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천재가 아니라 인재입니다"
28일 오전 10시께 태풍 '볼라벤'에 의해 충북 천연기념물 290호인 괴산의 '왕소나무'(王松·일명 용송(龍松))가 뿌리째 뽑혀 쓰러지자 청천면 삼송리 이장 이종구(58)씨는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씨는 "한 달 전 괴산군에 `왕소나무가 쓰러질 것 같다'며 보수를 요청했으나 `걱정하지 마라'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수령 600년 된 마을의 수호목이 쓰러진 건 괴산군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한 달 전 왕소나무의 뿌리가 20㎝가량 들떠 있는 것을 발견, 군에 적절한 조처를 하고 고작 1개뿐인 왕소나무 지주도 최소 5∼6개 더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씨의 요구로 현장 조사에 나섰던 대학교수와 괴산군 관계자들은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라며 뿌리 부분에 인공수피만 바른 뒤 돌아갔다.
이씨는 "1992년 뿌리 일부가 썩어 부패 부위를 제거하고 인공 충진재로 메웠으나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며 "뒤늦게라도 주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강풍에도 왕소나무와 나란히 서 있던 수령 100년 내외의 소나무 10여 그루는 초속 20여m의 강풍에도 끄떡없이 견뎌냈다.
"볼라벤이 닥치기 전에 뿌리 보강 작업만 했어도 600년 된 노송이 뿌리째 뽑히며 맥없이 쓰러지는 수난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씨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이씨는 "태풍이 물러가는 대로 괴산군, 문화재청 등과 함께 왕소나무를 살릴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소생이 안 된다면 주민들과 함께 제사라도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허탈해했다.
수령 600여년으로 추정되는 왕소나무는 키 12.5m, 둘레가 4.7m에 이르며 나무줄기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예로부터 '용송'으로도 불려 왔다.
주민들은 이 거목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수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제사를 지내왔다.
주민들은 이날 왕소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뒤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씨에도 몰려나와 처참하게 쓰러진 왕소나무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살피며 안타까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