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탐사플러스 19회] '쌍둥이 배' 타보니 "모두 살릴 수 있었다"

입력 2014-06-22 23:20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세월호 참사로 숨진 희생자 300여 명. 대부분 대피 명령만 기다리다 객실에서, 복도에서 숨져 간 소중한 생명들이었습니다. 정말 선원들의 말대로 대피방송은 할 수 없었던 걸까요? 배 안에 들어가 승객들을 탈출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을까요? 탐사플러스가 세월호와 똑같은 구조여서 쌍둥이배로 불리는 '오하마나호' 내부에 직접 들어가 대피 명령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사고 당시 세월호의 항적도입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남동쪽으로 향하던 세월호 선수가 갑자기 남쪽 방향으로 급하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전 8시 49분, 1분 만에 세월호 선수는 정남향으로 향했고, 2분 뒤 세월호의 선수는 서쪽 방향으로 돌았습니다.

세월호가 이렇게 급선회를 하면서 갑판에 실려있던 컨테이너가 떨어졌고, 배는 30도 가량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오전 8시 51분 이후에는 세월호가 더 이상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고정된 채 북쪽으로 떠밀려 올라갑니다.

화물이 쏠린 데다 평형수까지 부족했던 세월호는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검찰은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급격한 방향 전환, 급변침을 지목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조타수 조모씨가 우현 변침을 시도하던 중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당황하여 오른쪽 끝까지 돌린 게 잘못"이라고 적시했습니다.

문제는 세월호가 급격하게 방향을 튼 것은 항적도로 확인이 되지만, 그것이 조타 때문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것.

취재진은 세월호의 급선회 원인을 다시 추적해보기로 했습니다.

현재 급선회의 원인을 놓고 여러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

세월호가 무언가에 충돌하면서 조타각보다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았냐는 겁니다.

세월호 선체에 난 여러 흔적들이 이 주장의 근거로 등장합니다.

취재진은 먼저 암초 가능성을 다시 확인해 봤습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국립해양조사원이 사고 이후 침몰 해역뿐 아니라 급변침 지점에 대해서도 음파 탐지를 실시했지만 암초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소나 탐지는 바다 밑 1미터 길이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정밀합니다.

[최동일/한국해양과학기술원 : 소나 측정을 전부 다 했습니다. 암초는 없었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선박과의 충돌 가능성은 어떨까?

최근 재판에서 세월호 3등 항해사가 "선박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변침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해 다른 선박과의 충돌 가능성이 의문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주변 선박의 항적도에도 충돌 가능성이 있는 선박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제3의 선박으로 지목된 유조선 둘라에이스호 선장은 사고 이후 무전을 듣고 찾아간 것이지 충돌 위험이 있을 만큼 가깝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문예식/둘라에이스호 선장 : 다른 배는 없었습니다. 그건 제가 합수부(검ㆍ경합동수사본부)에 가서도 동일하게 진술했고,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급선회한 다른 원인은 뭘까?

이유를 알기 위해 탐사플러스 취재진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조사에 맞춰 세월호의 쌍둥이배로 불리는 오하마나호에 올랐습니다.

두 배는 전체 크기와 중량, 내부 구조까지 거의 비슷합니다.

특히 두 배 모두 인천과 제주 노선을 운항했기 때문에 맹골수도를 통과하는 항해 방식이 같습니다.

세월호의 급선회 원인을 설명할 수 있을까?

조타실로 올라갔습니다.

오하마나호의 조타기는 자동차 핸들보다 작았고 쉽게 돌아가도록 돼 있습니다.

조타기 위에는 자이로스코프, 즉 배의 방향 측정계가 달려 있습니다.

방향은 우현과 좌현 모두 최대 35도까지 돌릴 수 있습니다.

오하마나호의 항해사는 변침을 할 때 통상 5도 내로 조타를 한다고 합니다.

[오하마나호 항해사 : 보통 5도 정도 돌리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1도씩 조금씩 돌아가게 합니다.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각이 왔을 때, 반대쪽 각을 놓아서 안정을 시킵니다.]

맹골수도를 지날 경우 병풍도를 피하기 위해 배의 방향을 135도에서 140도로 바꿔야 합니다.

5도 변침.

이때 조타수는 항해사의 지시를 받아 반드시 10도 내에서 틀도록 돼 있다고 합니다.

세월호같은 급변침은 가능할까?

[135도에서 140도로 수동으로 한번 해봐요.]

[10도 이상 안 틉니다.]

[완전히 만재하면 5도 정도.]

[조금씩 조금씩 한다는 거죠?]

[제주 왕복 하셨죠?]

[네.]

국정조사 특위는 오하마나호 조타기를 확인한 뒤 급변침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우원식 : 대형선박은 급변침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세월호가 기울어진 원인은 급속 변침이 아닌 다른 의혹이라는 의문을 합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의 급선회는 오전 8시 48분에서 8시 51분까지 불과 3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바로 그때 조타실에 있었던 선원은 당직이었던 3등 항해사와 조타수, 그리고 기관사 단 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국에 따르면 같은 장소에 있던 3명의 증언자 말이 모두 달랐습니다.

조타수 조모 씨는 "조타기가 본인이 의도한 바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조타기 고장을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

본인은 "정확히 조타를 했지만 선박이 우선회했다"는 겁니다.

3등 항해사인 박모 씨는 조타수가 오른쪽으로 완전히 꺾었기 때문에 급격히 쏠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관장은 조타수가 '조타기가 안 듣는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주민/변호사 : 급선회의 원인은 세월호 침몰 원인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 검찰이 "조타기 고장은 아니다", "급변침 때문이다" 라고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해야 된다고 봅니다.]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세월호 급선회의 원인이 무엇인지 의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세월호와 구조가 같은 오하마나호를 타보니 세월호가 침몰한 바람에 확인할 수 없었던 구조 문제가 추가로 드러납니다.

