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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입력 2018-09-08 11:32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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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어른도 쉽게 들어가는 손가락, 왜?

선선해진 날씨에 몇 달 동안 풀가동했던 선풍기를 넣어두기로 했다. 커버를 씌우기 전에 망과 날개를 구석구석 닦아줬는데, 문득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망 사이 사이로 손가락이 너무 쉽게, 푹푹 들어가는 거다. 어떤 부분은 손가락이 날개에도 닿았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전에 선풍기 날개에 사람이 다쳤다는 기사를 종종 봤었다. 그저 사용자의 부주의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 망을 보니 다른 생각도 든다. 이 정도면 어른들도 찰나의 순간에 다칠 것 같았다. 아이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선풍기 망을 더 촘촘히 만들면 어땠을까. 사고위험도 줄이고 말이다. 하필 약속이라도 한 듯 손가락 두께와 선풍기 망 간격도 비슷하다. 굳이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소탐해보자.


■ 우리 집 선풍기만 그러나?

내가 쓰는 선풍기 망이 유난히 넓은 걸까? 근처 마트에 가봤다. 겉보기에 대부분 선풍기의 망 간격은 비슷해 보인다. 멈춰 있는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어봤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쉽게 들어간다. 날개에 손이 닿는 제품들도 꽤 있었다. 내 손가락이 얇은 건 아니다. 검지 손가락 끝 관절의 측면 높이를 재보니 1.2cm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혹시 손이 나보다 큰 친구한테도 주변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했다. 친구의 손가락 높이는 1.5cm였다. 그 역시 날개까지 손이 닿는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선풍기 망, 간격은 누가 정할까

관련된 규정이 있는지 국가 표준을 살펴봤다.
'가정용 및 이와 유사한 전자기기의 안전성(전기 팬의 개별 요구사항)'을 보면 아래 내용이 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프로브B는 또 뭘까? 이 업무의 담당 부처인 국가기술표준원에 물어봤다. '프로브'는 제품 안전성을 시험할 때 사용하는 기구로 여러 규격이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인 프로브B가 선풍기 망을 시험할 때 쓰인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프로브B는 사진에서 보듯 사람의 손가락을 닮았다. 사람의 손가락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스트핑거'라고도 불린다. 규격은 지름 1.2cm에 길이 8cm로 어른 손가락과 유사하다.

표준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 테스트핑거를 5N(뉴턴) 이하의 힘으로 선풍기 망에 밀어 넣었을 때 날개에 닿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망과 망 사이 간격이 1.2cm 이하로 좁거나(손가락이 못 들어 갈만큼), 날개와 망 사이가 8cm 이상이어야 가능하다(손가락이 들어가더라도 날에 닿지 않게끔).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이 안전기준을 충족해야 선풍기 판매가 가능하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기준이 아니다. IEC 국제 표준을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 말고도 미국, 일본, 인도 등 회원국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선풍기 망을 시험하고 있다.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 선풍기 망 간격이 손가락 두께와 비슷했던 이유, 바로 테스트핑거로 시험하기 때문이다.


■ 나무 막대를 깎아 손가락을 만들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선풍기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확실히 날개 끝이 닿았다. 내 손가락도 테스트핑거처럼 1.2cm다. 테스트핑거가 통과하지 못해야 선풍기가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내 손가락은 어떻게 들어가지?

간이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지름 1.2cm의 원형 나무 막대를 사 와서 앞서 나온 테스트핑거의 도면대로 깎아봤다. 그걸 가지고 다시 마트에 갔다. 선풍기에 넣어보니 확실히 실제 손가락보다는 덜 들어간다. 대부분 들어가는 깊이가 손가락보다 얕다. 날개에 손가락이 닿던 선풍기도 나무 막대는 닿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손가락에 이어 나무 막대까지 날개에 닿는 제품들이 일부 있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기준대로면 이 제품들은 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판매가 불가능한 것들이다. 어떻게 시험을 통과한 걸까?
우리가 나무 막대를 깎으면서 오차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더 정확한 방법으로 확인해봐야겠다.


■ 테스트핑거를 직접 구입하다

테스트핑거가 필요했다. 그래야 정확한 시험을 할 수 있다. 판매처를 찾아 나섰다. 서울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찾기 어려웠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끝에 계측장비를 직접 만드는 곳에서 도면과 똑같은 제품을 구했다. 공식 계측장비라 가격대가 좀 있었다. 최근 소탐대실이 구매한 단일 소품 중 최고가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선풍기 3대 구입해서 안전 테스트 하다

