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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P4G 서울선언문 행간 읽기…온갖 '워싱'에 몰두하다 놓치는 것들

입력 2021-06-07 09:32 수정 2021-06-07 09:4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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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1)

P4G 정상회의가 폐막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5개 나라가 참석하는 데에 그쳤던 1차 회의때와 달리 서울에서 열린 2차 회의엔 47명의 정상급·고위급 인사와 21명의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했습니다. 여기에 각국 시민사회와 기업들도 함께 했죠. 이들은 뜻을 모은 '서울선언문'도 나왔습니다. 나름의 의미를 뒤로한 채, 일주일이 지난 현시점에서 남은 것은 '능라도 영상'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소집했던 기후 정상회의 이후 가장 크고도 중요한 회의였던 것이 무색하게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P4G 서울선언문 행간 읽기…온갖 '워싱'에 몰두하다 놓치는 것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P4G가 남긴 것,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것'은 능라도 영상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선언문을 한 문장, 한 문장 살펴보면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커져만 갑니다. 14개 항을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1_기후위기를_국제적_위협으로_간주한다
서울선언문의 첫 항,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를 넘어서 경제, 사회, 안보, 인권과 연관된 과제들에 영향을 미치는 시급한 국제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미 2015년 파리협정 당시 이 같은 위협에 공감해 국제사회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묶자고 약속했습니다. 이어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총회에선 국제사회가 만장일치로 '상승폭을 2℃가 아닌 1.5℃로 억제하자'고 합의했죠. 그리고 2020년, 국제사회는 본격적인 탄소중립 선언과 이행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2021년에 열린 정상회의 선언문의 첫 항부터 이렇게 시작한다니. 불안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2_기후변화_대응_공약을_환영한다
각국이 속속 기후변화 대응 공약을 내놓는 것을 환영하고, 향후 G7과 G20 등 다른 국제무대서도 이러한 공약이 이어지길 기대한다는 내용입니다. '서울선언문'의 서울은 아직 그 공약을 내놓지 못한 상태입니다. '유체이탈 화법의 시작인가' 걱정이 들기 시작합니다.

#3_P4G에_대한_더_많은_지원 / #4_공정한_전환
P4G는 물, 에너지, 식량·농업, 도시, 순환경제 총 5개 분야에 집중해 민관 협력을 꾀했습니다. 정부만, 기업만, 시민사회만 각자 따로 노력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기후위기 대응이죠. 특히나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대전환의 시대'에서 공정한 전환을 키워드로 꼽은 것은 그래도 반가운 일입니다.

#5_조속히_향상된_감축목표_제출하라
“우리는 파리협정에 따라 국가들이 이미 제출한 '야심찬'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환영하며, 여타 국가들도 가능한 조속히 향상된 NDC를 제출하고, 제2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이전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발표할 것을 독려한다.”고 합니다. “파리협정의 야심찬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을 촉진한다”고도 했습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강화한 NDC를 발표하지 않은 나라, 즉 선언문 속 '여타 국가들'에 속하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재생에너지 확대가 한국처럼 더딘 나라 역시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 다른 '유체이탈 화법', 서울선언문이 서울에 하는 말입니다.

#6_기후변화_사막화_생물다양성_손실 / #7_해양오염_예방_노력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숲은 흰색 배경 위에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구현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숲은 흰색 배경 위에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구현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P4G는 선언문에서 “우리는 기후변화, 사막화와 토양의 황폐화, 생물다양성 손실을 동시대의 가장 큰 세 가지 환경문제로 인식”한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기후변화에 있어 감축과 적응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또한, 중요한 자연 속 탄소흡수원인 해양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물론, 우리 정부가 이 해양오염 문제를 선언문에 넣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소식에 “강화한 감축목표는 내놓지 못하고서… (이하 생략)”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 문제들은 분명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후변화, 사막화(토양 황폐화), 생물다양성 손실, 해양오염… 이 문제는 기업들과 시민사회의 동참과 노력이 핵심인 만큼 P4G가 특히나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8_녹색기술_투자_개발_강화 / #9_국제적_민관_협력_지속
수십 개국의 정상과 국제기구, 기업, 시민사회 대표가 참여한 다자회의인 만큼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다시 괜히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목들이 눈에 띕니다.

“우리는 태양, 풍력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를 통해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탈석탄과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에 대한 공적 금융 중단을 위한 방법 모색을 독려하고, 에너지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특히 탄소 감축이 어려운 분야에서 청정수소 사용을 촉진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우리나라의 석탄발전 비중은, 이미 석탄에 발이 묶인 공적자금은 어떡하나요.

