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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출동] 베이비 박스, 70cm 상자서 시작된 세상

입력 2014-02-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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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인데, 버려지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갈 수 있게 만들어진 이른바 베이비 박스에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베이비 박스로 들어온 아기들은 유전자 검사, 아동보호소, 보육원 등 낯선 곳들을 거치게 되는데요, 베이비 박스가 유기를 방조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오늘(24일) 긴급출동에서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 관악구의 산동네에 자리잡은 교회 골목입니다.

부모 사정으로 키우지 못하게 된 아기를 두고 가라는 일명 '베이비 박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취재진은 가까이서 베이비 박스를 지켜봤습니다.

저녁 8시쯤.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아기를 품에 안고 베이비 박스 쪽으로 걸어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듯 주변에서 10분 넘게 서성입니다.

결국 상자 문을 열고 아기를 놓아둡니다.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집니다.

방문객은 또 찾아옵니다.

옷으로 아기를 둘둘 말은 여성이 상자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재빨리 아기를 놓고 갑니다.

홀로 남은 아기는 애처롭게 울기만 합니다.

교회 관계자들은 베이비 박스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자다가도 뛰어 나갑니다.

[교회 관계자 : 아무래도 더 올라가서, 여기로 안 오고 도로로 숨었나 봐.]

교회 봉사자에게 따라잡힌 사람들은 기구한 사연을 쏟아냅니다.

[영아 유기자 : 아기 아비도 사기꾼인데다가 수배 중이고. 어미는 자수하고 교도소 들어가야 되는 형편이에요. 아비가 아기를 인터넷에 팔려고 내놨었대요.]

버림 받은 게 처음이 아닌 아기도 있습니다.

[영아 유기자 : 딸이 없어서 데려다 키우려고 했는데. 남편과 상의하니까 이렇게 입양하면 큰일난다고….]

[이종락/사랑공동체 교회 목사 : 불법 입양을 했네.]

[영아 유기자 : 돌려주려고 아기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데리러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전화했더니 없는 번호라고.]

태어난 지 4개월도 안 돼 벌써 두 번째 버림을 받은 겁니다.

뱃속에서 열 달, 세상에 나와 일주일 남짓 이어졌던 엄마와의 인연은 베이비 박스의 문이 닫히면서 영원히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건물 안에서 벨이 울리면 베이비 박스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이종락/주사랑공동체 교회 : 아이고. 아무 것도 없이 왔네. 추웠겠다. 아기가.]

여기에 온 아이들은 부모 품에서 자라는 아이와는 전혀 다른 통과 의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관들이 찾아와서 하는 DNA 채취가 대표적입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실종 아동 시스템에 등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영란/주사랑공동체 교회 : 눈이 똘망똘망하네. 밥 언제 먹었어? (방금 먹었어요.) 분유가 묻으면 채취가 안 되는데. 아, 입 벌려봐.]

DNA 채취 장비를 입에 넣는 건 괴롭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실낱 같은 끈이 될 수 있습니다.

평화가 찾아오지만 잠시 뿐입니다.

월요일 오후 2시. 구청 직원 10여 명이 아기들을 데리러 교회를 찾아옵니다.

[구청 직원 : 1번부터 내려와야지. 안 헷갈리지. 얘가 1번, 얘가 2번, 얘가 3번.]

이름 없는 아이들은 번호로 불립니다.

구청 직원들은 아기를 1명씩 품에 안고 내려와 차례로 봉고차에 오릅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시에서 세운 아동병원입니다.

직원들은 아기의 진료 신청서를 쓰기 시작합니다.

성과 이름은 구청 직원이 즉석에서 짓습니다.

[구청 직원 : (여기서 바로 지어요?) 호적을 올려야 되니까. (누가요?) 저희가요.]

이제 아기들은 더 이상 번호로 불리지 않아도 됩니다.

무사히 검진을 통과한 아기들은 병원을 나서자마자 다시 이동할 준비를 합니다.

30분가량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성북구의 임시 아동 보호소.

역시 낯선 곳입니다.

[보육 교사 : 첫날엔 무척 보채요. 기존에 있던 곳과는 차이를 느끼는 거죠.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정을 붙일 새도 없이 아기들은 또 떠날 채비를 해야 합니다.

보육원 두 곳에서 아기 4명을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1주일 새 보호자가 베이비박스 목사에서 구청 직원, 보호소 소장, 그리고 보육원 원장까지 4번이나 바뀐 겁니다.

아기들이 보육원을 배정 받는 과정은 훈련소 신병의 자대 배치를 연상케 합니다.

[이순덕/서울아동복지센터장 : 시에서 아동양육시설을 정해주기까지 이곳에서 보호하는데 32개 시설에서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보고 빈 곳으로 보냅니다.]

6명의 아이 중 3명은 서울, 나머지 3명은 경기도와 경북으로 살 곳이 정해졌습니다.

아기들은 배정 받은 대로 갈 뿐, 스스로 살 곳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2시간 가까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논밭을 지나 경기도 이천의 보육원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기들은 모두 17명, 이 중 12명이 베이비 박스 출신입니다.

아기들은 한자 이름을 얻고 호적에 올릴 성과 본관도 정합니다.

대부분 가정법원 소재지를 기준으로 본관이 정해집니다.

이제 아기들은 새로운 터전에서 힘겹게 홀로서기를 준비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버려진 아기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서울에 버려진 아기는 모두 239명인데 그 중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아기가 90%를 넘습니다.

설치 직후인 2010년의 50배를 넘은 겁니다.

이 때문에 베이비 박스가 영아 유기를 방조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김도현/해외입양협회 뿌리의 집 원장 : 다른 사람들이 저 곳에 아기를 갖다 버리니 나도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충분히 갖게 했죠.]

하지만 베이비 박스가 없었다면 아기들이 길바닥에 버려졌을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이종락/주사랑공동체 교회 : 먼저 (아기를) 보듬어 놓고 이야기를 해야죠. 아무런 대책과 대안 없이 철거하라고 하면 살인을 하라는 것이죠. 베이비 박스 문이 안 열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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