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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입력 2020-05-11 11:32 수정 2020-06-05 10:59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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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5)

기후변화 대응 그리고 그린뉴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바로 에너지 전환입니다. 그리고 이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탈석탄, 탈화석연료, 탈원전 등등. 에너지원의 대대적인 전환을 이야기할 때마다, 과거의 것을 벗어난다는 의도에서 쓰이는 표현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표현들로 인해 불가피한 오해나 갈등이 발생하곤 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정부는 최근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꾸준하게 필요성이 강조되어왔지만 이제야 비로소 예산이 책정되고, 시설의 부지와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겁니다.

원전 이슈를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각에선 정부의 '탈원전' 선언과 더불어 연구소 설립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해체연구소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먼저 짚어보면 좋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원전을 짓고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해체하는 기술이 없었다는 것, 분명 깜짝 놀라야 하는 일입니다. 분명 원전을 만드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이를 해체할 줄은 몰랐다니 말이죠.

2017년에 처음으로 고리 1호기에 대해 영구 정지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지난 연말엔 엎치락 뒤치락 논란이 이어진 끝에 월성 1호기도 영구 정지키로 했죠. 하지만 지금으로선 해체 기술이 없기에 해체도 못 하는 격입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원전은 전국 24기. 각 원전들도 언젠가는 수명을 다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원전이 싫어서가 아니라, 수명이 다 하여 쓸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해도 없애질 못 하고 그저 '방치'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당연히 지을 줄 알면, 쉽게 말 해 '부술 줄'도 알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탈원전'을 하든, 안 하든 원전 해체 기술은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 할 기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3223억원. 고리원전 인근에 하나, 월성원전 인근에 하나가 세워집니다. 고리원전 근처엔 7만 3천㎡ 구모로 본원이 지어집니다. 이곳에선 경수로 해체를 주로 연구할 계획입니다. 월성원전 인근인 경주 나아산업단지엔 2만 4천㎡ 규모로 분원이 지어집니다. 여기선 중수로 해체를 주로 연구합니다. 아무리 늦더라도 올해 안에 연구소 법인 설립을 마무리 짓고, 내년 하반기엔 첫 삽을 뜨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입니다.

현재 원전을 실제로 해체한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 일본 3개국에 불과합니다. 상황이 이런데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원전 약 450기 중 70% 가까운 305기가 노후 원전(운영 연수 30년 이상)이고요. 전 세계 원전 해체시장의 규모는 549조원에 달하는데요, 정부는 "2020년 중반 이후부터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밝혔습니다. 원전을 짓는 것보다 해체하는 게 더 어렵다보니 국내 노후 원전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생각하더라도, 원전을 지을 줄도, 해체할 줄도 안다면 당연히 좋겠죠.

"오늘 당장 원전 아웃(Out)!"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에너지 수급의 측면에서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퇴출시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임에 분명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흔히, 원전에서 사고가 날 확률을 "0에 가깝다"고들 합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가 생길 확률과 비교하며 말이죠. 뿐만 아닙니다. 비행기가 아예 격납 건물로 날아들어도 끄떡없다고도 합니다. 튼튼하고도 두툼한 구조물로 지진뿐 아니라 그 어떤 외부의 충격도 버틸 수 있다는 거죠.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자료 :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이 모든 것은 설계대로 오차 없이 제대로 건물이 지어졌을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국가 기간시설인데다 안전에 매우 신경을 써야만 하는 시설인 만큼 "그렇게 정확히 짓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두께 167cm 짜리 격납건물 벽에서 깊이 157cm의 구멍이 발견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곳곳에 구멍이 나는가 하면 증기발생기 바닥에선 망치도 나왔습니다.

설계대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도상훈련'과 같은 확률 계산만으론 실제 우리가 사는 지역에 건설된 원전의 사고 발생 확률을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겉보기엔 두툼한 콘크리트 외벽인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콘크리트가 부어지지 않은 구간이 있을뿐더러, 그 깊이와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한빛4호기의 방호벽 중엔 두께가 10cm도 채 되지 않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외벽보다 못한, 해머질 몇 번이면 뚫리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증기발생기 바닥에선 손 망치도 나왔습니다. 수술 마쳤더니 뱃속에 수술 가위와 거즈가 잔뜩 있는 의료사고처럼 말이죠.

