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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초고속 설립', 박 대통령-리커창 대화에 단초?

입력 2016-10-11 20:40 수정 2016-11-0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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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미르재단과 관련한 큰 의문점 중에 하나는 수백억 원대 규모의 재단이 단 나흘 만에,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듯 급히 설립됐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서 보도해드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회의 속기록 원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치부 송지혜 기자가 나왔습니다.

송지혜 기자, 미르재단이 신청을 하자마자 며칠 만에 허가가 됐고, 하여튼 이런 초고속 설립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 문화예술위원회 속기록 안에 있다는 거죠?

[기자]

네, 미르재단 설립 배경과 관련해 각종 추측이 난무했는데요.

지난해 11월 6일 열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회의 속기록 원본을 보면요. 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실타래를 푸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회의 두어달 전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의 면담을 언급하면서 "리커창이 한중 간에 문화예술교류를 활성화시키자는 얘기를 하면서 뭔가가 됐겠죠"라고 말한 겁니다.

[앵커]

리커창 총리의 발언이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건데, 사실 미르재단 설립 움직임은 그 전부터 있었다고 알려져있지 않나요.

[기자]

네, 날짜별로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지난해 7월 24일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17명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정확히 확인은 안 되지만, 미르재단 설립의 단초가 이 때 나온 게 아니냐는 얘기가 경제계에 파다합니다.

이후 두 달 뒤인 9월 2일, 박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리커창 총리와 만나 한중을 하나의 문화공동시장으로 만들자며 2000억 원 규모의 문화 관련 벤처펀드를 조성하기로 약속합니다.

사실상 재계에서는 이 벤처펀드와 미르를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앵커]

7월 24일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고 9월 2일 리커창 총리와 벤처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재단 설립을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었을까요.

[기자]

그해 10월 31일 리커창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긴박하게 움직인 분위기가 포착됩니다.

같은 달 24일부터 27일까지, 즉 나흘 만에 재단 설립이 속전속결로 끝납니다.

24일, 이번 의혹의 중심에 있는 차은택 감독의 후배가 미르 사무실을 계약합니다.

이튿날인 25일, 이날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18개 기업에 긴급 사발통문을 보내고 다음날 기업 임원 50여 명이 서울 팔레스호텔에 모여 급조된 서류에 도장을 찍습니다.

이후 재단 설립신청과 허가, 현판식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마치 군사작전 하듯 일사분란하게 진행된건데요.

리커창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권력 핵심부에서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앵커]

9월 중국에서 리커창 총리와 약속을 하고 10월 리커창 총리가 방한하기 전까지 속전속결로 설립했다는 말씀인데요. 그런데 정작 서울을 찾은 리커창 총리는 빈손이었지 않나요?

[기자]

네, 리커창 총리는 2000억 원대 펀드와 관련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이 "문화산업 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 확대의 중요성을 공감했다"는 원론적인 말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앞서 첫 답변에서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리지 못했는데요. 관련 발언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 속기론 원본에 있는 발언이 다른 미르관련 발언과 함께 삭제된 채 국회에 제출된 발언이라는 점입니다.

[앵커]

야권에서는 미르재단이 박 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해서 만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요. 진짜 재단을 만든 목적이 뭐든 간에 리커창 때문에 설립이 급조됐다는 추정이 가능해진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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