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탐사플러스] 신출귀몰 박춘봉 '잔혹한 토막살인' 그 뒤엔…

입력 2014-12-22 22:16 수정 2014-12-22 23:52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험한 사건은 이렇게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수원 토막살인 사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죠.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또 생기진 않을까 하는 우려인데요. 피의자 박춘봉은 20여년간 위조여권과 밀항을 통해 한국을 안방 드나들듯 오갔습니다. 불법체류자였던 그가 어떻게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심지어 시신을 훼손할 월세방까지 계약할 수 있었을까요. 저희 탐사취재팀은 허술하기 그지 없는 출입국 관리 제도에 주목했습니다.

손용석 기자입니다.

[기자]

한파가 절정을 이룬 지난 17일, 수원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XXX야, 네가 사람이냐.]

박씨는 잔혹했던 범행 상황을 태연하게 재연합니다.

동거녀 김씨를 살해한 뒤 월세방에서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박씨를 체포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된 건 월세방을 계약해준 중개업자의 신고였습니다.

취재진은 최초 제보자인 중개업자를 만났습니다.

[중개업소 관계자/박춘봉 사건 제보자 : 혼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오후에 박춘봉이 들어오는 거예요. 칙칙한 옷차림과 표정으로 자기 엄마가 중국에서 들어올 건데 방을 구한다고.]

그리고 박씨는 월세방 가계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본계약을 하지 않는 등 뭔가 석연치 않아 결국 신고를 했다는 겁니다.

마침 당시 경찰은 수원 토막살인 사건을 공개 수사로 전환하며 거동이 수상한 사람의 신고를 받고 있었습니다.

[중개업소 관계자/박춘봉 사건 제보자 : 12월 7일쯤 임대인 분이 또 왔어요. 왜 세입자가 오지를 않냐고. 그 큰 돈(계약금)을 걸어놓고.]

그런데 JTBC 취재 결과, 박씨는 가계약 당시 '손씨'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중개업소 관계자/박춘봉 사건 제보자 : (범행 당일은) 사무실에서 만난 게 아니라 그 사람 얼굴도 못 봤어. 26일엔 그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 직원이 바깥에서 만났지.]

취재진은 박씨와 직접 부동산을 계약한 실장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중개업소 직원 : (박춘봉이 처음 나타난 건 언제죠?) 22일 저녁 7시쯤 방을 구해 달라고 한 거지. 23일엔 내가 없었고. 그 다음번엔 전화해서 26일 약속하고 온 거지.]

박씨가 범행 5일 전부터 시신을 훼손할 방을 찾고 있었던 겁니다.

신분 확인도 없이 가계약이 가능했던 이유도 밝혔습니다.

[중개업소 직원 : (평소) 인사도 하고 안면이 있었어요. 이름을 적으려고 하니까 아니 그냥 '손씨'라고 적어달라고 했어요.]

박씨는 불법체류자였는데도 거리낌없이 사람들을 만나며, 친분을 이용해 범행을 꾸민 겁니다.

취재진은 박씨 주변을 탐문한 끝에 그가 사건이 일어난 동네 주변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박씨는 월세방에서 훼손한 시신을 주변 팔달산과 수원천, 그리고 고금산 일대에 유기했습니다.

문제는 범행 장소에서 5km나 떨어진 고금산.

경찰에 따르면 운전면허도 없는 박씨는 고금산까지 택시를 타고 가 피해자의 머리와 장기를 유기했습니다.

박씨가 고금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금산 인근에 있는 한 시멘트 회사.

그런데 직원 대부분 박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시멘트 회사 관계자 : (박춘봉 씨가 여기서 근무한 건 맞나요?) 이 회사로 이름이 바뀌기 전, 다른 이름이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인가요?) 네. (1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오래된 이야기죠.]

박씨는 잘 알고 있던 곳을 시신 유기 장소로 삼은 겁니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 운전면허가 없어서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알고 있는 곳 위주로 시신을 유기할 후보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박씨는 1992년 초 단기 방문비자를 발급받아 한국 땅에 최초 발을 디딥니다.

하지만 비자가 만료된 후에도 계속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적발돼 그 해 12월 중국으로 쫓겨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박씨는 22년간 5차례나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10년 이상 한국에 거주했습니다.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씨는 1998년 중국인 이모씨의 여권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위명 여권을 사용한 겁니다.

[차규근 변호사/법무법인 공존 : 그 사람의 인적 사항이 아닌 제3의 인적 사항으로 발급이 되는 것이 위명여권입니다. 그 자체로는 식별이 어려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동네 주민들도 박씨가 불법체류자였다는 걸 몰랐다고 합니다.

[박씨 동네 주민 : 이 동네를 계속 자전거 타고 다녀서 사람들이 다 알죠.]

주민들과 싸우는 일도 잦았지만 신고를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박씨 동네 주민 : 우리 집에 잠시 살았거든요. 하도 성격이 괴팍해 내쫓아버렸어요.]

이번 수원 토막살인은 여러모로 2012년 사람들을 경악시킨 오원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잔혹하게 살인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는 점 외에도 둘 다 문서를 위조해 한국에 들어온 겁니다.

[정상환 변호사/당시 수원지검 검사 (2012년 4월) : 문서 위조 등은 탈북 여성과 혼인하는 과정에서 호적세탁 혐의로 몇 개월간 구속돼 있었습니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계속 구멍이 뚫리는 한 언제든 같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기사

수원 토막살인 현장 검증서 태연한 재연…"사람이야?" "박춘봉, 가족갈등·금전문제로 살해" 경찰 수사결과 발표 [밀착카메라] 또 '끔찍한 살인'…그 동네 직접 가보니 '시신 처리용' 월세방 구한 박춘봉…치밀한 계획 범죄?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