우리나라 원전의 사고 발생 확률을 높이는 요인은 또 있습니다. 바로 '휴먼 에러(Human Error)', 인적 요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인적 요인에 의한 사고도 실제 발생했습니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해 5월, 한빛1호기에선 원자로의 출력이 급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수준을 한참 넘어설 만큼 원자로의 출력이 늘었던 겁니다. 근무 교대를 하면서 앞선 근무조에서의 특이사항은 전달조차 되지 않았고, 시험을 담당하던 직원은 25시간을 연속으로 근무하던 중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제어봉의 움직임을 판단할 책임자는 이와 관련한 사전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관련 경험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원자로의 사고 확률은 수학적 계산에 따른 결과입니다. 결코 '제로'는 나올 수 없는 결과고요. '만에 하나'라는 상황은 담당자들이 매뉴얼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설계도대로 제대로 건물을 시공하지 않으면, 백분의 일이나 십분의 일이 아니라 '100%'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전 사고를 두고 '화력발전소는 사고 안 나느냐'고 비교하려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하는 걸까요.

사고가 현실이 됐을 때. 우리는 다른 해외의 경우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들과 원전들의 거리가 크게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탈ㅇㅇ'은 어쩌다?

실제 사고가 발생한 한빛원전으로부터 광주광역시까지의 거리는 40km에 불과합니다. '긴급보호조치 계획구역'에 해당하는 반경 30km 이내에만도 14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살고 있고요. 한빛원전뿐 아니라 부산과 울산의 접경지역에 있는 고리원전도, 경주에 있는 월성원전도 원전과 시가지의 거리가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편입니다.

어느 정도로 가까운 걸까요. 국토 면적이 작아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별도의 '예외 규정' 없이는 미국 기준대로는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원전을 지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관련 규정은 미국의 규정을 대부분 차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30마일 이내에 평방마일당 500명'이 기준입니다. 이를 미터법으로 직역하면, 48km 내에 ㎢당 194명이 됩니다.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까지 만들어졌던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반경 50km 내에 ㎢당 1585명(2018년 기준)"에 달합니다. 미국 기준 대비 대략 8배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원전의 수명이 끝나는) 가동수명 시점인 2078년엔 902명으로 분석된다"고 하고요. 수명이 끝날 때에도 미국 기준의 4배가 넘습니다.

탈원전 세력, 원전 반대 세력이 꾸며낸 통계일까요? 원전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만든 '예비안전성분석보고서'에 나온 내용입니다. 원전부지로부터 대략 10km 이내엔 임랑·진하 해수욕장과 간절곶 등 관광지도 포함됩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는 불과 40km 거리고요.

그럼에도 어떻게 허가가 나올 수 있었던 걸까요. 건설허가 심사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국가 평균이나 미국 지침을 초과"한다면서도 "대도시와 충분히 멀고 입지 조건이 우수하다"며 "부적격 사유는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혀있습니다. 입지 조건의 우수성이 기본적인 인구밀도 기준을 앞서는 겁니다. 이 '입지 조건'엔 지질학적 안전성과 교통로 발달, 환경 영향 등의 특성이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수도권이 더 좋은 입지 조건을 보일 겁니다.

결국, 지으려고 점찍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지을 수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기준대로라면 지금의 원전들은 지어질 수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매뉴얼이, 기준이 대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원자력 기술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함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안전 기준도 충족시키기 어려울 만큼 좁은 국토, 밀집한 시민들 틈바구니에서 '예외 규정' 한 구절로 이렇게 원전을 유지하고, 새로 짓는 것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요.

