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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18 당시 사천서 소위로…훈련기에 폭탄 장착"

입력 2017-08-22 21:53 수정 2017-08-23 01:49

"실제 출격 명령 시 민간인 어쩌나 자괴감"
"계엄사령관 담화 등 뒤숭숭…'광주 목적지' 느낌으로 알아"
"북 대비용? 당시 비행기, 연료 문제로 전방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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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출격 명령 시 민간인 어쩌나 자괴감"
"계엄사령관 담화 등 뒤숭숭…'광주 목적지' 느낌으로 알아"
"북 대비용? 당시 비행기, 연료 문제로 전방 갈 수 없었다"

[앵커]

지금부터는 예고해드린대로 광주에 대한 공군의 폭격 준비와 관련해서 또 다른 증언을 해주실 분과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수원비행장 전투기 조종사 출신, 그분의 어제(21일) 증언을 뉴스를 통해 직접 듣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조종사 출신 예비역 공군 장군인데요. 5·18 당시 사천 훈련비행단 조종학생으로 있으면서 역시 광주를 상대로 한 폭격에 대비했다는 증언입니다. 성함은 밝혀드리지 않고, 전화로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어렵게 증언에 나서주셔서 우선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네.]

[앵커]

사천 비행장에서 소위로 당시에 훈련을 받던 중에 겪은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때 상황을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시 사천훈련기 A-37B는 베트남전에서 공대지 공격기로 사용되었고요. 70년대 중반에 우리 공군 조종사 비행훈련용 겸 유사시 공격기로 활용하기 위해 헐값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그 항공기는 기관총과 500파운드 GP 밤이 장착 가능한 기종으로 주임무가 훈련용이라서 폭탄 장착된 파일런도 달지 않고 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폭탄이 장착이 되었죠. 또한 당시 저희들이 알고 있었던 상황은 광주에서 큰 소요가 있다고 하더라라고 하는 정도의 풍문으로 광주의 일을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제 옆에 나와 있는 사진 잠깐, 화면으로 나가고 있는데요. 이게 당시에 타셨던 A-37B 비행기입니까?

[맞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실 때 월남전에서 공대지 공격에 주로 쓰이던 비행기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즉 하늘에서 땅으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임무가 주된 임무였다, 그런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것은 나중에 도입해서 주로 훈련기로 썼었는데. 따라서 훈련기 때는 당연히 폭탄을 실을 일이 없었는데 5월 그때, 그날 대기명령을 했던 날 폭탄을 실었다. 그날이 혹시 며칠인지 기억을 하십니까?

[그날은 지금 현재 정확히 기억이 없습니다마는.]

[앵커]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수원비행장에서 출동 대기했던 예비역 장군께서 20일 내지 21일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기록상에 따르면 5월 20일 밤에 첫 발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21일 낮부터는 본격적인 집단 발포가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죠?

[네.]

[앵커]

그래서 어제 그분께서 수원비행장에서 출동 대기하셨던 그분의 날짜가 거의 그때하고 비슷한 그런 상황이 되는데 아마 지금 저하고 말씀 나누고 계신 장군님께서도 그 시기쯤에 대기를 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그런데 어제 수원 쪽에서 근무하셨던 분의 말씀에 따르면 20mm 고성능 기관포, 이걸 장착을 했고. 500파운드 폭탄 두 발로 무장을 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네.]

[앵커]

지금 장군님께서는 사천비행장에서 그 항공기 무장상태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까?

[그 A-37B 항공기는 공대공 미사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공대지 GP 밤 500파운드 폭탄과 12.5mm 기관총을 장착한 걸로 기억이 됩니다, 그날.]

[앵커]

아예 공대공 미사일은 장착하지 않는 비행기군요.

[장착할 수 없는 비행기입니다. 순수한 공대지 비행기입니다.]

[앵커]

순수하게 공대지용으로만 쓰이는 비행기다.

[그렇습니다.]

[앵커]

관련 질문을 이따 또 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시도 아닌데 그 당시에 훈련생도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소위로서. 훈련생도 공습에 참여합니까, 만일에 작전이 벌어지면?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당시 그 중등비행교육 과정에 공대공, 공대지 사격훈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들이 500파운드 폭탄 공격을 처음했습니다. 그래서 이 항공기에는 조종석, 즉 시트가 사이드 바이 사이드로 2인승이라서 교관들만의 충당으로는 시트가 남습니다. 그래서 우측석에 조종 학생 몇 명이 레이밍되었습니다, 그렇게 기억이 됩니다.]

[앵커]

그런데 광주가 목적지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는 뭐냐 하면 계엄사령관님의 대국민 담화 전후에.]

[앵커]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무장장착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항공기에 무장을 했기 때문에 느낌으로 알았고. 지금은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 칭하지만 당시에는 광주사태, 광주사태 하여 굉장히 뒤숭숭했습니다. 그런데 교관과 학생들 모두 다가 상부에서 실제 출격 명령이 떨어지면 전시도 아닌 상태에서 실제 밤을 드롭시키면 저 민간인들은 어떻게 하나, 큰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앵커]

그 당시에 부대 계셨던 분들한테.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버리고 탈출 시에도 그렇게 우리가 교육을 계속 받아왔습니다마는 본능적으로 도시나 학교나 마을을 피하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0.1초나 0.01초를 놓쳐서 순직 사망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계엄사령관이 칭한 그 당시 무장폭도들이라 하여도 적군이 아닌 민간인인데 어떻게 무장발사를 할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모두들 그 당시에 참 혼란스러웠고요. 한마디로 참 고뇌였습니다.]

