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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 들고 전차와 맞선 13용사…비극 속 '잊혀진 영웅들'

입력 2020-06-25 21:04 수정 2020-06-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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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때 희생된 국군 유해, 147구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복귀를 신고합니다. 잠시 뒤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맞이합니다. JTBC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묻혀 있던 전투기록을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수류탄으로 전차에 맞섰던 13명의 영웅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먼저 유선의 기자입니다.

[기자]

6·25전쟁 발발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파주 문산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지도입니다.

문산천과 월롱산, 경인선이 보이고 전차를 몰고 내려오는 북한군 1사단 2연대를 국군 1사단 15연대 3대대가 막고 있습니다.

공적서엔 육군 대위 김선일과 장병 12명이 수류탄을 들고 소나무 숲에 숨어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지도를 따라가 봤습니다.

[여기가 월롱산 자락에 있는 곳인데 소나무 숲에 숨어 있었다고 하니까 이 일대가 전부 소나무 숲인데 지형이랑 설명이 일치하고…]

이들이 북한군 전차가 지나갈 때 3~4명씩 조를 짜서 기관실에 수류탄을 던졌고, 일부를 파괴했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있습니다.

몸으로 전차를 막았고 희생이 따랐습니다.

[김유석/전쟁기념관 유물부장 : 이 과정에서 육군 대위 김선일, 육군 소위 전일수 그다음에 (이등상사) 김종록이 전사했다고 돼 있습니다.]

소나무 숲에서 1㎞ 거리에 2.36인치 로켓발사기, 3~4㎞ 거리에 57㎜ 대전차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급해 장비를 가져오지 못하고 직접 수류탄을 던진 겁니다.

이들이 몸을 던져 사흘을 버틴 덕분에 보다 많은 서울 시민이 피난을 갈 수 있었습니다.

[김유석/전쟁기념관 유물부장 : 열세의 전투력이었지만 북한군의 전차와 대규모 병력을 상대로 최대한 지연작전을 전개해서…]

JTBC는 육군의 도움을 받아 전쟁 중인 1950년 12월 작성된 전투기록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여기엔 국민의 피난 시간을 벌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그날이 담겨 있습니다.

[김재중/육군기록정보관리단 기록물수집보존과장 : 훈장을 받지 못했던 분들도 이 자료를 통해 확인해서 육군본부로 건의하면 검토해서 조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이 전투는 파주 월롱산 229고지 주변에서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공식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JTBC는 편의상 '229고지 전투'라고 부르겠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북한군의 기습에 우리가 비록 열세였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좀 더 위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바로 임진강 방어선, 전쟁 발발 6시간 뒤인 1950년 6월 25일 오전 10시 상황을 그린 지도입니다.

북한군 6사단 15연대와 북한군 1사단 2연대가 각각 넘어오고 있고 이것을 우리 군의 1사단 11연대와 13연대가 각각 막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먼저 주목해 볼 건 이 11연대입니다.

[김유석/전쟁기념관 유물부장 : 이 부대는 오늘날 서울 수색동에 있던 예비부대입니다. 예비부대가 25일에 신속하게 전방으로 와서 임진강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한 상황입니다.]

북한군의 기습에도 우리 군이 일방적으로 후퇴만 했던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던 예비부대가 임진강 전방까지 나서면서 어떻게든 서울을 지키려고 했다는 겁니다.

이번엔 지도의 오른쪽을 보겠습니다.

강에 다리도 없는데 북한군의 1사단 2연대 전차가 함께 넘어왔습니다.

우리 1사단 13연대가 이것을 막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전차가 강을 넘어올 수 있는지 지도에 표시된 곳에 직접 가 보니까 지금도 강 수위가 얕았습니다.

그리고 침투지역이라는 표지석도 있었습니다.

[박광명/경기 파주시 장좌리 : (어느 정도 얕은 거예요?) 가슴 정도? 여울이니까. 김신조가 침투했던 바로 그 자리예요.]

북한군이 방어가 약한 지형을 미리 파악해 전차로 밀고 들어왔고, 그곳을 우리 13연대가 막았던 겁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이틀 뒤엔 봉일천 방어선에서 맞서게 됩니다.

월롱산 229고지와 지금의 위전리, 도내리, 신산리를 잇는 방어선입니다.

229고지에 올라가 보니 육군이 6·25전쟁 이후에도 이어서 쓰던 진지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봉일천 방어선 가운데 가장 왼쪽, 229고지에서 벌어진 전투가 앞서 전해드린 김선일 대위와 전일수 소위, 김종록 이등상사가 전사한 바로 그 전투입니다.

이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잠들어 있을까요.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1950년 6월 27일 전차와 맞서다 전사한 전일수 소위가 지금 어떻게 모셔져 있는지 추적해 봤습니다.

국립현충원에서 이름과 군번을 찾아보니 두 명이 나옵니다.

한 명은 중위, 다른 한 명은 대위입니다.

보훈처는 "이름과 군번이 같은 이는 한 명이 존재해야 한다"면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전사한 날짜도 다릅니다.

[6월 27일에 전일수 소위가 전사했는데 이것도 전사일자가 1951년 1월 1일로…]

같은 날 전사한 김선일 대위의 묘비에도 1951년 1월 1일이 전사일로 새겨져 있습니다.

229고지 전투 '13용사' 가운데 가장 계급이 낮은 이학범 이등중사의 군번도 찾아봤습니다.

이번엔 아예 다른 이름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 칸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번째 박우전 상병…]

JTBC가 분석한 전투 기록엔 이학범 이등중사가 북한군 4번 전차에 수류탄을 던져 그 일부를 파괴했다고 정확히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공적과 이름은 이렇게 70년 동안 묻혀 있었습니다. 

전일수 소위와 이학범 이등중사는 분명한 공적이 있음에도 모두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보훈처에 직접 신청해야 유공자 심사를 받을 수 있는데, 전쟁 중 전사하거나 크게 다친 이들 상당수가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겁니다.

국가가 직접 기록을 확인해 신청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기록은 70년이 지난 이제서야 빛을 봤습니다.

국방부는 JTBC 취재 과정에 확인된 전 소위와 이 이등중사의 공적을 인정해 직접 유공자 등록을 신청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보훈처도 전 소위 등의 전사일을 바로 잡는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VJ : 손건표 / 영상디자인 : 배장근·조성혜·조승우 / 영상그래픽 : 한영주)

[앵커]

70년 전 전투 기록입니다. 아직도 제대로 된 묘비를 갖지 못한 군인 두 명이 있습니다. 군번 207로 시작하는 전일수 소위와 군번 270으로 시작하는 이학범 이등중사의 유족을 찾습니다. 육군도 화랑무공훈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JTBC 혹은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으로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 1661-7625) 전일수 소위, 이학범 이등중사 유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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