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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질병·자식들 눈치…늘어나는 '황혼 자살'

입력 2013-11-28 09:01 수정 2013-12-2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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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뇌졸중으로 투병 중이던 80대 남편과 디스크에 시달리던 70대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죠. 병원비는 점점 늘고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는 싫었던 노부부의 선택이었습니다. 몸은 아프고, 형편은 좋지 않은 이런 노년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고령화 시대의 또다른 그림자입니다.

오늘(28일) 긴급출동에서 취재했습니다.


[기자]

부모님의 집 앞을 서성이는 50대 아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큰아들 : (부모님이) 자식들한테 피해 안 주겠다고 유서만 두고 가버렸어요.]

나흘 전 일흔과 여든을 넘긴 부모님이 이 집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최정훈/목포경찰서 강력3팀 팀장 : 현장을 보니 거실도 정리돼 있고 유서도 있고 영정사진도 있고 (자살) 준비를 하신 것 같더라고요.]

지난 23일,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

방문을 비닐로 막고 어찌나 꼼꼼하게 테이프를 붙였는지 방에 들어가는 데도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메케한 연탄가스가 자욱한 방 안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던 화덕.

이미 연탄은 한 장하고도 반쯤 타들어갔습니다.

이불 위에서 잠든 것처럼 누워있던 노부부.

문 앞 밥상 위엔 영정사진과 유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병든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노부부는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충격에 빠진 이웃 주민들.

[이웃주민 : (할머니는) 한 달에 햇볕 쬐러 한 번 두 번 나온다니까. 걸음을 못 걸으니까 아예. 그 할아버지는 너무나 순진해. (성격도) 괜찮아. 그 부부는 자식들 밖에 모르던데….]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아들 내외가 부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며느리 : (지난 토요일에) 춥다고 연탄불을 펴달라고 해요. 아들한테 더 추운데서 사신분들이… 근데 (자살할 계획이란) 생각을 못했죠.]

슬하에 오남매를 두었지만 자녀들 생활이 넉넉지 않아 따로 살았던 노부부.

허리 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정성껏 돌봐왔다고 합니다.

[며느리 : 아버지가 그렇게 어머니를 잘 챙겨 드렸어요. 꼭 아기 다루듯이. 처음부터 여태까지….]

그런데 올해 4월, 할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비극은 시작됐습니다.

수입이라곤 매달 노령연금으로 받는 15만 원이 전부.

자녀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던 부부는 의료비는 물론 생계를 위한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며느리 : 따뜻하게 못해드린 게 (후회되죠.) 말 한마디라도.]

병든 노인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반 년.

[큰 아들 : (아버지의 몸) 반이 마비되었어요. 왼쪽이. 그러니까 자기 살이 아니에요. 움직이지도 않고 목욕도 못하셨다는데….]

부모의 자살 사건 이후 자녀들에게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들도 당뇨에 불치병으로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웃주민 : 큰딸 작은딸 딸이 둘이고 아들은 셋인데, 둘째 셋째는 전화 한통도 없고 끊어버리고 큰아들은 한마디로 너무나 불쌍해.]

사정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부모 앞에선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아들.

[큰아들 : 연금 조금 나온 것, 십 몇 만원에 자식들이 조금씩 보태줬죠. 못해드린 것이 후회됩니다.]

병든 노년의 황혼 자살은 고령화 시대에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중한 질환에 걸리게 되면, 병원 진료비 중에서 본인부담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문화가 겹쳐지면서 중병에 걸린 노인 부부들이 동반 자살하는 현상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주민센터 사회복지과에 문의했습니다.

[주민센터 관계자 : 복지는 '신청주의'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은 (지원)신청을 하지 않으셨고, (의료 쪽으로는 지원 받으신 적 없으신가요?) 네. (전혀 없으신가요?) 네. 문의가 오면 저희가 안내는 해드리죠.]

가뜩이나 정보에 어두운 노인에겐 멀기만 한 복지정책.

[김연명/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복지제도는) 국가가 발굴해서 도와주는 시스템은 아니기 때문에 신청주의 원칙도 이번기회에 재검토 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노년의 질병이 황혼 자살로 이어지는 이 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행 노인복지제도의 문제점을 고치고, 보다 현실적인 보호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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