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목격자 김일병 "윤일병, 음식물 핥아먹고 아침밥 굶어"

입력 2014-08-27 19:36

군인권센터, 김일병 증언 토대로 윤일병 추가 폭행 재구성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군인권센터, 김일병 증언 토대로 윤일병 추가 폭행 재구성

목격자 김일병 "윤일병, 음식물 핥아먹고 아침밥 굶어"


목격자 김일병 "윤일병, 음식물 핥아먹고 아침밥 굶어"


목격자 김일병 "윤일병, 음식물 핥아먹고 아침밥 굶어"


육군 28사단 포병대대 의무대에서 집단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승주 일병(22)에 대한 추가 폭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군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 은폐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27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윤 일병이 전입해 사망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중요 목격자인 김모 일병(전역)과 가족을 지난주 만났다며 직접 확인한 사건 내용을 추가로 폭로했다. 김 일병은 천식으로 의무대에 장기간 입실해 있으면서 윤 일병이 전입해 사망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중요한 목격자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김 일병의 증언을 토대로 전한 가해자들의 폭행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더 참혹했다. 김 일병의 진술을 토대로 군인권센터가 재구성한 사건 당일 윤 일병이 죽기 직전 앞뒤의 잃어버린 의혹의 40분을 들여다보면 가해자들은 물론 군 당국이 사건을 어떻게 은폐하려 했는지 낱낱이 드러난다.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망당일 의혹의 40분

김 일병에 따르면 사망 전날인 4월5일 밤부터 윤 일병의 행동이 느리고 말을 잘 못하는 정도가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김 일병이 밤에 너무 시끄러워서 깨 보니 주범인 이 병장이 윤 일병을 발로 차고 폭행하고 있었다.

이를 본 김 일병이 제지를 했지만 이모 병장의 폭행은 계속 됐고 윤 일병은 평소보다 숨을 심하게 몰아쉬었다. 이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에 허리통증으로 파스를 받으러 의무대에 간 병사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이 병사의 말에 따르면 이미 오전에 윤 일병은 숨도 올바르게 쉬지 못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숨을 심하게 몰아쉬는 현상은 과호흡증후군으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당시 윤 일병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임 소장은 설명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무차별적인 가혹행위가 들통날까봐 식사도 못하게 하고 맡은 임무까지 바꿨다고 한다. 사망 당일인 4월6일 김 일병이 새벽 5시께 일어나보니 윤 일병은 정좌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7시쯤 일어난 이 병장은 자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잤냐며 윤 일병을 또 다시 폭행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가해자들은 의무대에 윤 일병과 김 일병만 남겨두고 식사를 하러 갔다. 김 일병에 따르면 2주 대기가 끝난 3월 이후로 윤 일병은 아침을 거의 못 먹었다고 한다. 이모 병장이 응급대기라는 명목으로 윤 일병을 식당에 안 보내고 의무대에 남아 있게 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윤 일병은 165㎝의 키에 50㎏으로 체격이 작았지만 잘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생활관(내무반) 병사들과 함께 나눠먹으라고 부대에 음식을 넉넉히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음식은 윤 일병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병장이 중간에 가로 챘다고 한다. 집에서 보낸 음식은 물론이고 부대에서 식사조차 변변히 하지 못한 것이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의 임무도 바꿔치기 했다. 윤 일병은 의무대 5분대기조였다고 한다. 의무대는 5분대기조라는 이름으로 같은 연대 예하의 대대 행정실에 상주하면서 치료를 하는 것이 임무다. 5분대기조는 다른 부대에 나가 있어야 해서 힘이 들어서 계급이 가장 낮은 병사가 담당한다.

