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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전경련의 견강부회…'에너지전환지수' 최하위권 해결책이 원전?

입력 2021-07-07 09:32 수정 2021-07-07 10:58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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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6)

지난 4월, WEF(세계경제포럼)가 발표한 2021년 에너지전환지수(ETI)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예상치 못한 의미에서의 화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 속도가 늦어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표가 “원자력 발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근거로 쓰인 겁니다. IEA(세계에너지기구)의 재생에너지 확대 보고서 속 '한국의 당면 과제' 역시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처럼 사용됐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이 문제, 너무도 갑작스럽고도 뜨겁게 이슈로 떠올랐다 보니 월요일이 아님에도 '호외'처럼 [박상욱의 기후 1.5]를 전해드립니다.

#ETI가_뭐길래
지난 4월 발표된 〈효과적인 에너지전환 조성 2021〉 보고서 (자료: WEF)지난 4월 발표된 〈효과적인 에너지전환 조성 2021〉 보고서 (자료: WEF)


먼저 WEF의 에너지전환지수(ETI)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ETI는 크게 두 축의 점수로 구성됩니다. 국가 시스템 차원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 에너지전환 준비가 얼마나 충실히 되어있는지 각각 5:5 비율로 따지는 거죠. 각각의 부문은 세부 항목으로도 나뉩니다. 시스템 퍼포먼스 점수는 ① 에너지 안보 및 접근성, ② 환경적 지속가능성, ③ 경제개발 및 성장 총 3가지 측면이 3분의 1씩 배점됩니다. 에너지전환 준비 점수의 경우 ① 에너지 시스템 구조, ② 인적 자본 및 소비자 참여, ③ 인프라 및 혁신적 경영 환경, ④ 관련 기관 및 거버넌스, ⑤ 각종 규제, 정책 및 공약, ⑥ 자본 및 투자 총 6개 측면을 6분의 1씩 따져봅니다.

ETI 평가 기준표 (자료: WEF)ETI 평가 기준표 (자료: WEF)


WEF는 이를 2012년부터 지수화해 발표해왔는데요, 2021년은 ETI가 집계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맞아 종합 보고서를 내놨고, 그것이 바로 지난 4월 발표된 〈효과적인 에너지전환 조성 2021〉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엔 국가별 ETI와 순위가 공개됐고,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2021 ETI 순위표 (자료: WEF)2021 ETI 순위표 (자료: WEF)

전체 조사 대상 115개국 가운데 49위로 2020년 때보다 한 단계 하락했습니다. 또한, WE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31개 나라 가운데 29위로 '선진국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죠. 우리보다 순위가 낮았던 나라는 사이프러스(전체 51위), 그리스(전체 54위)뿐이었습니다. 점수로는 60.82점으로 세계 평균인 59.35점을 간신히 넘었습니다. 선진국 평균(68.43점)에 못 미칠뿐더러 유럽 개도국 평균(61.08점)보다도 못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얼마나 뒤처졌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자료: WEF)(자료: WEF)


세계 평균을 크게 밑돈 항목은 두 가지였습니다. 시스템 퍼포먼스 항목 중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에너지전환 준비 항목 중 '에너지 시스템 구조'에서 크게 부족한 모습을 보였죠. 인적 자본 및 소비자 참여 역시 33.38점으로 세계 평균(38.47점)보다 낮았습니다.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국가별 ① 인구당 탄소 배출량, ② 탄소 집약도, ③ 에너지 집약도, ④ 대기오염을 종합해 평가합니다. 에너지 시스템 구조는 해당 국가의 ① 화석연료 의존도, ② 전원 믹스(발전원별 발전비중), ③ 에너지 수요 증가세를 종합해 평가하고요. 인적 자본 및 소비자 참여는 재생에너지 분야 일자리와 교육의 질을 따져봅니다. 우리나라는 결국, 탄소중립 선언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고탄소' 발전과 더딘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로 이 같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WEF는 이 보고서의 결론에서 “ETI 분석 결과 지난 10년간 에너지전환에 있어 진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도 “더 많은 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세부 항목별 점수의 변화를 살펴봤을 때, 경제 성장 등의 측면에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던 것과 달리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10년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니가_왜_거기서_나와?
(자료: 전경련 홈페이지)(자료: 전경련 홈페이지)


이러한 ETI 평가가 공개된 지 두 달이 지나서 여러 매체들은 뒤늦게 한국의 '최하위권 기록'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WEF 에너지전환지수 분석과 과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WEF가 내린 결론과는 상반됐습니다.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거였죠. 에너지전환을 이야기하는 통계와 보고서를 인용한 글에서 원전 확대라는 결론이라니. 마치 영탁의 노래 '니가 왜 거기서 나와'처럼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한 겁니다.

보도자료를 읽어 내려갈수록 영탁의 노래는 다시 한번 떠오릅니다. 〈WEF 에너지전환지수 분석과 과제〉라는 제목과 다르게 “원전 적극 활용”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또 다른 국제기구의 보고서였습니다. 바로 국제에너지기구(IEA)입니다. 지난 몇 주에 걸쳐 이 연재 기사를 통해 분석해드리고 있는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보고서를 작성한 바로 그 기구입니다.

IEA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가별 에너지 정책 보고서 한국편 표지 (자료: IEA)IEA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가별 에너지 정책 보고서 한국편 표지 (자료: IEA)


전경련은 IEA가 지난해 발표한 각국의 에너지 정책 분석 보고서 '한국'편에서 다음의 문장을 인용해 원전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The country's mountainous topography, high population density and the absence of transborder interconnections creates challenges for Korea to accelerate renewable energy deployment. In addition, Korea had lowest share of renewable energy among IEA countries in 2018."
“한국이 재생에너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데에 있어 한국의 산악 지형과 높은 인구 밀도, 해외와의 전력망 연결 부재 등의 요소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을 만들고 있다. 더욱이 2018년 기준,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IEA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기도 하다.”

