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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치유재단 해산 어디까지 왔나…여가부, 설립허가 취소

입력 2019-01-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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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치유재단 해산 어디까지 왔나…여가부, 설립허가 취소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두 분이 28일 한날 세상을 뜨면서 이제 남은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치됐으나 피해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은 화해치유재단은 해산 절차가 진행 중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1일 장관 직권으로 화해치유재단 허가를 취소했다.

재단 설립허가 취소는 정부가 지난해 11월 21일 재단 해산 결정을 공식 발표한 지 2개월 만이다.

이후 여가부는 설립허가 취소에 대한 재단 측 의견을 듣는 청문 절차를 진행해왔다.

여가부 관계자는 29일 "법인 허가를 취소하고 재단에도 이를 통보했다"며 "이제 법원에서 청산인을 선임하면 본격적인 청산 과정을 밟게 된다"고 밝혔다.

청산 업무를 맡을 청산인은 재단 이사회에서 선임하거나 법원에서 선임할 수 있다.

화해치유재단은 민간인 이사진이 전원 사퇴하고 당연직 이사 2명만 남은 상태여서 청산인은 법원에서 선임하게 됐다.

재단 허가는 취소됐지만 약 58억원인 재단 잔여 기금 처리 등 청산 절차 완료까지 길게는 1년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재단의 남은 재산 처리 방향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 없으며 청산인이 지정되면 협의해야 한다"며 "관계 부처와 논의하고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한일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으로 2016년 7월 25일 설립됐다.

그러나 한일 합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들은 10억 엔 반환과 재단 해산을 요구해왔다.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었던 김복동 할머니도 생전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 할머니는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해 9월 3일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요구하는 1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불과 닷새 전에 암 수술을 받아 거동이 어려웠지만 빗속에서 "위로금을 1천억 원을 준다 해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고 외쳤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기로 공식 발표했을 때는 "지금이라도 이 할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재단 해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안타깝다"며 "화해치유재단이 와르르, 와르르 무너져야 안심하지 내일, 모레 계속 미룰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1940년 14세에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된 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증언을 이어가며 여성인권운동을 펼쳤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김복동 할머니 별세를 애도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피해 할머님들의 명예·존엄 회복을 위한 정책 추진에 더욱 힘쓰겠으며,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문제에도 앞장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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