하지만 이 병장은 윤 일병 대신 이 일병을 보내고 윤 일병에게 응급대기를 시켜서 식사를 못하게 한 것이다. 주범 이 병장은 3개 대대에 5분대기조를 보내야 할 때도 하 병장과 이 상병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윤 일병은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임 소장은 "가장 말단 계급인 윤 일병이 해야 할 일인데도 윤 일병을 보내지 않은 것은 이 병장이 식사를 못하게 하는 등 계속 괴롭히기 위함도 있지만 윤 일병이 폭행당하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망 당일 냉동식품을 먹다가 사망했다는 가해자들의 진술도 거짓이라고 김 일병은 밝혔다. 이 병장이 체하는 게 뭔지 알려주겠다며 윤 일병의 입에 냉동식품을 강제로 우겨 넣으며 폭행했다고 한다.

이 병장이 윤 일병의 가슴을 치자 음식물이 밖으로 튀어 나왔다. 당시 가해자인 이 상병은 이 병장이 "먹어, 먹어, 계속 먹어, 먹다가 체하는 게 뭔지 알려 주겠다"며 윤 일병을 위협했다고 진술했다.

이 병장은 윤 일병이 음식물을 토해내제 이를 다시 입으로 주워 먹게 했고 그 과정에서 행동이 굼뜨다며 또 다시 폭행했다. 김 일병에 따르면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핥고 난 후 윤 일병은 "행동이 더 느려지고 눈빛이 희미해지고 축 늘어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윤 일병이 지속된 폭행으로 대답을 잘 못하자 이 상병은 윤 일병의 정수리를 큰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폭행했다.

윤 일병이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자 이 병장이 지 상병에게 "야, 때리기 힘드니까 지○○ 네가 때려라"고 말을 했다. 이에 지모 상병은 윤 일병을 침상 밑으로 내려가게 한 후 엎드려뻗쳐 시키고 10~20대 가량 폭행했다. 이후 가해자들은 가혹행위를 할 때마다 질문을 하고 3대를 폭행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러자 윤 일병은 눈에 띌 정도로 가쁘게 숨을 쉬면서 '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을 했다.

이 병장은 1분가량 물을 마시는 시간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김 일병은 그 시간이 3초 정도였다고 밝혔다. 3초 만에 물을 먹고 올 수 없었던 윤 일병은 늦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이 병장에게 두들겨 맞았다.

사실상 뺑뺑이를 돌던 윤 일병이 갑자기 양반다리를 하며 '지모 상병님, 오줌'하면서 기운 빠진 듯이 축 늘어져서 침상에 주저앉았고 윤 일병은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 일병은 이 모습을 본 이 병장이 "미친 척 하는 거다, 오줌이 있으니까 더러우니까 걔 끌어내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지 상병은 윤 일병을 침상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질질 끈 후에 다리는 바닥에 상반신은 침상에 걸쳐놓았다. 윤 일병의 상태를 확인해 본다며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들고 와서 측정을 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맥박이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이다'면서 '눈을 감고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의 윤 일병을 계속 폭행했다.

당시 이미 윤 일병은 눈이 조금은 감긴 상황이었고 눈동자가 돌아가서 흰자가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 일병에 따르면 이 병장은 윤 일병의 배 위에 올라가서 발로 밟았고 주먹으로 가슴을 "엄청 세게" 폭행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 상병도 가담했다고 한다.

일어설 힘도 없었고 이미 눈동자가 풀린 윤 일병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던 가해자들은 '얘가 이상하다,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니다 정상이다 물을 먹여보자'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1.5ℓ 페트병의 물을 윤 일병 입에 부어 넣었지만 윤 일병은 이를 삼키지 못해 대부분 흘러 넘쳤다고 한다. 가해자들은 그제야 다시 산소포화도를 측정했지만 이미 맥박은 떨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위기를 느낀 가해자들이 흉부압박을 하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기도확보를 위해 삽관을 했지만 윤 일병은 되살아오지 못했다. 김 일병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쓰러졌을 당시 윤 일병은 캑캑 거리거나 목을 잡는 등의 질식을 하면 나타나는 제스처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가해자들의 진술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임 소장은 "의무병인 가해자들 또한 질식이 발생했을 경우 일차적 처치법인 하임리히법은 사용하지도 않았다"며 "이는 가해자들도 윤 일병이 질식으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범 이 병장 "돈 몇 억이면 사람 죽이는 건 간단해"

김 일병에 따르면 이 병장은 평소에도 "심부름센터 같은 데에 돈 몇 억 주고 사람 몰래 죽이는 것은 간단하다, 아버지가 이전에 영남 근방에서 굉장히 잘 나가던 조폭이고 자기(아버지) 밑에 대신 살인죄로 들어간 부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조폭이라며 거짓말로 과장해서 얘기를 해 주변 병사들을 장악했던 것이다.