선풍기도 구입했다. 3개 제품이다. 마트에서 나무 막대가 날개에 닿았던 선풍기들은 총 4개였지만 그 중 중복되는 브랜드는 제외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시험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선풍기 망 앞뒤 면 중 간격이 넓어 보이는 곳을 선택
-   실제 검지 손가락 넣기 (끝 마디 높이 1.2cm)
-   테스트핑거 넣기
-   밀어 넣는 힘은 국가 표준대로 5N을 넘지 않음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A는 중국에서 생산된 한국 브랜드 제품이다. 손가락을 넣으니 어렵지 않게 날개 끝에 닿는다. 망 사이 간격이 1cm임에도 손가락이 들어갔다. 살이 접혀서 그런 것 같다.
반면 금속 재질의 테스트핑거는 날개에 닿지 않았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B는 국내 생산 제품이다. 영유아가 있는 가정에서 인기가 높은 브랜드다.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그냥 닿는다. 엄지도 닿았다. 손가락으로 날개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테스트핑거를 밀어 넣었을 때는 날개 코앞에서 멈췄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C는 중국 브랜드 선풍기다. 3개 제품 중 날개와 망 사이 거리가 가장 좁았다. 먼저 오른쪽 측면에 손가락을 넣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바로 날개에 닿는다.
이어서 테스트핑거도 넣어봤다. 날개에 닿는다.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며 넣었지만 힘은 5N을 넘지 않았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C선풍기는 어떻게 안전 시험을 통과했을까?

모의시험 결과 3개 제품 모두 실제 손가락이 날개에 닿았다. 하지만 테스트핑거까지 날개에 닿은 건 C선풍기 하나다. 우리가 맞게 측정한 거라면, 이 제품은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C선풍기를 다시 살펴봤다. 일단 망과 망 사이의 간격은 최소 0.8~1.0cm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테스트핑거의 굵기는 1.2cm니 말이다. 하지만 날개와 망 사이 간격을 확인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날개와 망 사이 간격을 재보니 제일 좁은 곳은 0.7~0.8cm 정도 나온다. 테스트핑거 끝 부분을 재봤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테스트핑거 시작점에서 0.7~0.8cm에 이르는 부분은 1.2cm보다 얇은 구간이다. C선풍기처럼 1cm 내외의 망 사이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날개를 더 멀리 떨어트려야 하는 거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C선풍기 망 위쪽에 테스트핑거를 다시 넣어봤다. 큰 힘을 주지 않았는데 닿는다. 너무나 쉽다. 위험해보인다. 제아무리 두꺼운 손가락이라도 말이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 풀리지 않는 C선풍기 출생의 비밀

아무리 봐도 C선풍기가 시험을 통과했다는 게 의문이다. 하지만 선풍기 뒷면에는 어엿하게 인증번호와 마크가 표시되어 있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인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제품안전정보센터(safetykorea.kr)에서 C선풍기를 조회해봤다. 인증번호를 조회하니 C선풍기가 아닌 다른 선풍기의 모델명이 나온다. 자세히 보니 C선풍기는 '파생모델'이란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파생모델이 뭘까?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한 제조사의 (가)선풍기가 안전인증을 받았다 치자. 그 후 제조사가 이것과 유사한 (나)선풍기를 생산했다. 그럼 제조사는 (나)의 인증을 새로 받지 않고 (가)의 파생모델로 추가할 수 있다. (가)는 기본모델로서, (나) 파생모델로서 하나의 인증번호를 사용하게 된다. (나)선풍기가 새로 안전인증을 받는 것보다 파생모델로 등록하는 게 절차나 비용상 더 낫기 때문이다. 파생모델을 등록할 때는 단순한 디자인, 색상 변경이 아니면 추가 시험에 들어가게 된다.

다시 C선풍기 이야기로 돌아오자. C선풍기가 파생모델로 등록될 때 추가 시험이 진행됐을까? C가 기본모델 선풍기와 얼마나 비슷한지 알아봤다. 기본모델과 파생모델은 날개 크기가 다르다. 기본모델의 날개 지름은 35cm였다. 그런데 문제의 C선풍기는 40cm다. 날개가 5cm나 차이난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이 정도 차이면 단순한 디자인 변경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추가 시험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해당 제품들을 담당했던 시험기관에 문의해봤다. 하지만 기관은 제조사 정보이기 때문에 추가 시험을 받았는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추가 시험 여부에 따라 각각 다른 의문들이 연결된다.

시험을 했다면, 테스트핑거가 쉽게 들어가던 C선풍기가 어떻게 통과했을까?
시험을 하지 않았다면, 기본 모델과 날개 길이가 다른데 왜 시험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둘 다 이상하다.


■ 기준상 '안전', 현실 안전도 장담할 수 있을까

어찌 됐든 C선풍기 날개에 테스트핑거가 닿았다. 안전 기준 미달로 보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의시험이다. 이걸로 제조 과정에 문제가 있던 건지, 모의시험에서 놓친 부분이 있던 건지, 아니면 하필 딱 이 선풍기만 불량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가기술표준원에 문제 제품 검증을 요청하기로 했다.

소탐대실이 이 취재를 시작했던 건, 어떤 선풍기가 이상한지 색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선풍기 망 간격은 어떻게 정하지?', '굳이 손가락이 들어가게 할 필요가 있나?' 라는 호기심에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A, B 선풍기 역시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둘 다 테스트핑거는 막았지만, 실제 손가락은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 방법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안전 문제에서 놓친 부분은 없는 걸까?

2편에서 계속 알아보겠다.

 
[소탐대실] 선풍기에 손가락 왜 들어가?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진원, 송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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