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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조준 사격' 바꾸고…언론 검열 문건 최초 입수

입력 2019-05-30 21:07 수정 2019-05-30 23:08

5·18 당시 언론 통제…계엄군의 '보도 검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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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언론 통제…계엄군의 '보도 검열단'


[앵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가짜뉴스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당시 참상을 제대로 기록한 기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계엄사령부의 보도 검열단은 신문과 방송은 물론이고 학보사 기사까지 일일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삭제하고 고쳤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그들의 검열을 거친 기사는 다 남아 있지만, 검열되기 전 초고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취재진이 이런 계엄사의 검열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문건 400페이지를 국내 최초로 입수했습니다. 계엄군의 조준 사격 내용은 시민들의 과격 시위 기사로 바뀌었고, 병원에 안치됐던 사망자 명단은 통째로 삭제됐습니다.

먼저 김재현 기자입니다.

[기자]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0년 5월.

당시 계엄사령부 산하 보도검열단이 작성한 문건입니다.

'주요 관제 내용'이라는 내용의 보고서에는 매일 보도되는 기사들을 검열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매체 이름과 기사 제목, 내용이 적혀 있고 그 아래 '전삭'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신문 지면에서 전체 삭제하라는 것입니다.

부분 삭제를 뜻하는 '부삭', '보류'로 분류된 기사도 있습니다.

'전삭', '부삭', '보류'된 기사 상당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1980년 5월 22일자 검열 보고서에 담긴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40대 시민 1명이 계엄군이 조준 사격한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는 기사 초고가 담겼습니다.

"계엄군이 애국가 소리를 듣자 메고 있던 M16으로 데모대 전열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는 묘사도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 대한 검열 판단은 '부분삭제'

실제 이날 발간된 신문에는 계엄군의 조준사격 내용이 모두 빠졌습니다.

대신 '"무장한 데모 군중이 도청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등 시위대의 과격성이 강조된 기사로 바뀌었습니다.

[이민규/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무기를 다시 반납하고 조금 평화롭게 가는 이런 데 대해서는 절대로 보도해선 안 된다. 일종의 폭도로 규정한 거죠.]

계엄군의 과잉 진압 행태를 담은 기사들은 어김없이 삭제됐습니다.

"시민들의 머리와 등을 짓밟고, 옷을 벗겨 마구 때렸다"는 5월 22일자 동아방송 기사는 전체 삭제됐습니다.

5월 27일 중앙일보가 작성한 병원별로 안치된 시민 사망자 명단도 전체 삭제됐습니다.

[조성호/당시 한국일보 기자 : 대장을 들고서 시청 가서 검열받는 거예요. 처음에는 줄을 간단하게 지우고 심하면 한 칸을 다 없애 버리고 나중에 봐서 전체가 안 된다 싶으면 그냥 쫙 그어 버리고.]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인 1980년 5월 18일부터 수습 국면에 들어간 6월 1일까지, 16일 동안 삭제된 기사만 1만1000여 건에 달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곽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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