“우리는 녹색투자를 위한 공공과 민간의 자금 유입 확대를 독려하고, 민간의 적극적 참여를 가능케 할 현존 또는 잠재 정책을 고려하여, 개발도상국의 녹색전환을 지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서울선언문과 별도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ODA(공적개발원조)에서 기후환경 분야 비중을 높이고,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GGGI(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에 연 500만 달러 가량의 '그린뉴딜 펀드 신탁기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석탄발전소를 짓기로 최종 결정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최소 30년은 가동될 석탄발전소를 지으면서 개도국의 녹색전환에 지원과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0_시민사회의_적극적_역할_환영 / #11_기업의_ESG_강화_권장 / #12_넷제로_위한_금융
이들 항목 역시 각국의 정부와 재계,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P4G에 안성맞춤입니다. 허나 “우리는 순배출제로 미래 구현을 위한 해결 방안에 금융지원을 통한 민간 투자자와 금융기관의 역할이 핵심적이라고 본다”는데, 민간과 공공 통틀어 가장 중요한 '투자 주체'인 국민연금은 P4G 정상회의 개최와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야 '신규 석탄투자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만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수많은 석탄 투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것은 아니겠죠.

#13_청년세대_목소리에_귀_기울일_것 / #14_차기_P4G_정상회의_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어린이의 안내를 받으며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개막식장의 연단은 기후변화로 고사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금강송의 고사목(재선충 피해목)을 활용해 제작했다. 〈사진=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어린이의 안내를 받으며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개막식장의 연단은 기후변화로 고사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금강송의 고사목(재선충 피해목)을 활용해 제작했다. 〈사진=연합뉴스〉

선언문은 청년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오는 2023년 콜롬비아에서 열릴 차기 P4G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 항목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각은 과연 어떨까요. 먼저, 선언문에 담긴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 및 저탄소 경제·사회 구축이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본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 행동이 내일의 우리 삶을 규정짓는다는 인식 하에, 미래세대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업 정신을 P4G 협력 사업 전반에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한편,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청년 기후챌린지(GYCC)와 같은 청년 주도의 협의체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우리는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귀 기울일 것이다.”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선언과 달리 P4G 정상회의가 열렸던 동대문 DDP에서 청년들은 벽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후위기에 진심인, 정부의 신속하고도 바른 대응을 촉구하던 이들이었습니다.

한 청년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보름간 단식을 했습니다. 또 다른 청년은 우리나라가 석탄발전소를 짓기로 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기후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있었지만, 이들의 제안이 반영된 정책이나 여타 결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같은 무관심에 청년들은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기후환경비서관으로부터 청년들이 받은 답은 “민원을 제기하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말로만_주인공인_미래세대
탄소중립 원년 6개월 차. 청년, 미래세대는 탄소중립 정책이 만들어지는 현장이 아닌 '슬로건' 속에서만 등장하곤 합니다. 마치 P4G 서울선언문 속 “청년에 귀 기울이겠다”는 말이 무색했던 것처럼, 환경의 날 기념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의견은 묻지 않고 그저 '손 흔드는 영상'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던 것처럼, 탄소중립 컨트롤타워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위원 97명 가운데 청년을 대표하는 이는 단 3명뿐인 것처럼 말입니다.

기후위기에 진심인 수많은 한국의 청년 가운데 두 청년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강동렬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청년위원회 한국 총괄, 그리고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운영위원과 함께했는데요, 이들은 과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Q. 그린뉴딜을 시작으로 탄소중립까지 일련의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청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강동렬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청년위원회 한국 총괄강동렬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청년위원회 한국 총괄

