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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대 비극' 예멘내전 3주년…끝안보이는 최악 위기

입력 2018-03-26 14:46

2015년 3월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군 예멘 군사개입 후 악순환
예멘반군, 3주년에 리야드 포함 사우디로 미사일 무더기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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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군 예멘 군사개입 후 악순환
예멘반군, 3주년에 리야드 포함 사우디로 미사일 무더기 발사

'21세기 최대 비극' 예멘내전 3주년…끝안보이는 최악 위기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의 공습과 지상군을 동원한 군사개입으로 예멘 내전이 발발한 지 26일(현지시간)로 3년이 됐다.

사우디는 이란과 우호적인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가 2014년 9월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이듬해 2월 자신이 지지하는 예멘 정부까지 쿠데타로 전복하면서 영역을 확장하자 전격적으로 군사 작전을 폈다.

사우디의 전력이 압도적이어서 쉽게 끝날 듯 했지만 예멘 내전은 반군 후티의 끈질긴 저항으로 장기화했다.

사우디군은 내전 발발 3주년을 하루 앞둔 25일 밤 후티가 리야드 등 사우디 곳곳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7발을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발은 리야드를 겨냥했으며, 2발은 예멘과 국경을 맞댄 남부 지잔을 향해 발사됐다. 사우디군의 기지가 있는 예멘과 국경지대 카시미스 무샤이트와 나즈란 지역에도 탄도미사일이 1발씩 날아왔다.

사우디군은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격추했다고 발표했으나 리야드에서 파편에 맞은 이집트인 1명이 죽고 2명이 부상했다.

반군 후티가 리야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지난해 11월4일 이후 네번째다.

후티는 이날 "사우디의 예멘 침공 3년을 맞아 리야드 킹칼리드 공항 등 사우디 공항 4곳을 겨냥해 미사일로 반격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는 후티의 군사적 배후가 이란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란은 이를 부인한다.

이 때문에 예멘 내전은 예멘 정부와 반군의 충돌이 아니라 지역 경쟁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간접전으로 인식된다.

지리적으로 사우디의 턱밑에 있는 예멘에 이란이 반군을 통해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면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사우디는 우려한다.

중동 내 패권경쟁 틈에서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던 예멘은 유혈사태와 전염병으로 금세기 들어 사상 최악의 비극이 진행 중이다.

2014년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테러전의 모범 사례로 들었던 중동 국가이자 모카커피의 원산지, 전통 아랍어 연수지로 유명했던 예멘은 나락으로 내전과 함께 추락했다.

중동의 다른 내전 전장인 시리아는 세계열강이 평화 협상을 이끌면서 종식되리라는 희망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라도 하지만 예멘은 말 그대로 '잊힌 내전'이다.

국제 사회는 수없이 말로만 '우려'를 쏟아내기만 했을 뿐 실질적인 휴전 협상은 전혀 진전이 없다.

그 사이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의 폭격, 반군의 반격, 전통적 강자인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 새로 둥지를 튼 이슬람국가(IS)가 뒤섞여 피아가 구분되지 않은 혼돈이 거듭되고 있다.

지난 3년간 폭격과 교전 등으로 1만명이 숨졌고, 약 2천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인구의 70%인 2천만명이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700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아사 위기에 처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은 25일 낸 긴급 성명에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예멘 어린이를 위해 올해 3억5천만 달러(약 3천800억원)가 필요하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이해당사국인 사우디와 이란은 모두 예멘에 인도적 지원을 과시하면서 상대방을 비극의 장본인으로 비난한다.

예멘 내전은 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이 가장 나쁜 결과를 낳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멘은 2011년 말 벌어진 민주화 시위로 이듬해 2월, 34년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2017년 12월 사망)가 하야하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다.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진 이집트, 바레인, 리비아 등과 다르게 예멘은 튀니지와 함께 아랍의 봄 결실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장기 독재와 빈곤의 깊은 뿌리는 예멘의 민주주의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살레 시절 부통령이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2년 임기의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불행하게도 하디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합법성을 갖췄음에도 정치·군사적 기반이 취약했다.

하디 대통령의 개인 역량 부족일 수도 있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여건은 민주화를 꽃피우기엔 열악했다.

의회 다수당 국민의회당(GPC)은 여전히 퇴출당한 독재자 살레의 통제 아래였고 군부에서도 살레의 영향력이 건재했다. 하디 대통령은 군 고위 인사의 개혁을 단행, 살레의 장남과 조카 등 측근을 제거하긴 했지만 이는 군 전력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야 할 이슬라당, 남부 사회주의 정파 등 야권은 정치 개혁과 민생보다는 정부 요직에 자신의 세력을 심는 눈앞의 이득에 더 관심이 있었다. 과거 적대적이었지만 정권 획득이라는 목표 아래 살레 전 대통령과 전략적으로 내통한 후티는 끊임없이 하디 대통령 정부를 흔들어댔다.

후티가 2014년 9월 수도 사나로 진입했을 때 예멘 정부군은 이를 저지할 전투력이 없었고 살레 편에 선 일부 군장교는 후티의 진군을 환영했다.

평화적 정권이양을 맡은 과도 정부에 반기를 든 후티가 쉽게 민심을 얻게 된 배경엔 무엇보다 '빵' 문제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후티가 본격적으로 반정부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하디 정부가 재정을 개혁한다며 2014년 7월 정부 재정의 3분의 1(연간 약 20억달러)을 차지하는 연료 보조금을 축소하면서부터다.

이 결정으로 휘발유 가격이 60%, 경유는 95%가 폭등했다.

연료값이 치솟자 하디 정권에 반대하는 민심이 들끓었고 후티는 이를 틈 타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후티와 하디 정부는 연방제식 정권 이양 절차를 논의하는 듯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합의가 결렬돼 싹이 튼 내전은 3년이 지난 지금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가시덩굴이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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