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앵커브리핑] '우리는 편의점에 간다'

입력 2017-12-28 21:49 수정 2018-01-04 19:46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2017년의 마지막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편의점이 처음 등장한 때는 지난 1989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문을 연 점포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24시간 불을 환하게 밝혀두는 신개념의 매장. 편의점은 지난 30년간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전국에 약 3만 7000여 개. 하루 15개의 편의점이 새로 문을 열 정도이니까 이쯤 되면 편의점 왕국이라는 표현도 과언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것은 이웃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에 일본에서는 '편의점 인간'이라는 책이 순수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실제로 편의점에서 18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했던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인공을 창조했지요.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보통의 삶을 거부합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은 단지 선택일 뿐, 그것은 루저의 방식이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삶의 형태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우리는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이 아닌 우리의 상황 속에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은 과연 선택이 될 수 있는가.

일본의 그 작가는 일주일에 사흘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로 수입을 보장받았다고 하지만, 우리의 형편에서 보자면 일본 소설 속 이야기와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던 것입니다.

77만 원 세대. 
 
며칠 전 한 신문에서는 새로운 단어 하나를 내놓았습니다.

20대 저임금 청년 가구의 월소득이 지난해 처음 8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는 통계 자료 때문이었습니다.

88만 원 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 딱 10년 만에 숫자의 방향은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편돌이, 편순이라 칭하며 일회용으로 삶을 때워가는 현실 속 '편의점 인간'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죠.

세상이 겪고 있는 세대 간의 격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벌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80년대에 태어난 젊은 작가의 말처럼… 오늘도 누군가는 궁핍과 외로움을 메우려 편의점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환한 통유리 너머 비치는 우리가 함께 메워내야 할 세상이 만들어낸 고단한 풍경들….

오늘(28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족을 하나 답니다. 2017년의 마지막 앵커브리핑을 그냥 이렇게 끝내자니 사실 마음이 조금 무거워 매년 여러분께 연말에 드렸던 아일랜드 켈트족의 기도문을 올해 다시 새해 덕담으로 전해드립니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길…."

관련기사

[앵커브리핑] "머피의 법칙,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복지혜택 기준' 중위소득이 뭐길래…얼마나 지원 받나 50대, 고시원서 영양결핍 '고독사'…정책 '사각지대' "편의점 의약품 공급 확대 반대"…거리로 나선 약사들 '24시간 영업 힘들어'…일본, 심야 '무인 편의점' 등장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책 발표…1인당 월 13만원 보조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