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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팽형에 처하노라~' 잊어버린 수치심

입력 2016-09-07 21:34 수정 2016-09-0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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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조선 철종 임금 시절. 한양 우포도청 앞 혜정교 한 가운데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습니다.

'팽형에 처하노라~'

포도대장의 명이 떨어지면 탐관오리로 붙잡혀온 사람이 포박을 당한 채 가마솥에 들어갔습니다.

'팽형' 즉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형벌을 받게 된 겁니다. 실로 '엽기적'인 형벌이었지요… 모두가 숨죽이는 순간…

그러나 반전은 있습니다. 가마솥의 물은 그저 미지근했습니다. 실제로 삶아 죽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솥에 들어갔던 사람은 마치 죽은 사람인 양 칠성판에 실려 돌아갔고, 장례가 치러지고, 그길로 금치산자가 되었다 합니다.

'수치심'으로 벌하는 것.

탐관오리에게 사회적인 죽음을 내렸던 조선시대의 팽형은 그렇게… 수탈당해온 백성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들 역시 그 팽형의 수치심을 느꼈을까…

현직 부장판사가 구속되고…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고… 또 다른 부장검사가 또다시 특별감찰선상에 오른 사건… 이들이 내세웠던 사회정의보다 결국 돈이 앞선 시대의 민낯…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굶어죽는 게 더 영광이다"

현직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인용한 초대 대법원장의 이 말은 지금 과연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가…

그들은 스스로만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은 국민들로부터 이미 '팽형'… 즉, 신뢰의 죽음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리 위에 커다란 솥이 걸리던 그 시대. 당시의 수치스러움이 한평생 이어질 부끄러움이었다면 지금의 수치스러움은 잠시만 버티면 지나갈 것만 같은, '유효기간'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무엇보다도 무거워야 할 대법원장의 사과 역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가라앉지 못하고 그저 연기보다 더 가볍게 떠돌고만 있는 오늘…

서울 광화문 인근 옛 한양 우포도청 앞 혜정교는… 이젠 실체도 없이 그 터만 남아 오늘날의 탐관오리들의 잊어버린 수치심과 시민들의 위로받을 길 없는 자존심을 상징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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