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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윤의 View] 흰 블라우스의 미소 짓던 김여정…그녀가 아니었다

입력 2020-06-18 15:38 수정 2020-06-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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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윤의 View] 흰 블라우스의 미소 짓던 김여정…그녀가 아니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직접 눈앞에서 본 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였습니다. '세기의 만남'이라고 불리던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숙소였던 세인트레지스 호텔 로비에서 김 제1부부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호가 삼엄해서 직접 다가가 말을 걸 수도, 휴대폰으로 촬영을 할 수도 없었지만 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 있는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겁니다. 당시 김 위원장 보다도 김 제1부부장의 실물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TV를 통해 보던 모습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반올림머리를 한 단정한 차림의 김 제1부부장은 오빠인 김 위원장을 수행하면서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상냥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기억 속 김 제1부부장의 모습은 어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함께 지워졌습니다.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의 '거친' 담화문이 나온 이후, 북한은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어제 연락사무소 폭파까지 계획들을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김 제1부부장도 본인의 담화에 대해 스스로 '말폭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보여줬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이렇게 거친 언사를 써가며 남측 정부를 비난하는 이유는 뭘까요.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공공의 적'

북한은 지난 4일 김 제1부부장의 담화문 발표 이후, 계속해서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담화문 발표 후, 북한 주민들이 보는 대내매체에 공개하는 식입니다. 노동신문은 북한 전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매체입니다. 때문에 여기에 공개적으로 김 제1부부장의 담화문을 싣는 건 북한 주민들에게 의도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인 겁니다. 실제 북한매체들은 노동신문에 실린 담화문을 읽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와 남한과 탈북자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미워할 수 있는 '적'이 생긴 겁니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사실상 체면을 구겼습니다. 6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베트남까지 갔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북한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때 구겨진 체면을 다시 살려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고, 오히려 코로나19까지 겹쳐 북한 내 경제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배고픈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이런 불만은 최근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입니다. 결국 외부에서 '적'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들고 나온 게 '대북전단 살포'입니다. 사실 대북전단 살포가 하루 이틀 된 문제도 아닌데 이제 와서 갑작스레 꺼내든 건 북한 내 안 좋은 여론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공공의 적=남한'을 택했기 때문이란 분석입니다.

◇왜 '남한'인가

남한을 '적'으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 여러 분석들이 있습니다. 우선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이 남한 정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정부가 사실상 북한을 설득해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우리 정부를 믿고, 하노이 회담에 나갔지만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너무 많은 걸 요구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에 대한 불신이 생긴 거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을 압박해달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데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는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도 지금은 북한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북한 관련 실무진들이 대선에 신경을 쓰고 있고, 또 미·중 갈등으로 인해 우선 해결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 걸 북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중간에서 미국을 설득하는 역할을 계속 이어가주길 바라는 측면도 있는 겁니다.

◇잠잠한 트럼프의 '트위터'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를 폭파까지 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평소 즐겨하는 트위터에 이에 대한 언급을 한 줄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북한엔 역효과를 내는 행위를 더는 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 친구'라고 부르고, 간혹 편지도 주고 받는 사이인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에 이렇게 나오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11월 미국 대선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금으로선 북한 문제가 대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 국민들에게 북한 문제는 그저 '먼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신기해할 미국 국민은 이제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만난다면 뭔가 자국민들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북한에게 어떤 양보를 얻어내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그저 11월까지 사고만 치지 말아줘'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북한이 만약 미국을 향해 군사 도발을 한다면, 미국은 오히려 이 상황을 역이용해 더 강하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선거에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 주는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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