업무 수행 2주전부터 이 병장의 폭행을 지켜본 윤 일병은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나 GP로 가고 싶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망 전날인 4월5일 가족초청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연락이 없어서 윤 일병 어머니가 4월4일 부대로 전화했지만 "엄마, 여기는 특수한 경우만 하는 전화야"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런 후 윤 일병은 그날 밤 9시께 집으로 전화해서 4월에는 면회가 안 된다고 말을 했다.

임 소장은 "윤 일병 어머니가 전화한 곳은 자대배치 당시 대대장이 연락할 일 있으면 전화하라며 알려준 번호였다. 실제로도 많은 부모들이 이용하는 전화"라고 설명했다. 김 일병은 "윤 일병 어머니가 대대장에게 전화한 것을 두고 이 병장이 '부모님이 바로 부대로 간부한테 직접적으로 통화하는 건 안 좋은 거다. 너 한테도 안 좋은 거다'라며 윤 일병을 위협했다"고 밝혔다.

김 일병은 "윤 일병은 처음에 왔을 때에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활발하고 나서려고 했다. 가혹행위가 점점 심해지고 그 와중에도 나서서 하려고 하니까 그런 명목으로 때렸다. 점점 주눅이 들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힘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더 가혹행위가 심해졌다"고 증언했다.

특히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너무 힘들어 하자 일과시간에 1~2시간 재웠다고 한다. 의무대에 오는 간부들에게 윤 일병이 다리를 절고 아파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하루 평균 10여 명의 간부들이 의무대에 약을 타로 왔지만 아무도 윤 일병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더욱이 3월8~9일에는 대대장이 의무대에 왔었지만 윤 일병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한다. 병사들을 관리감독하며 보호해야할 간부들이 정작 병사들에게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김 일병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간부가 입실해 있을 때는 의무대 창고에서 윤 일병을 폭행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28사단의 군 인권 상황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일병은 28사단이 "소원수리나 마음의 편지를 하면 못 내려가게 하고, 못 쓰게 하고, 쓰더라도 선임들 있는 곳에서 쓰게 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일병이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 전혀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김 일병이 28사단 헌병대 조사 당시 가해자들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김 일병은 당시 수사실을 "소리 정도는 귀 기울여서 들으면, 그때 옆에서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거든요"라고 말했다. 조사를 받는 와중에 가해자 이 병장, 이 상병과 마주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김 일병 외에도 폭행 정황을 알고 있는 또 다른 목격자들이 있었지만 조사조자 되지 않았다. 김 일병에 따르면 사망사건 당일에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입실해 있어서 폭행 정황을 잘 알고 있는 김 일병(A)과 강모 일병도 있었지만 조사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임태훈 소장은 "28사단 헌병대 초동수사부터 군단과 검찰부 수사까지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 졌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며 "가장 유력한 증인인 김 일병이 유가족과 만나서 증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 일병을 세상과 차단시킨 것은 바로 군 당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3군사령부의 수사를 즉각 중단하게 하고 3군사령부에 대한 조사와 직무감찰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며 "공정한 재판의 진행을 위해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재판관할을 이전하고 수사권을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관련기사

윤 일병 사건 은폐·외곡, 거짓말로 일관한 군 '음주운전하다 신호대기 중 쿨쿨' 군장교 2명 적발 29일 윤일병 재판 연기…국방부 관할이전 결정후 재개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