먼저 오하마나호의 방송 시설.

항해사가 뒤만 돌아보면 곧바로 대피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조타실 입구에서 방송 장비까지의 거리도 몇 발짝 되지 않습니다.

방송은 어떤지 시연해 봤습니다.

[퇴선, 퇴선, 퇴선.]

복도는 물론 객실 내까지 대피 명령이 전달됩니다.

게다가 비상 버튼만 눌러도 배 전체에 싸이렌을 울릴 수 있었습니다.

[띠리리리링.]

사고 당시 7명의 선원들이 조타실에 모여 있다 구조됐는데, 누구 하나 대피 명령을 내린 사람이 없습니다.

조타실 곳곳에 붙어 있는 비상시 퇴선 명령에 대한 조치 순서를 보면 선장이 최종적으로 퇴선 명령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준석 선장은 검찰 조사에서 방송 시설이 안 돼 무전기를 갖고 있는 2항해사에게 퇴선 명령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하마나호의 경우, 발전기가 나가더라도 비상전력이 있어 선내 방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휴대전화 동영상을 통해서도 당시 전기가 공급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할 무렵에도 선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학생들은 증거로 남겼습니다.

[구명동의의 끈이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하시고]

더욱이 오하마나호가 세월호보다 9년 전에 건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월호 방송 시설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사고 당시 정전으로 방송을 할 수 없었다는 진술도 완전 침수되기 전에는 전기가 끊이지 않고 비상발전기가 자동으로 전기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고려하면 믿기 어렵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타실에서 데크까지의 거리가 불과 4~5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불과 몇 발짝만 나가면 언제든 배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 대피를 도왔다 해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구조 요청을 한 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왜 승객들을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해경의 구조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사가 심해 배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준석 선장 등이 잡고 내려온 줄까지 연결돼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경 구조대원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한 두 명이라도 안에 들어가 대피 방송을 한 번만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최민희 : 그러니까 저기서(데크로) 올라와서 이리로(방송시설로) 와서 퇴선 명령만 했으면 살았어]

[여기서 저 안에 들어가는 걸 지금 못 들어가는거 아냐? 저걸 잡고 가서 방송해도 되는데 못했단 말이야. 이해가 안 돼]

조타실에서 계단을 따라 한 층만 내려가면 곧바로 객실과 연결돼 있습니다.

객실은 일자로 연결돼 있지만 대부분 가운데 홀과 연결돼 있었습니다.

또 배 전체의 길이가 130여 미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쪽 객실 칸의 양끝 간 거리는 길어도 50m가 넘지 않습니다.

4층 객실에 올라가 실제 시간을 측정해 봤습니다.

객실에서부터 출구로 나와 데크까지 빠져 나오는데 대부분 30초 거리도 안 됐고 가장 먼 객실도 1분이면 충분했습니다.

홀과 연결된 출구도 4곳이나 됩니다.

가운데 홀에는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돌아내려가는 원형 계단이 있었고 5층으로 올라가자 큰 방이 있는데 이곳도 출구로 이어져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동영상을 보면 단원고 학생들이 좁은 복도에 손잡이를 잡고 앉아 있거나 객실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제대로 대피하지 못한 건 침몰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넘도록 방송만 믿고 객실에서 대기하다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진 셈입니다.

[3층과 4층 객실을 조사한 결과 비상시 승객이 탈출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확인하였고, 계단을 올라 갑판으로 올라오지 않더라도 선실에서 복도를 지나 문만 열면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상황. 동선도 그렇게 길지 않아 나오라고 소리만 크게 쳤어도 안까지 다 들리는 거리, 공간이었습니다.]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세월호의 복원력을 상실케 하는 요인이 됐던 컨테이너 고박 문제 역시 오하마나호를 통해 재확인됐습니다.

컨테이너를 고박하는 장비는 고정핀이 없거나 녹이 슬어 제 기능을 하기가 어려워 보였고, 발로 툭툭 건드려도 빠질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쓰라고 만든 거야. 세월호도 똑같았겠네. 이런 배가 어떻게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던 건지. 정말 말이 안 나오네요.]

항운조합 관계자는 세월호의 상태도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세월호에 실려 있던 콘테이너는 철제 박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3미터 정도…거기는 40자로 돼 있는데 규격이 안 맞다 보니까 세월호는 40자로 돼 있는데 컨테이너 사이즈를 많이 싣기 위해서 작은 것을 쓰기 때문에 아예 고박 자체를 안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세월호와 똑같은 구명벌이 달려 있었지만 자동으로 내려지는 건 고사하고 손으로도 내릴 수 없게 단단히 묶어놓고 있었습니다.

[녹이 슬어서 페인트가 덧씌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부력을 감지하는 장치가 다 잘라지고 없어. 그러니까 이것은 하얀 통일 뿐….]

어떤 구조 장비도 밖으로 대피해야 효과가 발휘될 겁니다.

300명이 넘는 고귀한 생명은 배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마이크만 들면 할 수 있는 대피 방송,

[퇴선 퇴선 퇴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울려 퍼졌을 싸이렌

[띠리리리리]

단 한 번만 세월호에 울려 퍼졌다면 300여 명이 희생되는 대참사는 분명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앵커]

대피하라고 선내에 단 한 번만이라도 방송을 했다면, 객실에 내려가 누군가 퇴선하라고 외치기만 했더라도, 300여 명의 생명을 이토록 허무하게 앗아가는 참사는 잃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 저희 탐사플러스 취재팀의 결론입니다.

관련기사

[탐사플러스 19회]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실종자 가족들 사연 [탐사플러스 19회] 중국산 '바다 괴물'의 습격…어민 피해 늘어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