강동렬: 기후환경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이들입니다. 또한, 각종 캠페인이나 온라인 토크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죠. 그들이 이러한 활동을 통해 느꼈던 점들, 그들이 바라본 대한민국의 문제점 혹은 잠재력, 그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의 미래상 등을 듣고 취합하는 과정이 많이 생략되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또한 청년들도 기후변화, 탄소중립과 관련한 정책을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낼 역량이 충분합니다. 석사나 박사 과정을 진행 중이거나 마친 청년들도 있으니까요. 실제, 일부 지자체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것이 끝이었습니다. “노력해줘서 고맙다”, “의견은 잘 알겠다”라고는 했지만 그 후 실무적으로 정책적으로 반영이 된다는가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 4일 열린 제26차 환경의 날 기념식을 앞두고도 환경부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환경부 장관 등 VIP들이 행사장에 나오는데 “청년들이 참여한다, 시민들이 참여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영상을 보내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손 흔드는 장면 몇 초, 정해진 슬로건을 외치는 장면 하나, 다 같이 웃는 장면 등을 찍어서 보내달라는 것이었고, 저희의 의견이나 목소리, 생각을 담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지난 4일 개최한 제26회 환경의 날 기념식지난 4일 개최한 제26회 환경의 날 기념식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제안하거나 행사에 참석하는 그 VIP와 미래세대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지만 어렵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의견을 담는 영상도 아니고 그저 반응을 보여주는 영상을 찍어달라면서 “소정의 사례비를 드리겠다”는 말씀을 전화 받자마자 하시니… 사실 가장 좀 참담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희가 바랐던 것은 돈도 아니고 참여인데. 참여도 참여가 아닌 참여, 정말 동원되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만약, 환경부가 “미래세대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주겠다”고 한다면, 부르는 장소가 어디든 직접 티켓 끊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소통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강은빈: 탄소중립을 선언하기 얼마 전, 환경부에서 LEDS(장기저탄소발전전략) 수립을 하는 데에 있어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는 배제됐었죠. 결국 현장에 난입 아닌 난입을 하고서야 발언권을 조금이라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불가피하다곤 하지만 사전 질문을 받고, 그 중에서도 부처가 질문을 선정하는 방식이었죠. 이런 식으로 밖에 의견을 안 받으면서 '국민 대토론회'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많은 의견들을 가감없이 들었다"고 한 셈입니다. 결국 그렇게 '난입'한 이후에야 환경부 담당자는 "정당하게 이야기를 해야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알겠으니, 행사 끝에 5분 정도 발언할 시간을 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Q. 정책 결정자들이 실제 '미래세대'를 어떻게 대하고 있다고 느껴지는지?

강은빈: 청년 중에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그룹이 있다는 것을 다들 아세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부든 말이죠. 본인들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러이러한 주장을 하고 싶다' 하는 데에 본인들이 펼쳐갈 전략에 효과적이면 부르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본인들이 통제 가능한, 본인들의 이야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요구하고, 그런 자리면 부르는 거죠.

청년이 굉장히 수단화, 그리고 대상화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청년이라는 세대, 미래세대라는 표현 자체도 일단 대상화를 한 것이잖아요. 현재 세대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듯이. 그래서 기후위기가 마치 언젠가 미래에 영향을 주는 일이고, 그들을 위해 본인들이 지금 뭔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듯한, 굉장히 위계적인 담론이 가져가 지고 있다고 봅니다.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것, 요구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입장이 아니라, 본인들의 담론을 지키면서 그저 취사선택하는 정도랄까? 그런 면에서 청년들이 많이 배제되고 있고, 저희의 의견이 하나의 구체적인 정책의 기조로 들어가기에 너무나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운영위원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운영위원

강동렬: 정책이나 법안을 만드는 이들이 청년을 그저 유권자 중 한 계층으로만 보는 듯합니다. 마치 청년들이 관심 있을 것 같은 공약이나 행사를 제공하고서 “내가 너희에게 인지도를 좀 쌓을 수 있겠니?” 하는 식으로 대하는 거죠.

뭔가, 필요할 때마다 불러서 알바생 부린다는 느낌으로 “너희를 위해서 이만큼 참가비를 줄 테니 참가해보렴. 너희가 언제 이런 행사를 참여해보겠니.”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좀 아쉽습니다.

Q. 앞으로 어떤 부분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강동렬: 예전부터 말이 많았던, 국제기구를 행사에 초청하는 블루워싱이나 기후적 이슈를 주제로 삼는 그린 워싱 문제 등등은 이미 많이 알려진 문제입니다. 여기에 이제는 “청년들이 몇 명 참여했다”는 식으로 유스 워싱도 하려는 것인가 우려되고, 안타까우면서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기후이슈는 사실 특정 연령이나 지역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다 함께 영향을 받고, 또 모두 다 같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의제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많이 마련하고,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은빈: 이번 P4G 내용만 보더라도, 결국 직접 기후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은 다 외부화, 주변화되는 듯해요. 행사장 안에서 공식적으로 이야기되는 기후위기 담론을 보면, 너무나 고고하게 생물다양성이니, 친환경 산업이니, 이런 얘기들을 하고. 참 대조적이었던 것 같아요.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등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전혀 다른 온도와 전혀 다른 담론들이 양극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탄소중립 이행법안 국회 공청회 때에 의견서도 제출했었어요. 우리나라 인구 구조를 보면, 청년과 청소년이 전체 30%에 육박하거든요? 그래서 탄소중립위원회를 꾸릴 때 적어도 그 비율에 맞춰 인원을 구성해달라는 의견을 드렸었는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저 전문가 중심으로만 구성됐죠.

