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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위안부 문제 백서'조차 없었던 한국 정부

입력 2014-06-23 21:36 수정 2014-06-2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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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위안부 문제 백서'조차 없었던 한국 정부


오늘 외교부가 이른바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에 대한 우리정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뱃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를 초치해, 이례적으로 50분 가까이 면담을 했는데요. 사실상 조태용 1차관이 50분 동안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치라는 것이 상대국에 대한 항의의 형식이기 때문인데, 뱃쇼 대사는 한마디로 조 차관에게 50분 동안 혼나고 돌아갔습니다.

고노담화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이미 벌어졌고, 아베 정권이 재출범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됐던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외교력으로는 일본의 이런 시도를 막지 못했습니다. 우리 외교력의 한계입니다.

오늘 정부가 앞으로 취하게 될 조치 몇 가지를 밝혔는데, 이 가운데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백서를 이제야 발간하다니 만시지탄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차원에서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없었다니 말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1991년 경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당시 '범정부 정신대 관련 대책반'(당시에는 정신대라고 표현했으나, 추후 위안부와 다른 개념이어서 정확한 표현은 위안부가 맞습니다)이 있었습니다. 외교부가 대책반장을 맡아 진행이 되어오다가, 중간보고서만 작성한 뒤, 대책반은 사실상 해체됐습니다.

언제 해체됐는지 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1993년 고노담화가 나오면서 어느 정도 문제가 사그라들었다고 판단했는지 활동이 지지부진해졌던 모양입니다.

이번에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를 보면, 일본이 먼저 실태 조사를 실시했고 고노담화 발표 6일 전에 비로소 우리 정부에 담화문 표현 등에 대해 의견을 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증언을 청취했고 ‘위안부의 강제동원, 구 일본군에 의한 운영’ 등의 결론을 내립니다. 한국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을 일본 정부가 한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고노담화가 나왔고,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국제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UN 특별보고관의 97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98년 맥두걸 보고서도 이 때 나옵니다.

그리고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하원의 결의안이 마이크 혼다 의원의 주도로 2007년 통과됩니다. 같은 해 호주 상원 결의안, 네덜란드 하원 결의안, 캐나다 하원 결의안, 유럽 의회 결의안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국제사회가 움직이는 동안 사실상 우리 정부가 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정대협과 나눔의 집 등 시민단체와 학계 연구자들에 의해 문서를 발굴하고, 국제사회를 압박하고, 피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일이 이뤄졌을 뿐입니다.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라는 취지의 결정이 나온 것은 뒤늦게나마, 한국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벌이자, 한국에서는 뒤늦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고노담화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공부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베 정권이 고노담화를 문제삼지 않았더라면, 또 2년전 위안부 소녀상에 어떤 우익 정치인이 말뚝을 박지 않았더라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모르는 사이 조용히 눈을 감았을지도 모릅니다.

지난주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가 외교부에 찾아와 고노담화 검증과 관련, 사전 설명을 했을 때는 "이번 검증결과 발표로 고노담화 신뢰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스가 관방장관 역시 "고노담화를 계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태용 1차관은 오늘 뱃쇼 대사에게 "진정으로 고노담화를 계승할 생각이 있다면, 54명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고 타일렀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도 시간이 얼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뒤늦게나마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백서를 만들기로 한 것은 잘 된 일입니다. 외교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JTBC 정치부 윤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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