앞서 서두에서 밝혔듯, 버튼 하나로 전원을 끄는 전자제품처럼 원전을 갑자기 끌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이를 해체할 기술조차 아직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있는 원전들 중 한빛원전처럼 부실공사가 이뤄진 곳은 없는지 조사해서 콘크리트 빈 곳은 메워야겠죠. 또, 엉뚱한 건설 도구가 그대로 들어있는 곳들이 또 없을지 조사해야겠죠. 여기에 전국 원전의 모든 인력에 대한 교육과 매뉴얼 정비 등을 통해 제2의 열 출력 사고가 없도록 해야 할 겁니다.

즉각적인 '탈원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원전에 반대하는 쪽도, 찬성하는 쪽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원전 시대의 끝이 조금씩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제 아무리 '만에 하나'의 확률이라곤 하지만, 그 하나의 리스크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죠. 또, 사용후핵연료뿐 아니라 각종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은 단순히 우리 세대의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EU는 원자력발전을 '지속가능금융' 지원 대상에서 숙고 끝에 제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10년간 최소 1조 유로를 투자하기로 한 EU의 그린딜 투자계획에서도 원전은 빠지게 됐고요. 유럽에서도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EU에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판단하는 데엔 크게 6가지 환경목표와 4가지 준수 요건이 있습니다. ①기후변화 완화, ②기후변화 적응, ③지속가능한 수자원 이용 및 보호, ④순환경제로의 전환, ⑤오염방지 및 통제, ⑥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보호 및 복원 총 6가지가 환경목표입니다. 4가지 요건엔 ①6가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 ②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는 없을 것, ③탄탄한 과학 기반의 기술 선별조건에 부합하는 활동일 것, ④최소한의 사회 및 거버넌스 안전에 부합하는 활동일 것 등이 있습니다.

EU는 원자력 발전이 이중 '중대한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활동(Do no significant harm)'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졌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치열한 논의 끝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물론,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부분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이렇게 너무도 자명하고도 객관적인 현실을 두고도 우리는 '탈원전'이라는 표현 앞에 정치적으로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충돌하곤 합니다. '탈ㅇㅇ'이라는 표현 이면에 어떤 래디컬한 의식이 담겨있기 때문일까요. 결국 우리도 원전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가 석탄발전과 작별하듯 그 다음은 원전인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전을 폐기한다는 것이, 특히 '탈원전'이라는 표현이 관련 기술의 천대나 폐기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발전소를 폐기하더라도 사용후핵연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등 우리와 계속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를 관리하고,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사용후핵연료나 각종 방사성폐기물의 재활용을 자유롭게 하려면, 또 관련 연구를 자유롭게 하려면 단순히 과학자나 엔지니어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죠. 정부가 외교적으로도 보조를 잘 맞춰줘야 할 것입니다. 제 아무리 사용후핵연료로 연구를 하고 싶어도 외교적인 이유나 각종 규제들로 손발이 묶일 수 있으니까요.

흔히들 원전, 핵 등등 관련 분야에 대해 '마피아'라는 표현들을 쓰곤 합니다.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인력이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여러 외부적인 요인들로 관련 연구들이 철통같은 보안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이 원전의 원리나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있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의 지나친 폐쇄적인 결정과 행동들이 부정적인 결과들을 불러온 일도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마피아'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사용된 겁니다.

포스트 원전 시대에선, 본격적으로 원전해체연구소를 짓는 상황에선 최소한 지금의 폐쇄성을 타파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겁니다.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대학들과 협력해 보다 많은 전문가들을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를 공부하고 알 수 있게 말이죠.

반대로 가장 가볍게는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이 원자력발전소 직원인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스레 어린 세대들의 장래 희망 목록에 '원자력 전문가'가 들어갈 수도 있을 테고요.

전국 각지의 원전이나 실험용 원자로 등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보면 간접적으로나마 참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들을 안 보이는 곳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곤 합니다. 물론, 직업적 본분에 따라 언제나 휴먼 에러에 대한 지적을 하거나 구조적인 문제점 등을 비판하지만 말이죠. '복잡하고 어려워서 알려줘도 모른다'는 생각, '누가 이걸 궁금해 하겠냐'는 생각, '이건 전문가한테 알아서 맡기면 된다'는 생각… 이젠 버려도 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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