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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출범 이틀' 탄소중립위원회…남은 시간은 6개월, 그리고 '6년 반'

입력 2021-05-31 09:32 수정 2021-05-31 09:3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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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0)

어제(30일)부터 이틀간의 P4G 정상회의가 시작했습니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리커창 중국 총리,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 각국 정상급 인사와 안토니우 구테헤스 UN 사무총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등 국제기구 수장들이 대거 참석합니다. '포용적 녹색회복을 통한 탄소중립 비전 실현'은 이번 정상회의의 주제입니다. 이를 위해 정상회의 2일차인 오늘 물, 에너지, 식량 및 농업, 도시, 순환경제 총 5개 분야에 대해 심층적인 논의가 진행되죠.


 
[박상욱의 기후 1.5] '출범 이틀' 탄소중립위원회…남은 시간은 6개월, 그리고 '6년 반'


개최국 대표로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회사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은 자연의 회복과 함께 이루어졌다”며 “국민들의 노력과 성취는 자연의 회복 없이 삶의 회복이 불가능하며, 함게 행동해야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극복 노력에 선제적,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며 ①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추가 상향하고, ②기후·녹색 ODA 확대 등 개도국과 적극 협력하고, ③다양한 생물종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④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적극적·선제적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약속들을 이행하려면 무엇보다 '탄소중립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이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의 개회사 하루 전, 드디어 마련됐습니다. 바로 지난 29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입니다.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 지난해 10월 28일,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발언 이후 위원회가 만들어지기까진 꼬박 7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2050 탄소중립 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 청와대)'2050 탄소중립 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 청와대)


정부만 홀로, 혹은 시민사회만 홀로 노력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위원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공동으로 맡았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탄소중립 선언'에 나섰던 만큼, 위원회 출범식에도 참석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산업구조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우리는 이미 배터리, 수소, 태양광 등 우수한 저탄소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디지털 기술과 혁신 역량에서 앞서가고 있다”며 “치열한 국제적인 경쟁 속에서 탄소중립은 오히려 우리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대통령이 제시한 비전은 '국민 모두를 위한 탄소중립 시대'입니다. 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도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누구도 배제되거나 낙오되지 않는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포용해야 한다"고도 말했죠.

기후위기는 비단 날씨의 위기, 이상 기상현상으로 그치지 않죠. 경제위기, 보건위기, 안보위기, 통상위기, 외교위기로 번지는 만큼 탄중위는 이와 관련한 8개 분과위원회, 97명(위원장인 국무총리 포함)의 위원으로 구성됐습니다.

각 분과는 당장 국제사회에 새롭게 내놓아야 할 국가·부문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감축 시나리오를 수립하는 ①기후변화 위원회,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보급, 에너지 수요관리 등을 담당하는 ②에너지 혁신 위원회, 탄소배출량이 많은 고탄소 산업을 바꾸고 저탄소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이러한 전환에 있어 재정·세제·금융 지원을 고민하는 ③경제산업 위원회, 국토 및 건축분야의 녹색 전환을 도모하고 수송 부문의 혁신과 순환경제를 관장하는 ④녹색생활 위원회, 전환의 과정에서 취약 산업이나 근로자, 지역을 보호하고, 지자체의 탄소중립 노력을 담당하는 ⑤공정전환 위원회, 탄소중립 기술의 R&D 전략을 세우고 관련 로드맵을 만들 ⑥과학기술 위원회,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협력과 P4G 정상회의 후속 사업, 개도국으로의 그린 ODA 지원을 맡는 ⑦국제협력 위원회, 탄소중립으로의 여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나서며 미래세대의 참여를 도모하는 ⑧국민참여 위원회로 나뉩니다.

 
탄소중립위원회 조직도 (자료: 환경부)탄소중립위원회 조직도 (자료: 환경부)


위원회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에 대해선 이미 모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 회의에서 김 총리는 EU와 미국 등 곳곳에서 논의중인 탄소세, 이른바 '탄소국경조정'을 언급하기도 했죠. 또한, 글로벌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나서는 한편,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에 참여하며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는 산업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는 발언도 내놨습니다.

