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7일) 낮 12시, 경기 화성시에 있는 삼성전자DSR 타워 앞은 'NSEU'라고 적힌 검은색 반팔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햇살 내리쬐는 오후, 점심 먹으러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에 자리 잡은 노동자들. 한 손엔 '노조 탄압 중단하라'는 팻말을 들었습니다.
어제(17일) 낮 12시쯤 첫 단체행동에 나선 삼성전자 노조. [이학진 기자]
NSEU(The National Samsung Electronics Union).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2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보유한 삼성의 최대 노조 조직이기도 합니다. "문을 열어 달라". 굳게 닫힌 출입문을 앞에 두고 1,500명 가까이 되는 노동자들이 한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들은 왜 거리로 나오게 된 걸까요.
어제 이곳에선 전삼노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8일 회사와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쟁의 행위를 결의하고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1969년 창사 이래 삼성전자에서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임금협상이 발단이 됐습니다.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2023년과 2024년 임금협상을 합쳐 10여 차례 교섭을 벌였습니다. 사측은 5.1% 임금 인상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6.5%를 요구했습니다. 성과급 제도 개선과 재충전 휴가도 요구했지만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DSR 사옥에 설치된 화단 모습. [독자 제공]
결국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회 장소였던
DSR 타워 1층 로비 곳곳에 대규모 화분이 설치됐습니다.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에도 빈 곳이 보이지 않도록 화분을 놨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던 길, 보안요원들이 회사 출입을 막았습니다. 일부 출입문엔 자물쇠가 잠기고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됐습니다. 한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화장실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인사 직원이 같이 가는 조건으로 문 안에 겨우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삼성 DSR 사옥 앞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모습. [독자 제공]
문화 시위를 기획한 노조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기존 집회와는 다르게 재밌는 공연으로 평화 시위를 기획해보자는 게 우리의 철학이었는데, 이렇게 부술 것처럼 대응하는 사측을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사측은 "안전상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좁은 로비 안에서 집회가 열리면 사람들이 다칠 수 있어 출입을 제한했다는 겁니다. '봄맞이 화단'에 대해선 "봄을 맞아 사업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설치해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체행동은 다음 달에도 이어집니다. 노조 측은 "앞으로도 평화적으로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구하겠다"면서도 "그런데도 변화가 없다면 우리를 파업으로 내모는 거나 다름 없다"고 했습니다. 노조는 다음 달 24일 삼성 서초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엽니다.
어제(17일) 낮 12시쯤 첫 단체행동에 나선 삼성전자 노조. [이학진 기자]
"파업하면 사측 뿐만 아니라 노측도 같이 타격 입는 거예요. 무작정 파업하자는 게 아닙니다. 행사를 기획한 건 우리 목소리를 듣고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안에 합의해보자는 의미입니다."행사를 마치고 이현국 전삼노 노조부사무장이 한 말입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빼앗긴 회사의 경영 실패와 불투명한 임금 산정 방식에 대해 노사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입니다.
집회 장소에 대규모 실내 꽃밭이 생기고 출입문이 잠기는 걸 본 노조로선 이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실망도 했지만, 대화의 길은 열어 놓았습니다.
평화 집회를 열고 '파업이 답이 아니다'라 했습니다. 열린 소통 채널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노조의 물음에 이젠 회사가 답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