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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18 당시 조종사 "공대지 무장, 설정된 목표 공격하기 위한 것"

입력 2017-08-21 22:28 수정 2017-08-23 01:31

"5·18 며칠 뒤 무장 지시…가용 비행기 전부 대기하라 해"
"북한군 움직임 대비였다면 '공대공 무장'이 상식"
"공중에서 지상 목표물 판단 어려워…출동명령이 곧 공격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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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며칠 뒤 무장 지시…가용 비행기 전부 대기하라 해"
"북한군 움직임 대비였다면 '공대공 무장'이 상식"
"공중에서 지상 목표물 판단 어려워…출동명령이 곧 공격명령"

[앵커]

저희가 이 내용은 긴 시간 동안 취재를 해 오고 오늘(21일) 보도를 해 드렸습니다마는,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밝히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물론 그 새로운 장은 비극의 장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몇 분을 인터뷰했습니다마는 그 중 한 분을 전화로 직접 좀 연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렵게 응해 주셨습니다. 당시 계급은 대위였고 편대장 직책을 맡고 있었던 김 모 씨입니다.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여보세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여보세요.]

[앵커]

쉽지 않은 인터뷰인데 응해 주셔서 우선 감사합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고맙습니다.]

[앵커]

물론 신원은 밝혀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5·18이 발생하고 나서 며칠 후에, 그러니까 20일 혹은 21일로 기억한다고 저희는 들었는데… 그 며칠 후로 기억하고 계시다는 그 당시,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명령이 떨어졌고 어떤 준비를 했던 건지 그때 상황을 좀 알려주시죠.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정확하게 한 2, 3일 뒤로 저도 기억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원래 정상적 임무가 있습니다, 각 비행대대마다. 여러 가지 훈련을 하죠, 다양하게. 계기비행도 하고 항법훈련, 공대지, 공대공 등 여러 훈련을 하는데 그게 통상 일상적인 공군 조종사들 훈련입니다. 그런데 그걸 당연히 그런 훈련은 그 전날 스케줄이 되기 때문에 다 누구나 알고 퇴근을 했다가 아침에 출근하니까 모든 일반훈련이 스탠바이 중지가 되고 이제 상부에서 이러이러한 무장을 하고 조종사들은 심적 각오를 다지고 비상대기하라, 이런 지시가 떨어진 거죠.]

[앵커]

그게 20일인지 21일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둘 중 하루였다, 이런 말씀이시죠?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렇습니다. 제가 한 3일 정도 뒤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그렇다면 21일 정도.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네.]

[앵커]

당시에 광주의 상황은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자세히?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뉴스에 나온 것 이외에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래서 어떤 무장을 했습니까, 그 당시에. 저희가 아까 말씀드리기로는 공대지 폭탄, 미사일이라든가 다른 기관총 이런 것들을 중무장한 것으로 보도해드렸는데 어느 정도였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아마 다른 비행기들은 어떤 무장을 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고요. 그 당시 저희들이 했던 것은 20mm 기관포하고, 기관포도 연습용 기관포가 아니고 고성능 기관포로 'HEI'라고 하는데 그걸 장착하고 있었고, 그다음에 500파운드 폭탄을 2발 정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렇게 훈련 때 그 정도로 무장하는 것이 통상적입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아니죠. 그런 일이 없죠. 화력시범 훈련을 한다든가 정기적인 실무장 투하 훈련 이외에는 그런 무장은 하지 않습니다.]

[앵커]

당시 대위셨다고 했고 편대장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전에라든가 아니면 그 이후에도 이렇게 무장하고 대기했던 적은 없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런 무장대기 상태는 없죠. 저희는 주로 공대공 임무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공대지 임무 무장은 하고 대기를 하지는 않죠.]

[앵커]

알겠습니다. 그러면 김 모 씨께서 계셨던 부대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다른 부대에서 비상시에 그 정도로 중무장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비상시라는 건 어떤 걸 얘기하시는지요.]

[앵커]

예를 들면 그전에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겠죠. 군에 어떤 비상이 걸렸다라든가, 또 적의 전투기가 발진한 것이 레이더에 잡히면 여기서 같이 요격해서 출격한다라든가 이런 경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런 비상시에는 공대지 무장을 하면 항공기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행동반경이 느려지고 멀리 가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로 공대공 무장을 합니다. 그래야 몸이 날렵하고 더 멀리가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공대지 무장을 한다는 것은 어떤 목표가 사전에 설정이 되고 그 목표를 공격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 그렇지 않고 맹목적으로 무작정 대기하는 그런 무장은 아닙니다.]

