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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달리는 차에 개 매달아 죽여도 '집행유예'인 이유

입력 2022-01-18 09:00 수정 2022-01-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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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람들이 공분한 동물 학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강아지의 목줄을 잡아 들고 공중에서 돌리는가 하면, 얼어붙은 강 위에 강아지를 두고 큰 돌로 고정시킨 채 떠난 사람도 있었지요.

현행법상 동물을 학대하면 징역 3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며 처벌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판결은 어떨까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판결이 확정된 사건을 들여다봤습니다.

[취재썰] 달리는 차에 개 매달아 죽여도 '집행유예'인 이유

■ '동물병원을 찾는 등 개를 살리려는 생각'

지난해 3월, 피고인 A가 운전하던 자동차 뒷부분엔 개 한 마리가 목줄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A는 차를 운전했습니다. 최대 시속 50km까지 달렸습니다. 그렇게 5km쯤 갔을 때, 바닥에 끌려가던 개의 앞다리와 양쪽 어깨 가죽이 벗겨져 근육이 드러났고 결국 다음날 숨졌습니다.

법원은 A에게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잔인한 학대행위이고 생명에 대한 희박한 존중의식이 불러온 결과라고 했습니다. '사안을 가볍게 볼 수 없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개가 쓰러진 뒤 동물병원을 찾았다며, 개를 살리려는 생각과 노력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개를 도살할 목적으로 저지른 행위는 아니었단 겁니다.

이 사건 이전엔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었다는 점도 참작한다고 했습니다.

[취재썰] 달리는 차에 개 매달아 죽여도 '집행유예'인 이유

■ '봉사활동을 하며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

재작년 6월, 피고인 B는 집 근처 고양이들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새끼고양이 3마리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고양이 목을 줄로 매달고 괴로워하는 걸 관찰했습니다. 가위로 수염을 잘라내고, 면도칼로 털을 깎아 피부가 부어오르게도 했습니다.

집게로 발을 집어 벽에 매달아 신음하는 걸 관찰했고, 실신하기 전 잠깐 내려주고 또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법원이 B에게 내린 판결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입니다. 죄질이 매우 좋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또 사건 이후 B가 고양이 보호소에 가서 19회에 걸쳐 자발적으로 분변을 치우는 등 봉사활동을 했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겁니다.

이 외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강아지를 죽인 C는 벌금 500만원을, 개가 짖었다며 산 채로 비닐봉지에 넣어 건물 밖으로 던져버린 D는 징역 3개월의 형을 2년간 유예받았습니다.

[취재썰] 달리는 차에 개 매달아 죽여도 '집행유예'인 이유
■ 여전히 가벼운 형량

동물보호단체 '도로시지켜줄개'의 이효정 대표는 이처럼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해도 처벌이 낮으니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단체에서 보호 중인 개 40여 마리도 대부분 신체적으로 학대당하거나 방치 또는 유기된 상태로 구조됐습니다.

동물보호단체 '도로시지켜줄개' 이효정 대표동물보호단체 '도로시지켜줄개' 이효정 대표
맹성규 의원실이 경찰청과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 학대 건수는 2011년 98건에서 2020년 992건으로 10배 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범죄 혐의를 인정해 사건을 검찰로 보내는 송치율은 76.1%에서 55.7%,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기소율은 47%에서 32%로 떨어졌습니다.

재판에 가더라도 실제 내려지는 처벌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동물자유연대의 '동물학대 판례평석'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1심 선고를 받은 사람은 304명입니다. 그중 절반 이상인 183명이 벌금형이고, 실형 선고는 단 10명에 그쳤습니다.

지난 2019년 경의선 길고양이 '자두'를 들어 내리치고 짓밟아 죽인 뒤 버린 4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6개월을 선고했을 때, 동물 단체는 이례적 선고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동물 학대 범죄의 심각성을 법원이 인정했다고 환영한 겁니다.

이는 곧 대부분의 다른 동물 학대사건은 아무리 잔혹한 방식이어도 관행처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내려져 왔다는 현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같은 이유에서 동물 학대 사건에 대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일관되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동물학대 관련 게시글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동물학대 관련 게시글

■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선언하는 조항을 신설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아직은 동물은 '물건'입니다. 학대받는 동물도 가해자의 소유물이기에, 가해자가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동물을 격리할 명분이 없기도 합니다.

동물의 법적 지위가 개선되면, 동물 학대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리란 기대가 나옵니다. 동물 학대 유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논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1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모든 국민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등 동물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동물보호법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존중하고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게, 국민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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