전경련의 보도자료만 보면, 마치 IEA가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재생에너지가 아닌 다른 발전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분석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IEA의 보고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재에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소개해드린 바 있지만,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전경련이 인용한 문장(빨간 네모)이 담긴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개괄' 설명 (자료: IEA)전경련이 인용한 문장(빨간 네모)이 담긴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개괄' 설명 (자료: IEA)


IEA는 우리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정책(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20% 달성)'과 보고서 작성 당시 시점 기준의 204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30~35%)를 설명하면서 “이를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설치를 더디게 만드는 제도적 장벽을 허물고 정책의 일관성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사후 검증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와 유연한 시장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또한 “한국이 자랑하는 뛰어난 기술력과 혁신 능력을 활용해 조력이나 부유식 해상풍력뿐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의 탈중앙화 부문의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지금의 높은 해외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도 평가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라는 것이지 “원전을 늘려라”라는 발언은 전체 204페이지(표지 포함)에 달하는 이 보고서 그 어떤 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죠.

그리고 IEA는 최근 펴낸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보고서에서 발전원별 발전 비중을 명확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84번째 연재에서 살펴봤던 IEA의 그래프를 다시 꺼내봅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발전원별 글로벌 발전량(왼쪽)과 비중(오른쪽)의 변화 (자료: IEA)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발전원별 글로벌 발전량(왼쪽)과 비중(오른쪽)의 변화 (자료: IEA)


IEA는 원전을 부정하는 성격의 기구가 결코 아닙니다. 또한, 여타 글로벌 환경단체처럼 '친환경적'이거나 '탈원전'을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원전의 발전량 자체가 늘어난다는 로드맵을 내놓은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그런 IEA도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비약적으로 늘어나 발전비중이 2020년 현재 기준 29%에서 2050년 90%에 육박하게 된다. 나머지 부족분은 원전과 수소, 탄소포집 및 저장 기술이 적용된 화석연료 발전 시설이 채우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WEF도, IEA도 그 어디도 “원전 확대”를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전경련은 교묘한 프레이밍으로 두 기구의 전문가적 분석을 왜곡했습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서로 반대 방향에 있는 에너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프레임으로 말이죠. “쓸데없이 재생에너지 늘리지 말고 원전이나 더 지어라”라는 여론을 만들기 딱 좋은 프레임입니다.

#차라리_견강부회_아전인수였다면
글로벌 탄소중립 이행 상황 (자료: ECIU)글로벌 탄소중립 이행 상황 (자료: ECIU)


전경련이 내세운 이 프레임은 과거 MB정부 시절 '녹색성장'을 외치던 시절엔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2021년, 이미 재생에너지를 '메인스트림'으로 하는 탄소중립 레이스가 시작된 상황입니다. 이미 두 나라는 탄소중립을 달성했고, 11개 나라가 2045~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법으로 명문화시켰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4개 나라에선 입법 과정에 있죠. 17개 나라에선 2035~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정책화한 상태입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두고 “지구 환경만 생각할 줄 알지 국가 경제는 모르는 소리”라고 하는 말에 10년 전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10년 전엔 '재생에너지=좌파, 원전=우파'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사업 과정에서 이용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며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인증을 받은 기업의 수만도 300곳이 넘습니다.

(자료: RE100)(자료: RE100)

구글이, 애플이, 뱅크오브아메리카가, JP모건이, 코카콜라가, 버버리가, 랄프로렌이, BMW가, GM이… 경제는 모르고, 돈벌이는 제쳐놓고, 오직 지구 환경만 생각해서 RE100에 가입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일까요? 공산주의 혹은 좌파 성향의 기업이라 그런 걸까요? 탄소세, 탄소국경조정 등의 이름으로 탄소배출이 자유무역주의 시대에 새로운 '관세'로 적용되고, 서비스나 제품의 생산 및 이용, 폐기까지 전체 생애 주기에 걸친 탄소 발자국에 따라 비용이 매겨지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전 '펜티엄' 시절, PC 부팅 화면에 '에너지 스타' 로고가 나왔던 것처럼 이젠 제품이나 서비스에 'RE100' 인증 스티커가 붙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쯤 되면, 우리나라 경제인이 모인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이러한 분석을 내놓은 것이 견강부회(牽强附會,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갖다 붙여 자신의 상황에 맞도록 함)나 아전인수(我田引水, 자신의 이익만 채우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함)로 보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당장 수출길이 막히게 생겼으니 정부가 빨리 재생에너지를 확대해라, 탈탄소 기술개발에 정부가 적극 R&D 예산을 지원해 달라, 새로운 탄소 감축 기술들 상용화할 테니 규제를 철폐해 달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말고 원전 활용 늘려라”라는 목소리를 낸다니요. 그게 정답이라면 당연히 RE(Renewable Energy)100이 아니라 NE(Nuclear Energy)100이 먼저 만들어졌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한일 무역갈등의 여파로 교류가 끊기면서 게이단렌(經團連)이 자체적인 RE100 프로그램인 '챌린지 제로'를 만들고, 정부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원전을 통해 공급받는 전기로도 RE100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가 전경련의 메일함에 보내진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원년, 벌써 절반 넘게 지나갔습니다. 목표 달성까지 남은 시간은 30년도 채 안 됩니다. 안 그래도 험난한 탄소중립으로의 여정이 더는 불필요하게 험난해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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