[앵커]

지금 제 옆에 나와 있는 사진이 전투기인데 F5-E/F 기종이 맞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지금 저는 텔레비전을 안 보고 있어서. 미안합니다.]

[앵커]

안 보고 계시군요. 제가 시청자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 당시에 타셨던 비행기와 같은 기종으로 저희들이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사진으로 걸어놨는데요. F5-E/F기가 맞습니까, 타셨던 것이?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맞습니다. 그 당시 수원에 있던 주력기니까 지금이야 더 좋은 비행기가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신의 주력기였죠.]

[앵커]

계셨던 곳은 제가 말씀을 안 드렸는데 수원이라고 지금 직접 말씀하셨으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 정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앵커]

알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네.]

[앵커]

당시 그렇다면 공대지 무장상태로 대기 중이던 전투기가 모두 몇 대 정도였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좀 곤란합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러나 실제 비상대기 임무, 그다음에 각종 다른 업무로 참여하지 못하는 비행기가 있었지만… 하여튼 가용 비행기는 전부 다 대기하라 이런 지시를 제가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그러면 대수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그런데 광주가 목표다, 하는 것을 조종사들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걸 그렇게 딱 찍어서 얘기를 했습니까 아니면…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예를 들자면요. 우리가 자동차로 어디를 가려고 해도 목표를 알고 지도 준비를 하고 몇 개 준비하지 않습니까? 조종사들은 반드시 지도를 가지고 자기 임무 지역에 대한 것을 준비를 하게 돼 있습니다. 전체적인 에어리어가 광주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포인트는 몰랐죠, 어디인지는. 그러면 조종사들은 누구나 거기까지 왕복 소모되는 비행연료랄지, 기타 모든 것을 사전에 계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걸 비행준비라고 그러는데…그 비행준비 과정에서 당연히 어느 지역이라는 걸 알게 되죠.]

[앵커]

어느 지역이라고 상부에서 정확하게 지시가 내려왔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저는 지시를 직접 받지는 않고, 저는 실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지시는 분명히 어디에서인가 비행단까지 내려오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래서 정확한 목표지점은 만일 출격이라고 표현을 하자면, 그 직전에 주어지고, 그다음에 출격을 하는 건가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두 가지 방법이 있죠. 방금처럼 이륙한 다음에 목표지역이 설정이 돼서 지시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앵커]

그렇습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이륙한 이후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사전에 미리 알아가지고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앵커]

그런데 지금 반론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또 실제로 일정 부분 그런 뜻으로 얘기하기도 했고. 뭐냐 하면 그것은 광주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광주 이외의 임무, 그러니까 그 당시에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광주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나니까 북쪽이 굉장히 위험하다, 그러니까 북한군이 움직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혹시 그것을 대비한 출격 대기는 아니었을까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건 우리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상식입니다. 그걸 대비했다면 무장을 공대공 무장을 해야지, 공대지 무장을 할 수가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앵커]

그렇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도, 제가 비행기 무게까지 아까 말씀하신 것까지는 제가 잘 몰랐지만, 만일 적기가 뜬다면 당연히 공대공 상황으로 준비를 하셔야 할 텐데 공대지로 준비를 하셨다고 해서…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당연하죠. 맞습니다. 당연합니다. 공대공으로 준비를 해야죠. 그런데 그때 저희는 분명히 공대지로 준비했습니다.]

[앵커]

지금 아까 말씀하신 것을 잠깐 다시 반복하자면, 그전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어도 계신 편대 속에서는, 부대에서는 공대지로 준비한 적은 없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아니죠. 아, 그전에. 평상시에는 공대지로 준비하고 비상대기한 적이 거의 없었죠. 아마 제 기억에는 경험이 그 당시까지 대위밖에 안 됐으니까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일단 그때까지 제가 알기에는 없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 당시의 광주 상황을 언론보도를 통해서 정도의 수준으로 알고 계셨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당시에 이미 광주 쪽이라는 것은 알고 계셨다면, 김 선생님을 포함한 다른 조종사들이 출격 명령을 기다리면서 어떤… 뭐랄까요. 심리적 갈등 이런 것들은 없었을까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저희 조종사들은 연약하지 않습니다. 다들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요. 저희는 정말로 거기에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공작부대 요원들이 와서 선량한 광주시민을 죽이고 폭동을 일으키고, 그렇게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들끼리 차마시고 얘기하면서도 '이거 그놈들 다 때려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 정도로 얘기를 하고 그랬었어요. 그 얘기는 다른 조종사들 물어봐도 바로 알 거예요, 다 그런 얘기들을 하고 그랬으니까요.]

