습니다. 발등에 닿기 직전으로요.

발표자료를 살펴보기에 앞서 배경 설명부터 시작할까요? 지난 2015년, 국제사회는 파리협정을 통해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2℃ 이내'로 묶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시뮬레이션을 반복한 결과 '2℃ 이내'라고 해서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48차 총회에서 '1.5℃ 이내'로 묶자는 내용의 보고서가 최종 채택됐습니다. 2℃와 1.5℃, 불과 0.5℃가 만드는 차이에 대해선 제 두 번째 연재글 < [박상욱의 기후 1.5] 0.5도가 부른 큰 차이(2019. 12. 2)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 이어가겠습니다. 2006~2015년까지 최근 10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0.87℃ 올랐습니다. 2100년까지 1.5℃ 이내여야 하는데, 벌써 절반을 넘은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신기록을 세우고 있죠. WMO는 이번 자료에서 "지구의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 상승했다"며 "지난 5년이 역대 가장 더운 5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평균 1℃가 가져온 변화는 매우 컸습니다. 올해 상반기, 시베리아의 평균기온은 평년 보다 5℃ 넘게 높았습니다. 특히 6월의 경우 10℃ 이상 높았는데요, 6월 20일 러시아 베르호얀스크의 최고기온은 38℃에 달했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상상 또는 기억 속 시베리아는 사라진 겁니다.

이러한 시베리아, 북극의 변화는 한반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6월엔 때 이른 더위에 월 평균기온이 22.8℃로 '역대 1위'였습니다. 반대로 7월은 평균 22.7℃로 6월보다도 월 평균기온이 낮았습니다. 6월보다 덜 더운 7월이었던 거죠.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도 심상치 않습니다. 2011~2019년 최근 9년의 평균 기온은 한 세기 전인 1912~1920년보다도 1.8℃나 높습니다. 기온만 높아졌을까요. 강수량도 86.1mm 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강수량이 고르게 늘었다기보다 '쏟아지는' 비가 많아진 것이 이유입니다.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전망은 진폭이 더 큽니다. 해마다 신기록 행진을 이어간, 줄어들줄 모르는 온실가스 때문입니다. 페터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결과를 불러왔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기후행동'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며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서 매우 긴 수명을 가졌기 때문에 일시적 감소가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감소시킬 거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시계는 똑딱똑딱 (자료: WMO, 세계기상기구)

WMO는 향후 5년(2020~2024년)을 이렇게 내다봤습니다.

-향후 5년간 지구의 연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매년 '최소' 1℃ 높을 가능성이 있다. (0.9℃~1.59℃ 높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향후 5년 중 한 해는 연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5℃ 높을 확률이 20%다. (시간이 갈수록 이 확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 기간 고위도 지역과 사헬은 평년보다 더 습하고, 반면 남미 북부와 동부 일대는 건조할 가능성이 있다.

"기온 상승폭을 2℃ 보다 낮게 유지하고(파리협정), 더 나아가 이를 1.5℃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러한 합의를 이행하는 길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WMO 사무총장의 설명입니다.

WMO는 다행히(?) 이 기간 안에 당장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1.5℃ 선이 깨지진 않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2020~2024년 5년의 시간 전체의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5℃ 더 높을 확률은 최대 3%라는 겁니다. 물론, "2100년까지 1.5℃ 이내"가 목표였던 만큼 당연한 결과입니다. 5년만에 1.5℃를 돌파한다면 정말 '둠스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일 테니까요.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기상청 기후변화감시과에 따르면, 폭염이나 열대야 등 '고온 극한기후지수'나 강수강도, 5일 최다강수량 등 '호우 극한기후지수'는 늘 전망입니다. 반면 한파나 결빙 같은 '저온 극한기후지수'는 줄어든다고 합니다. 오늘날 온대기후 속 열대 '체험'이 종종 일어난다면, 앞으론 우리나라의 기후 자체가 열대기후가 된다는 겁니다.

그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전라남도 고흥에선 커피와 올리브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경북 포항에선 바나나를 기르고, 최근엔 강원 삼척에서도 바나나 재배 시도가 성공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역대급 긴 장마, 그로 인해 발생한 9년래 가장 큰 인명피해까지… 더 이상 "기후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대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죠.
 
[박상욱의 기후 1.5] 시계는 똑딱똑딱 (자료: MCC 베를린)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1.5℃ 이내로 유지하기위해 우리가 뿜어낼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구가 품어줄 수 있는 탄소의 양이 정해져있는 거죠. 이 한정된 양을 넘어서면 결국 1.5℃ 선은 깨지게 됩니다. 지금처럼 탄소를 뿜어냈을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7년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시계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난을 겪으며 안전관리 시스템을 꾸준히 발전시켜왔지만 기상이변에 따른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9년 만에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대통령의 말입니다.

"변화된 기후환경까지 고려한 근본적인 풍수해 대책을 마련하라" 국무총리의 말입니다.

"이번 수해는 단순한 여름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에 따른 재난" "기후위기에 대응해서 재난 대응 매뉴얼을 다시 작성하겠다" 여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기후변화 대책을 사전에 강구하기 위해 기후변화 관련 특별 기구 같은 것이 설치돼야 하는 것 아닌가" 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입니다.

말이 행동으로, 그 행동이 현상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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