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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라이브] "일상의 소리가 공포로"…산재 트라우마에 힘겨운 노동자들

입력 2019-05-24 17:23

2년 전 거제 크레인 사고 후유증 추적
아이 웃음소리에도 '깜짝'…무너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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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거제 크레인 사고 후유증 추적
아이 웃음소리에도 '깜짝'…무너진 일상

 

# 아빠가 라면이 끓고 있는 냄비를 집어 던졌습니다. 그 뜨거운 냄비는 아기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냄비는 아기를 피해 발끝에 떨어졌지만, 한번 헐크처럼 변한 아빠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본래 아빠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악몽 같은 크레인 사고 이후 변했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예민해졌습니다. 아기에게 미안했던 아빠는 사고 넉 달 만에 스스로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이 아빠를 변하게 한 사고는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일어났습니다.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수십t의 크레인이 무너져 내린 겁니다.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습니다. 이날 무너져 내린 건 크레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참혹한 순간을 목격한 노동자들의 일상도 이후 트라우마로 무너졌습니다. 크레인에 깔린 동료를 보고, 함께 일하던 친동생이 눈앞에서 변을 당한 기억은 너무 큰 마음의 상처가 됐습니다.

백민경·배양진 기자는 트라우마로 힘들어한 노동자들의 지난 2년을 추적했습니다. 사고 당시 큰 소리에 놀란 탓에 대부분 소리에 극도로 민감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이가 웃거나 뛰어다니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이들과 동물원에 갔던 한 가장은 동물들의 소리마저 고통스러워 홀로 동물원 밖에서 가족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문에 끼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상이 힘들 정도의 이런 후유증을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참상을 목격한 500여명 중 트라우마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사람은 11명뿐입니다. 산재 담당 공무원에게서 주로 듣는 말은 "기다려라" "인정받기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그 시간에 차라리 일을 해라"였다고 합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도 서울에 단 한 곳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지난 21일 지역에선 처음으로 경남 창녕에 권역별 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전문의는 없고 상담 경력이 있는 전문요원은 1명뿐입니다. 쓸 수 있는 예산이 7달 치뿐이기 때문입니다. '안심버스'라는 이동형 센터도 있긴 합니다. 지난달 진주 방화·살인 사건 당시 아파트 주민들은 이 버스에서 상담과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틀 만에 강원도 산불 현장으로 떠나자 서운해 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안심버스도 전국에 1대뿐입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겐 '환자'라는 말 대신 '피해자'라는 말을 쓰는 게 좋다고 합니다. 트라우마가 당신 탓이 아니라는 인식을 줌으로써 극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홀로 큰 상처를 감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복지부는 창녕의 영남권역 센터를 포함해 전국에 5개 권역트라우마센터를 만들 계획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영상에는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과 일상의 트라우마를 덜어주는 팁 '나비포옹'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습니다.

(제작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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