[앵커]

사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나온 영화에서도 다들 보고 느끼고 했습니다마는. 언론이라든가 아니면 당시 군부정권이라든가,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김 선생님 말씀하신 그런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가졌을 가능성이 크죠.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렇죠.]

[앵커]

그런 상황에서 출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고, 그에 따른 어떠한 심적 갈등이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갈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공대지 무장태세는 하루 만에 취소가 됐다고….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아침에 오전 한 10시쯤, 11시쯤 지시가 떨어져서 준비해서… 그건 준비 금방하는 건 아니거든요.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죠. 준비해서 있었는데 그날 오후 한 4시, 5시 무렵 퇴근 시간 가까이 됐을 때 해제가 됐어요. 그래서 잘 모든 게 해결됐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죠.]

[앵커]

그건 뭐 천만다행이죠, 결과적으로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천만다행입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이게 좀 궁금한데요. 그 공대지 미사일이라는 게 위력이 어느 정도됩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공대지요?]

[앵커]

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저는 공대지 미사일… 공대지 미사일이 아니고, 미사일은 공대공 미사일이고, 공대지 폭탄이었죠.]

[앵커]

공대지 폭탄 위력이 어느 정도 됩니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 위력을 정확하게는 제가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요. 그게 떨어졌을 때 어지간한 다리 하나 정도 그냥 바로 폭파 돼버리고요. 그다음에 평평한 지면에 떨어졌을 때는 한 10m 정도의 깊이 구덩이가 파이고, 그다음에 반경으로는 한 20m 정도 그 정도 구덩이가 생기는 걸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앵커]

화력이 굉장한 건데…. 그래서 사실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 발포명령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비행기 공습은 발포명령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는, 전혀 다른 국면의 얘기이기 때문에….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제가 다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그동안 5·18 관련 진상규명 활동 한다는 얘기들이 많이 언론에 보도되고 했는데, 굉장히 답답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군인은 어느 지역에 출동하면 제가 알기에는 그렇게 알고 있거든요. 어느 지역으로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그 안에 이미 발포 명령까지 다 포함된 거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지역에 작전 투입이 되면 투입과 동시에 모든 권한이 현장 지휘관한테 다 부여되니까, 언제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이 총 쏠까요, 말까요, 누구한테 물어보겠습니까? 이미 현장에 투입되면 바로 모든 권한이 그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앵커]

그건 조금 다른 해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그다음에 공군 조종사들의 경우에는, 이미 작전 오더가 떨어져서 출격을 하면 거기에 가서 다시 목표를 보고 무전으로 공격할까요, 말까요, 물어보겠습니까? 물론 물어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공중에서 지상에 있는 목표물에 대해서 내가 공격을 해야 할 목표인지, 공격을 해서는 안 될 목표인지, 조종사가 판단하기는 어려운 거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조종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미 출동해 놓고, 하면 가서 때리라는 거죠. 그럼 그와 동시에 이미 공격 명령이 주어진 거죠. 출동명령 이코르, 이미 공격명령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사실 공군 혹은 육군, 이렇게 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해석이 달리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출동하되 최종적으로 발포를 하느냐 마느냐는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렵고, 결국 그것을 최종 판단할 사람이 누가 따로 있다라는 해석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공군 말고 육군 같은 경우에 출동 자체가 발포 명령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공군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이런 말씀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요.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예. 동의하겠습니다.]

[앵커]

아무튼 37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뒤늦게나마 당시 상황을 용기내서 밝히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짤막하게.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글쎄요… 너무 단순한 건데, 제가 볼 때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지금 저희 선배들도 그렇고, 동기들도 그렇고, 이미 현장에 있었지 않았습니까, 다들. 그런데 왜 다 입을 닫고 있냐 이거예요. 이제는 좀 말할 건 말하고, 옳고 그른 걸 가려야 되지 않겠는가… 뭐, 그런 심정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된 겁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사실은 다 보도해 드리지는 않았고, 내일 마저 좀 더 취재를 해서 보내드릴 내용이 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당시에 광주 공군비행장의 상황이라든가 하는 것들도 따로 취재한 것이 있는데, 그 관련으로 저희들이 혹시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김 선생님 통해서 한 번 더 취재하도록 하겠습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알겠습니다.]

[앵커]

오늘 고맙습니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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