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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대에게" 전쟁 중 보내온 100통 편지…70년 만의 답장|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0-06-27 19:45 수정 2020-10-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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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7일) 오픈마이크는 영웅들 이야기입니다. 최근 6·25 영웅 147명이 70년 만의 귀환을 하며 마지막 임무를 마쳤는데요. 여전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분, 12만 2609명이나 됩니다. 지금도 현충원 근처에 살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흔 넘은 아내도 있는데요. 남편이 전쟁통에서 보내온 백 통의 편지를 고이 간직하며 오늘도 가슴 속으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오픈마이크에서 담아왔습니다.

[기자]

[그리운 그대에게, 보이지 않으나 보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만은 항상 당신의 가슴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물음이 있을 때는 그대의 가슴에게 물어주시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이름은 이규학, 군번은 204515.]

어느덧 구순을 넘긴 아내는 여전히 남편의 군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 통에서도 백 통 넘는 편지를 보내온 남편.

아내는 1953년 7월 전쟁이 멈춘 뒤 편지가 아닌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전사통지서였습니다.

전쟁이 멈추기 바로 이틀 전 6·25 최후의 전투, 강원도 화천 406고지에서 전사한 겁니다.

3일이면 전쟁이 끝날 거라며 부랴부랴 나서는 남편에게 아내는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3일만 어디가서 피해 있으면 전쟁이 끝난다 이거야. 전쟁이 끝나면 집터에서 만나고 그러자고 하직을 하고선 부대로 갔어.]

하지만 전쟁은 3년 넘게 계속됐고, 비참한 세월이었습니다.

피란길에 두 살 배기 아들마저 잃고 나자 남은 건 남편이 피란길에 덮으라고 쥐여준 담요뿐, 남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입대했습니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어디든지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내가 월남도 가겠다고 신청하고 다 신청해. 나는 가서 그냥 죽고 싶어. 살고 싶은 마음 없어.]

아내는 지금도 남편 곁에 머물려고 현충원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덧없는 세월 속에 여전히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언젠가는 남편이 살아올 것만 같아. 전사통지서 받았어도 진짠지 가짠지 내 눈으로 안 봤잖아.]

유해로라도 만나고 싶어, 아내는 하루종일 뉴스를 틀어놓습니다.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를 발굴한단 소식이 들려왔을 땐 다음은 화천이 아닐까 희망에 부풀기도 했습니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만나야 되는데, 국립묘지 안에서라도 만나야 되는데. 내가 암만 해도 못 볼 것 같아.]

이제는 휠체어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불편한 몸이 됐지만, 비를 맞으며 남편에게 갑니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내가 비오는 날 왔다 간 걸 알까? 아이고 참, 내가 얼른 여기 와야 해. 없어야 해 전쟁은 없어야 해, 절대 없어야 해. 당신네들 다 불행해.]

아내는 오늘도 남편에게 답장을 쓰고, 또 씁니다.

[정금원/고 이규학 소령 아내 : 잘있으세요. 나 갈게. 염려하지 말고 또 내가 다리가 성하면 올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나는 바보니까 당신을 기다렸소. 편지 많이 보내줘서 고맙소.]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연출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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