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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 같지 않아" 생업 접고, 헌수건 모아 한걸음에 달려온 이웃들|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입력 2020-08-08 19:51 수정 2020-10-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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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비 피해를 입은 분들은 정말 눈앞이 캄캄할 텐데요. 남 일 같지 않다며 한걸음에 달려와 준 이웃들이 있습니다. 생업을 잠시 접고 일주일째 복구를 돕는 이웃부터 휴가를 반납하고 왔다는 꼬마 아가씨, 또 봉사자들이 쓸 걸레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집에서 쓰던 수건을 하나둘 모아 준 이웃들까지.

오픈마이크에서 담아왔습니다.

[기자]

삽으로 흙탕물을 퍼냅니다.

메트리스에 선풍기까지, 진흙을 뒤집어쓴 살림살이가 밖에 쌓여 있습니다.

집 옆으로 흐르고 있는 하천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민가들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김복자/피해 주민 : 어제도 계속 울었어요, 혼자. 어떻게 엄두가 안 나.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이런 날벼락을 받아. 너무 속상해.]

구순 할아버지도 모든 걸 잃었다며 망연자실합니다.

[최수봉/피해 주민 : 몸만 싹 빠져나간 거니까. 막막하지.]

바로 옆 마트는 문 연 지 1년도 안 됐는데 버려야 할 상품들이 산더미입니다.

이곳도 물난리가 난 지 벌써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렇게 마트 바닥이 흙탕물로 흥건하고요.

당시 물이 진열대까지 차올랐기 때문에 이렇게 물건들도 다 못 쓰게 된 상황입니다.

[강은비/피해 주민 : 버려야죠. 물먹은 건 뭐 다 쓸 수가 없으니까. (마트) 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며칠째 치워도 끝이 안 보이는 피해 현장.

이웃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찾아왔습니다.

진흙물을 밀어내고, 망가진 상품들을 내다 버립니다.

진열장 안까지 들어가 닦아내자 흰 수건이 갈색이 돼 나옵니다.

[장난이 아니야. 이 속에 물이 너무 많아가지고.]

진흙을 박박 닦고,

[아이고 세상에. 못살아.]

흙탕물을 뒤집어쓴 상품을 물로 헹구는 사람들.

모두 평범한 우리 이웃들입니다.

[이복선/경기 용인시 : TV 보는데 같은 용인 지역에 수해가 났다고 해서…]

[신명철/경기 용인시 : 우리도 피해를 봤지만 뭐 논밖에 없죠.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직접 오지 못하는 이웃들은 집에서 쓰던 수건을 모아줬습니다.

[신창선/경기 용인시 : 걸레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흙탕물을 닦아내고 하다 보니까. 제가 일을 하고 있어서 몸은 갈 수 없고…]

저도 손을 보태봤습니다.

진흙탕 속 바닥이 차츰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가요, 올라가.]
[비켜요, 비켜요, 비켜.]
[하나, 둘, 셋.]
[진짜 잘하시네요. 체질이신가 봐.]

엄마 손 잡고 온 아이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정이든/경기 용인시 : (힘들진 않아요?) 괜찮아요.]

고사리 손으로 걸레를 짜고, 음료 배달도 합니다.

[정이든/경기 용인시 : 이거 엄마가 갖다주래요. (어, 고마워.)]

[정이든/경기 용인시 : TV에서 봤는데, 어떻게 도와줄 게 없을까 하다가 엄마 따라와서…]

[신경희/경기 용인시 : 오늘부터 휴가였어요.]

마트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사이, 흙탕물 때문에 갈색으로 변했던 옷들도 제 색을 찾고 진흙 범벅이던 살림살이도 말끔해져 갑니다.

물이 빠져나갈 길까지 만들어지자 그제야 피해 주민 얼굴이 조금이나마 풀어집니다.

[김복자/피해 주민 : 이봐, 이렇게 물을 빼줘야 되는데. 어제도 누가 뭐해줄 사람이 있어? 아침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빨리빨리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이번 비로 산이 무너져내리면서 큰 피해를 입은 펜션입니다. 지금도 갑자기 비가 오고 있는데요. 비가 오는 와중에도 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 오면 비 맞고 해야죠.]

이웃들이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며 매달린 끝에 진흙으로 가득 찼던 지하실도 어느새 바닥이 보입니다.

그 소식에 빗물에 휩쓸려 상처투성이가 된 사장님도 며칠 만에 웃음을 보입니다.

[김기찬/피해 주민 : 제가 처음 웃네요, 처음 웃어.]

남 일 같지 않다며 달려와 준 이웃들.

진흙만 쓸어내는 것이 아니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는 피해 주민들의 억울한 마음까지 쓸어내려 주고 있습니다.

[김기찬/피해 주민 : 정말 그나마 제가 이제 좀 억울하고 처음에는 그랬는데 굉장히 위로가 되죠. 더불어 사는 세상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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