#기대만_하기엔_부족한_신뢰관계
탄소중립의 컨트롤타워가 출범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상회의인 P4G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시점이었지만 시민사회 곳곳에선 걱정과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계획들을 볼 때 탄소중립위가 불충분하고 부적절한 정책들에 '탄소중립' 딱지만 붙여 정당화하는 절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①1.5℃ 상승 제한 목표에 맞는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②현재 건설중인 석탄발전소의 건설 중단을 포함한 2030 석탄발전 퇴출 계획을 마련하며, ③공적 금융기관의 신규 석탄투자 중단을 넘은 기존 투자의 철수 등 '탄소중립위원회가 챙겨야 할 10가지 과제'를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탄소중립위원회가 그린워싱의 정당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며 “기후위기 앞에서 위원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통령이 연내 상향한 2030년 NDC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과학에 기반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감축 목표를 제시할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평가였습니다. 그러면서 ①1.5℃ 목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 이행계획의 수립과 그에 따른 2030 NDC 수립(최소 2010년 대비 50% 이상 감축), ②2030년 탈석탄 로드맵 수립과 국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③노동자와 농민, 지역주민, 소상공인 등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계획 수립 등을 요구했습니다.

녹색연합은 “국제사회 속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P4G 개최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한다는 선전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이고 과감한 기후정책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이번 P4G 개최와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에 대해 각계에서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라고 말이죠. “P4G 정상회의보다 중요한 것은 제출기한이 지나버린 '밀린 숙제', 2030 NDC 수립”이라며 “아직까지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목표(최소 2010년 대비 45% 이상 감축)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환경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우려와 불신의 이유는 바로 정부의 각종 '반 기후적 결정'들에 있었습니다. 그린뉴딜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을 논의하던 중에도 보란 듯이 공기업과 정부는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결정했었죠. 다 가결시키고서 “앞으로 신규 사업은 않겠다”는 공허한 선언을 내놨고요. 탈석탄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신규 석탄발전소가 건설중이고요.

또한, 과거의 경험에 따른 불신도 있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에 앞서 2009년, MB정부 시절 우리는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습니다.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강국 진입”이 녹색성장위원회가 내건 목표이자 비전이었죠. 현실은 어땠나요. 녹색성장위원회 출범 이후 20기 넘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국내에 지어졌고, 그렇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석탄화력발전소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국제사회에선 '기후악당'으로 불리게 됐고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탄소중립위원회는 소통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 8개 분과 가운데 위원의 수가 가장 많은 '국민참여위원회'와 '소통협력관'이라는 자리를 통해서 말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지우는 것은 메시지가 아닌 실천이라는 겁니다. 강화한 NDC, 넷 제로가 가능한 로드맵 없이는 그 어떤 소통도 소용이 없을테니 말입니다.

#기대만_하기엔_부족한_시간
5월의 막바지,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하고, '글로벌 석탄투자 큰손' 국민연금이 탈석탄 선언을 하고, 우리나라에서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 등 국제사회가 다 함께 기후위기 대응을 고민하는 P4G 정상회의가 열리는 등 여러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리고 위원회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장 대통령부터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 격려사를 통해 “위원회의 당면과제는 상반기 안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중간 목표로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계획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상반기라면 고작 30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 안에 국제사회에 NDC를 제출해야 하고요.

그나마 이 내용들은 모두 '시나리오'고 '로드맵'입니다. 당장 행동에 나서 성과를 내기까지 남은 시간도 충분치 않습니다. 지구상에서 우리 인류가 매 순간 뿜어내는 온실가스의 양을 통해 우리에게 남은 탄소 예산을 시간으로 따졌을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6년반 정도뿐입니다. 넋 놓고 있다가는, 혹은 계획만 세우고 있다가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 넘게 올라가고 말 것입니다.

 
탄소예산 시계 (한국시간 2021년 5월 31일 0시 기준, 자료: 독일 MCC)탄소예산 시계 (한국시간 2021년 5월 31일 0시 기준, 자료: 독일 MCC)


1.5℃가 부르는 가시적인 피해에 대해선 이미 80번의 연재를 통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왔죠. 폭염일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장 GDP가 얼마나 떨어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식용작물이 사라지는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 한 전염병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등… 그 때도 우리나라는 그저 '기후악당'이라고 불리기만 할까요. 책임자를 찾고, 어떻게든 책임을 물으려는 국제사회에서 어떤 입장이 될까요. 그리고, 당장 인류의 탄소예산을 다 써버린 우리 세대를 후손들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이번 P4G 정상회의를 통해 우리나라는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고, 각종 국제 공여 규모를 늘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파리협정을 이끌어낸 유엔 사무총장을,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인 IPCC 수장을 배출한 나라인데다 국제사회에 이러한 기여를 한다면 우리나라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기후악당' 오명은 어떻게 벗을 수 있을까요. 좀처럼 속도를 줄일 줄 모르는 저 탄소예산 시계를 늦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 넷 제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2030 NDC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직 대통령이 말한 “추가 상향”이 얼마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지금의 목표인 24.4%에서 10% 포인트 안팎 높이는 수준이라면… 국제사회에 내놓는 각종 공여금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후악당' 오명 역시 벗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도 없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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