[앵커]

당시의 상황, 그리고 심적 상황, 갈등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지금 기억하고 또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그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셨다는 거 자체가 목적지가 분명히 광주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셨다는 그런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들은 소위고, 조종학생이었기 때문에 어디라고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마는, 누구라도. 하도 그 당시에 광주사태라는 말이 많이 돌았기 때문에, 소요사태가 크게 났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느낌으로 다 알고는 있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매우 중요한 증언이십니다, 사실 이 내용은. 그런데 제가 어저께 증언하신 분께도 똑같은 질문을 드렸습니다마는 그 당시에 신군부 쪽에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광주가 목적지였느냐, 아니다. 그러니까 광주에서 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소요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북한이 준동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얘기할 가능성이 크고.

또 국방장관이 오늘 국회에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이 광주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서, 물론 그건 확인한 상태에서 나온 답변 같지는 않습니다마는.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A-37이라는 그 비행기로는 그 무장으로 그 항공기 사이즈로 연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방으로 갈 수도 없으며, 전시가 아닌 상태에서 그 항공기로 무장운용을 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그리고 위의 언급처럼 이 항공기의 용도가 비행훈련용 항공기입니다. 그래서 아니라는 거죠. 북한을 대비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렇게 봅니다, 저희들은.]

[앵커]

그건 조종사 출신이신 전문가로서의 말씀을 저희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행기 종류라든가 또 폭탄의 무장상태라든가 이런 것을 봤을 때 도저히 전방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연료 문제도 있고요.]

[앵커]

계셨던 사천비행장에서 광주까지는 한 150km 정도 되죠?

[그렇습니다. 딱 150km입니다.]

[앵커]

수원에서보다 가까운 상태 아니었겠습니까?

[훨씬 가깝죠, 그렇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루 만에 이것이 해제가 됐죠. 그러니까 보도해드린 바에 따르면 신군부가 공습계획을 가지고 있다가 미국이 말렸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혹시 그래서, 이건 뭐 결정권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아실 수가 없겠습니다머는. 그래서 아마 취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죠?

[저희들이 거기까지는 접할 수 있는 입장이나, 접할 수 있는 계급이 아니라서 잘 모르고요. 그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라디오 특별 담화가 아마 5월 20일 전후에 있은 걸로 기억이 됩니다마는 정황상 그날 전후일 가능성이 높으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장착 후에 24시간 이내에 무장해제가 되었던 것은 기억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 무장한 거 때문에 비행훈련을 못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명히 24시간 전에는 무장해제가 된 걸로 분명히 기억을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말씀해주시는 내용을 쭉 보면 분명한 것만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어떤 추측이라든가 이런 것에서 나온 내용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확한 내용만 말씀해주신 것으로 지금 제가 느끼는데. 다만 그래도 오래전 일이기 때문에 지금 장군님의 기억이 혹시 기억의 재구성이라든가 이렇게 해서 잘못된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셨습니까? 지금 저한테 말씀하신 내용을?

[어제부터, 이번에 이 사건이 아마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마는. 자료도 없고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한계는 있습니다마는 민항조종사인 동기생과 이야기를 해본 결과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기억을 하게 되었고요. 더군다나 당시 옆대대, 무장한 그 비행대대의 옆대대 정비사 한 분이 더 구체적으로 오늘 저에게 증언을 해주었습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어떤 내용입니까?

[사천의 훈련비행단에는 비행장 포탄 장착이 너무나 이례적이기 때문에 그 정비사분이 무장 장착한 비행기 대수도 대충 17대나 18대 정도로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오늘 증언해 주었습니다.]

[앵커]

당시의 사천비행장에 있던 훈련기는 전체 몇 대 정도였다고 기억을 하십니까?

[아마 24~25대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그 정비사분의 말씀에 따르면 거기 있던 비행기, 그러니까 그 중 대부분에 폭탄을 장착했다는 이런 증언이네요.

[그렇게 봅니다. 저도 개수는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앵커]

그런데 굉장히 구체성을 띤 그런 증언이라고 일단 생각이 듭니다. 특히 그분의 말씀은.

[네, 그렇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혹시 그때 일지라든가 이런 어떤 그 증거, 이런 것들이 기록이 남아 있을까요?

[그 문제도 오늘 동기생과 얘기를 해보았습니다마는. 그 당시 비행단작전과, 지금은 비행전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마는. 그 자료가 남아 있을 개연성은 굉장히 적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계엄 하였기 때문에 계엄일지도 현재 우리가 보면 버렸는지 없앴는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을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그런 자료가 있을 개연성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어제 저희들이 이 내용을 보도해드린 이후에 지금 청와대라든가 아니면 또 행정안전부라든가 또 정치권, 특히 광주 시민사회에서 굉장히 진상조사에 대한 어떤 의지를 요구하고, 또 갖고 있는 것으로 지금 보도가 됐습니다. 혹시 정부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진행되면 직접 증언해주실 생각도 있으신지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 증언은 제가 군을 분열시키거나 민군을 이간질하거나 군을 폄훼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요.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측면이기에 언제든지 증언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화해와 관용은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군의 명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평생을 공직하셨던.

[네.]

[앵커]

알겠습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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