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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① 글로 보는 사법 흑역사 '사법농단'

입력 2019-04-26 18:32 수정 2019-04-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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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① 글로 보는 사법 흑역사 '사법농단'

#프롤로그

법원이 태어난지 70년,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에서 현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이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며 약속한 건 법원과 재판, 법관(판사)의 독립입니다. 그 근간으로 사법권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권한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여 드러난 법원의 민낯에선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법원이 공적 가치를 우선으로 해왔는가'라고 되묻게 됩니다. 불이익을 주기 위해 동료 판사를 뒷조사하거나, 그 명단을 만들고, 정치권과의 야합을 위해 재판을 거래하려던 정황이 물씬 풍기는 문건과 행동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스스로 규정한 이름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세간은 이를 '사법농단'으로 부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대한 3차례 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의 수사, 그리고 재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판에 넘겨지거나, 관여해 비위통보 대상이 된 판사들은 '관행이다, 실행되지 않은 문건이다. 브레인스토밍을 정리한 것'이라는 말로 해명합니다.

그 앞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법원을 위해, 동료를 위해'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그러면서 급기야 '죄는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나에게 돌을 던지는 자,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판사는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해야 합니다. 헌법 103조가 규정하고 있죠. 고도의 청렴성과 중립성 등과 거리가 먼 그들의 들켜버린 양심, 그리고 이상하지만 지시에 따라 했다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보는 이들 모두를 실망시켰습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수사에선 검찰 vs 법원의 대립구도였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재판은 영화 놈놈놈의 실사판같습니다. 재판장인 판사 vs 피고인이 된 판사 vs 증인이 된 판사입니다.

사법 역사상이라는 표현을 넘어, 전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세기의 재판인 셈입니다. 재판의 주제는 '사법부'라 부르며 관료화 정치화된 법원. 법원 그 자체였던 판사들의 조직 이기주의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왜곡, 불편한 진실에 대한 양승태 코트 6년의 모습이 법정 안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로만 듣던 '공판중심주의'가 이제야 실현되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판사들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 보이 우리 법원과 사법제도의 허점이 보이더란 겁니다.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는 내내 피고인이 되거나 피의자성 참고인이 된 판사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판사들이 나서 수사와 재판제도의 문제점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판사들이 주장하는 문제점은 수십 년간 재판의 당사자였던 국민들이 지적해온 것들입니다. 그 동안 법대 아래 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더니 이제 자신들의 문제에 메스를 들이대자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JTBC는 1년 이상 계속될 사법농단 재판의 핵심 장면들을 전할 예정입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물론, 사법사가 기록할 '세기의 재판'에 독자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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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과 '임종헌'

 
[취재설명서] ① 글로 보는 사법 흑역사 '사법농단'

2017년 초 이탄희 판사가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며 세간에 알려진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거래 의혹 문건까지 드러나고 6개월의 수사 끝에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됐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건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입니다. 위로는 전직 대법원장에서 아래로는 일선 재판부까지 이어지는 사법행정라인의 결정적 고리로 꼽힙니다.

그래서 언론은 그의 재판에 주목합니다. 사법행정 전문가, 행정 기술자라고 불린 임 전 차장은 하마평이나 법원이 낸 고위 법관 인사 프로필에 재판전문가로 기재되기도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그의 판사 경력을 보면 총 32년 중 법정에 있었던 건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는 수사에서 재판까지 일반 형사 사건에서의 피의자나 피고인과 다른 모습으로 굵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으면 오금이 저린다는 일반인들과 달리 수사를 전후해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검사들에게 법조 선배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과묵함과 일관성, 그리고 지켜내겠다는 굳건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임기 6년 중 4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든 힘의 근원이 아니었나 합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그는 판사로 알고 있던, 그리고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배운 지식을 총 동원하고 있습니다. 재판부와 검사들을 질타할 땐 법학자와 사법행정 전문가의 모습도 묻어납니다. 우리 사법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정해졌지만 현장의 재판부와 검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우매한 재판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뉘앙스가 담기기도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초기 재판에선 법정의 주도권을 임 전 차장이 쥐고 있는 듯한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검찰에겐 묵비권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20일입니다. 구속영장을 받아들고 피고인과 마주하기 전에 최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대면조사에선 이를 토대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 관행입니다. 대부분의 피의자는 검찰이 제시한 방대한 자료와 위협적인 분위기에 주눅이 든다고 합니다. 밤샘조사, 별건수사 관행은 많이 줄었지만 20일간 구치소에서 먹고자며 낯선 검찰청에서 강도높은 조사를 받다보면 없던 죄도 저절로 시인해야 하나 고민하는 게 피의자의 심리상태죠.

하지만 사법농단 수사에선 다른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가장 먼저(2018년 10월 27일)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장은 검찰 조사에서 시종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검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에는 건강을 이유로 소환에 불응하기도 했죠. 20일간 검찰의 압박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일반 피의자들에겐 쉽지 않은 일입니다. 40여개 범죄사실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임 전 차장이 입을 다무니 검찰도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구속 기소되자 총력 대응

재판 준비과정에서 임 전 차장은 방어권 보장에 전력을 다합니다. 첫 관문은 수사기록 확보. 사건에 연루된 공범과 참고인, 피해자 등이 어떤 진술을 했는지, 검찰이 가진 증거는 무엇인지 알아야 재판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검찰은 수사기록을 다 내주지 않습니다. 광범위한 수사 과정에서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 혐의와 관련된 부분을 제한적으로 제공합니다.

특히 공범이 있고, 수사 중이라면 관련 기록을 미리 확인하는데 난색을 표하는게 일반적입니다. 미리 내용을 파악하면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섭니다.

임 전 차장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공범으로 지목된 인물들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던 터라 기록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러자 임 전 차장 측은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허용해달라며 재판부에 신청했고(2018년 12월20일) 결국 8만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모두 받아 냈습니다.

재판부에도 항의…주4회 재판에 변호인 11명 전원 사임

2019년 1월 30일. 임 전 차장이 첫 재판을 하루 앞두고 불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같은날 변호인 11명이 전원 사임합니다. '재판 보이콧' 등의 제목으로 언론 기사가 쏟아집니다.

재판은 시작하기도 전에 파행을 맞았습니다.

변호인 사임은 주4회 재판 진행(집중심리)에 대한 임 전 차장 측의 반발이었습니다. 검찰은 범죄사실이 많고 사안이 방대하니 일주일에 3~4회 재판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주4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주3회) 처럼 이른바 '집중심리'를 제안한 겁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임 전 차장 측은 반대했습니다. 수사기록을 읽고 방어전략을 짜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입니다. 십여명의 검사가 5개월에 걸쳐 수사한 내용을 피고인이 매일매일 준비해서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집중심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자리잡은 방식입니다.

행정처 등이 나서 일선 법원에 집중 심리가 효율적이고,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데 좋다며 적극 권장했었죠.

임 전 차장 측은 '방어권을 보장해달라' '돈 많은 사람은 변호사를 많이 선임해 대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검찰 프레임에 당할 수 밖에 없다'며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법률상 집중심리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임 전 차장 측의 항의가 변호인 전원사임으로 번지자, 결국 일주일에 3회 재판으로 조정됩니다.

일반 피고인이라면 재판부를 상대로 변호사 전원 사임 같은 초강수를 두는게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재판의 달인이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권리만 가지고 본인의 재판을 넉 달이나 지연시킨 셈이니까요. 임 전 차장은 그간 재판을 준비하고 기록을 검토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공범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과 속도를 맞추는 효과도 얻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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