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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동지이자 라이벌…김영삼-김대중, '애증의 50년'

입력 2015-11-22 11:53 수정 2015-11-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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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YS와 DJ.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곤 우리 정치사를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두 인물은 반평생 민주화의 동지이자 라이벌로 협력하며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성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두 전직 대통령은 1950년대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30대 시절부터 민주당 신구파의 기수로 성장합니다.

경상도 부잣집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전남 목포 하의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성장 배경이 달랐음에도 뜻이 잘 통했습니다.

두 사람이 40대 기수론을 주장하며 맞붙은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은 우리 정치사에서 흔치 않은 명승부로 기억됩니다.

당시 예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1위를 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해 2차 투표에 돌입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역전에 성공하는 이변을 연출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선거운동 지원에 나섭니다.

두 사람은 박정희 유신과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내내 탄압을 받으면서도 민주화와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칩니다.

두 사람은 야권의 단골 메뉴인 후보단일화의 원조입니다.

1987년 첫 직선제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에 맞서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결렬됩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틀어졌고 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삼당 합당에 참여하면서 반목을 거듭합니다.

92년 대선에서 두 사람은 세 번째로 맞붙었습니다.

결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승리.

김대중 전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고 정계를 떠납니다.

하지만 바로 5년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하며 두 사람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두 사람이 다시 화해를 한 건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직접 병문안을 한뒤 화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정치인들 역시 화합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영원한 동지이자 라이벌로 한국 정치사에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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