그렇게 꾸려진 탄소중립위원회엔 청년만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분들도 굉장히 적거나 배제된 상황입니다. 거기에 지금의 논의는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논의로만 이어지는 상황이 굉장히 위험한 것 같아요. 물론, 그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있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감축에만 치중했을 때, 그에 따른 고통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는 무시되고 배제될 수 있어요. 이미 기후위기가 벌어지는 현장의 어려움, 기후위기로 더욱 심각해지는 사회적 약자들의 취약함 등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고요. 그래서 정부와 국회, 지도자들이 큰 성찰과 새로운, 말 그대로 판을 짜는 담론을 제시해주셔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 산업화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기후위기와_미래세대
 
"왜 어린이는 조부모보다 이산화탄소를 8분의 1 수준으로 배출해야만 하는가" 분석 보고서 (자료: 카본브리프)"왜 어린이는 조부모보다 이산화탄소를 8분의 1 수준으로 배출해야만 하는가" 분석 보고서 (자료: 카본브리프)

이렇게 기후위기나 그린뉴딜,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때 '미래세대를 위한 ○○' 같은 표현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의 답을 찾는 데에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 40번째 연재 기사 〈[박상욱의 기후 1.5〉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40) 그들에겐 '위기' 뿐일까〉에서 소개해 드렸던 그래프 하나를 다시 꺼내보겠습니다.

영국의 기후변화 싱크탱크 카본브리프는 세대별로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을 분석했습니다. 지구가 품어줄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한정되어 있고, '산업화 이전 대비 1.5℃'라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선을 지키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누군가가 많이 뿜어냈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덜 내뿜는 것. 이미 기성세대는 온실가스에 대한 큰 걱정 없이 마음껏 이산화탄소를 뿜어왔습니다. 그때엔 감축이 필요한 줄도 몰랐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지 잘 알지도 못했죠. 그러한 무관심과 무지 속에 미래세대는 태어나자마자 '감축 의무'를 짊어지게 됐습니다.

 
(자료: 카본브리프)(자료: 카본브리프)

카본브리프가 계산한 세대는 1900년생부터 2017년생까지 다양합니다.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부터 MZ세대까지 모두를 아우르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연도별로 우리 인류가 한 사람당 평생 뿜어낼 수 있는 탄소의 양을 계산했습니다. 그중 '정책 결정자'를 대변할 수 있는 1950~1970년생과 '청년'을 대표하는 1990~2010년생의 '1.5℃ 시나리오' 탄소배출 가능량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정책 결정자들 역시 젊은 시절 마음껏 탄소를 뿜어온 세대지만 점차 감축해야 하는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1950년생보다는 1951년생이, 1951년생보다는 1952년생이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이 줄어들죠. 하지만 그래프의 감소폭은 미래세대로 갈수록 더욱 급격해집니다. 당장 정책 결정자 세대의 평균 탄소배출 가능량은 1인당 315.5톤인 데에 비해 청년 세대의 평균 탄소배출 가능량은 1인당 142.4톤에 불과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P4G 서울선언문 행간 읽기…온갖 '워싱'에 몰두하다 놓치는 것들

같은 '청년'으로 묶인다고는 하지만 1990년생이 평생 뿜어낼 수 있는 탄소의 양은 1인당 195톤, 2010년생의 경우 1인당 87톤에 불과합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양일까요? 우리가 2리터급 가솔린 자동차를 1년에 1만 2천km 주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2톤 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평생 87톤밖에 뿜어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도 마셔야 하고, 음식도 먹어야 하고, 냉·난방도 해야 하는데… 사실상 '가솔린 차'는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들에겐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눈앞의 현실인 것이죠.

“나 때는 말이야, 한강 물이 겨울에 꽁꽁 얼어서 썰매를 타고 다녔어”라는 세대와 태어나보니 해마다 역대 최고기온 기록이 뒤바뀌고, 해마다 '사상 최악'의 재해를 겪는 세대는 기본적으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대하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판이한 시각은 해법을 찾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신생 회사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거머쥔 것처럼 말이죠.

정책 결정자 세대가 정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청년들은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청년들은 몰라도 된다'며 그저 청년을 위하는 척, 청년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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