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취재설명서] 삼성 '권익' 지켜주는 권익위, 속수무책인 정부

입력 2018-04-09 15:04 수정 2018-04-09 15:57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취재설명서] 삼성 '권익' 지켜주는 권익위, 속수무책인 정부


지난달 27일, 삼성이 다급히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았습니다. 한 '보고서' 의 공개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삼성이 공개를 원치 않는 보고서의 이름은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이 보고서에는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 내 공정 과정과 이때 쓰이는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법원이 아닌, 권익위를 다급히 찾은걸까요?

▶법원 "보고서는 영업비밀 아니다"

올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에서는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온양 공장에서 28년간 일하다 2014년 백혈병으로 숨진 이모씨의 유족이 2016년 노동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결과였습니다.

법원은 작업환경보고서가 '영업비밀'이 아니며, 노동자들의 건강과 알 권리가 더 중요하므로 공개하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노동부는 이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여 정보공개 요청을 수용하겠다는 지침을 세웠습니다.

노동부가 이런 지침을 세운 이유는, 삼성이 작성한 보고서가 노동부에 제출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동부는 그동안 '영업비밀'이라며 보고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여왔던 겁니다.

노동부로 하여금 삼성 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결론내린 판결은, 2007년 삼성 직업병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이래로, 처음이었습니다. 이전 정부에서는 삼성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왔지만, 이번에는 달라진 법원 판단을 근거로 정부 태도도 달라진 겁니다.

▶법원 판결 나오자 '권익위'로 달려간 삼성

그런데 이번엔 다른 곳에서 길이 막혔습니다. 앞서 말한 권익위입니다.

법원 판결 이후 노동부가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하자, 삼성은 법원이 아닌 권익위 산하 행정심판위원회로 달려가 노동부의 행정처분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행정심판위원회는 정부의 부당한 행정처분으로 권익을 침해받은 국민이 간편하고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절차입니다. 소송과 달리 무료이고, 신속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보통 영업정지나 운전면허 취소 처분과 같은 비교적 간단안 사안에 대해 심판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삼성은 이 제도를 이용해 노동부의 정보공개를 막았습니다.

노동부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일한 뒤 혈액암을 얻은 김 모씨가 산재 신청을 위해 청구한 삼성 탕정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3월 27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삼성 디스플레이에서 행정심판위원회에 정보공개를 '당장' 막아달라는 '집행정지'와 이 보고서를 노동부가 '앞으로도' 공개하지 못하게 판단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신청했습니다.

▶'위원장 직권 처리'와 '위원회 추인' 과정의 불투명성

우선, '집행정지'는 행정심판위원장 직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위원장이 공석이라 직무대행인 상임위원이 이를 처리했고, 사후 동의 과정인 '추인' 절차를 밟아 확정됐습니다.  JTBC는 지난 2일 이를 뉴스룸에서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해 집행정지 신청이 몇건이나 들어오고, 위원장이 직권으로 집행정지를 받아들이는 건 얼마나 될까.

 
[취재설명서] 삼성 '권익' 지켜주는 권익위, 속수무책인 정부

[표1]

[표1]에 나온 바와 같이 지난해의 경우는 집행정지 신청 건은 2159건, 직권으로 이를 받아들인 건 2%에 불과한 43건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원회 측은 취재진에게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집행정지의 경우는 대부분 바로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정보공개'를 막아달라고 요청한 집행정지를 무조건 받아들였을까요?

 
[취재설명서] 삼성 '권익' 지켜주는 권익위, 속수무책인 정부

[표2]

지난해 2159건 중 정보공개 집행정지 요청 건수는 1%에 불과한 21건이었지만, 위원장 직권으로 정지된 건 이 중에서도 4건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3일 행심위원회에서는 위원장 직권 처리에 대한 위원회의 동의 절차인 '추인'과정이 있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이날 세종시 권익위 건물 7층에서 열리는 위원회를 찾아갔습니다. 

이날 위원회는 '집행정지'결정을 내린 위원장의 직권 결정을 '추인'했습니다. 권익위는 행정심판법을 바탕으로 처리한 것이라는 답을 되풀이했습니다. 행정심판법에 따르면 위원회 심리를 기다릴 경우 중대한 손해가 우려되면 위원장이 직권으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나와있습니다.

결국 법원과 정부가 공개하기로 결정한 보고서는, 삼성이 권익위를 찾아가면서 다시 '행정심판'을 거치게 된 겁니다. 보고서 공개를 놓고 수년에 걸친 논의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일 열린 위원회의 동의 과정은 어땠을까?  위원회에는 상임위원을 포함한 9명의 위원이 참여합니다. 그런데 필수 참석 상임위원 3명 중 1명이 삼성전자 임원 출신이었습니다. 이에 산재 신청을 위해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던 김 씨 측 노무사는 해당 인물을 논의 과정에서 빼 달라는 '기피 신청'을 냈지만 신청자가 제 3자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노동부와 삼성디스플레이였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당시 권익위에 약 5시간 머물며 기피 신청에 대해 물었지만, 회의 과정이 비공개라고 밝힐 뿐 별다른 설명이 없었습니다. 3일 JTBC 뉴스룸은 삼성의 보고서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권익위의 결정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내용과 함께 이 위원이 참석한 것이 적절치 않다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권익위는 보도 이후에야,  해당 위원은 이 안건을 논의할때 회의실을 스스로 빠져 나가 논의를 '회피'했다며 기사를 정정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권익위에서 밝힌대로 정말 회의실을 빠져나갔는지 확인하려면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길일텐데, 여전히 회의 내용은 비공개입니다. 해당 인사가 '위원장 직권 처리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수 없습니다.

행정심판위원회는 정부의 행정처분을 취소시킬 수 있는 막강한 효력을 가지는데, 위원장이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위원들은 누가 참석하는지, 그리고 왜 동의하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하다못해 법원도 재판은 누구나 방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판결에 그 이유를 적시하는데 말입니다.

▶'총공격' 펼치는 삼성, 쏟아지는 행정처분 요청

삼성이 권익위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는 JTBC 보도 이후, 삼성이  다른 공장에 대해서도 행정심판과 소송을 제기한 것이 추가로 알려졌습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서 속 내용이 국가 핵심기술인지 판단해 달라고도 요청했습니다. 이에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의 보고서가 공개되면 '영업비밀'이 새 나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보고서에 삼성의 '영업비밀'이 담겼다면, 남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어떤 물질에 노출되는지도 모르고 일해도 되는 것일까요? 2007년 삼성 반도체 직업병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논란입니다.

노동자들은 긴 투쟁 끝에 보고서 내용이 영업비밀에 해당되지 않고, 국민의 건강과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법원 판결을 이끌어 냈는데,  다시 논의는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법과 절차를 따른 것 뿐'이라고 앵무새처럼 말하고, '기업이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니 어쩔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공무원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 보고서 공개 여부는 행정심판과 소송을 거치면서 다시 수년을 끌 수 있습니다.

삼성이 '절차'를 내세우는 동안, 오늘도 노동자들은 어떤 유해물질 속에 있는지 모르는 채 일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삼성 디스플레이 공장서 3년 일했는데…30대에 '희귀암' [인터뷰] "정부기관 휘어잡아 최소한의 정보조차 막는데는 삼성이 압도적" [트리거] 나는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다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