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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입력 2024-03-18 08:00 수정 2024-03-18 08:46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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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7)

372억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에너지 사용과 관련해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의 양입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리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모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자고 합의했음에도 우리는 또다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말았죠.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20세기 이후, 전 세계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억톤 이상 줄어든 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직전 연도 대비 배출량 감소폭이 1억톤 이상인 경우는 1908년 1.1억톤, 1914년 3.3억톤, 1919년 4.7억톤, 1921년 4.4억톤, 1930년 3.3억톤, 1931년 4.3억톤, 1932년 3.5억톤, 1938년 2.7억톤, 1945년 8.8억톤, 1949년 2.8억톤, 1980년 2억톤, 1981년 2.3억톤, 1982년 1.9억톤, 2009년 3.9억톤, 2015년 1억톤, 2020년 19.2억톤으로 100년 넘는 세월 중 16번밖에 없었습니다. 연간 5억톤 이상 줄어든 것은 1945년과 2020년, 단 두 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배출량에 대해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터널의 끝이 보일 수 있다는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청정에너지의 확산으로 증가폭이 3분의 1로 제한됐다는 것입니다. 실제 미국과 EU, 일본 등 선진국들의 주요 부문별 배출량이 줄어들었음을 지난주 연재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청정에너지 기술의 확산 덕에 선진국들은 발전부문에서 큰 폭의 감축을 이뤄냈고, 감축이 어려운 분야로 손꼽히는 산업과 건물부문에서도 유의미한 감소세를 기록했죠. 그런데, 이런 배출량의 증감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봤더니 의외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기후변화의 영향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이산화탄소 배출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변화가 반대로 이산화탄소 배출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2023년 에너지와 관련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0.41Gt, 즉 410Mt(4.1억톤) 늘었습니다. 날씨가 배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엘니뇨에 따른 수자원 부족으로 탄소 배출은 170Mt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을 만큼 더웠던 날씨로 냉방 수요가 늘어나 50Mt이 추가로 배출됐고요. 그런데, 반대로 포근한 겨울 덕에 난방 관련 배출은 173Mt 줄었습니다. IEA는 이 밖에도엔데믹 효과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짐에 따라 여객과 화물 등 전 세계 항공 분야 배출량이 무려 140Mt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날씨로 냉방 또는 난방으로 인한 배출량의 변화폭은 상이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난방으로 인한 배출은 모두 감소했습니다. 그 덕에 냉난방만 놓고 봤을 때, 지구 차원에선 2022년보다 배출량이 123Mt 줄었을 정도였죠. 이는 전 세계 건물부문 배출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과 EU뿐 아니라 중국, 인도에선 냉방도일과난방도일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 난방도일 감소로 17Mt이 줄었고, 더위로 인한 냉방도일 증가로 7Mt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계절별 에너지 사용 패턴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간 냉방은 주로 전기를, 난방은 주로 화석연료를 이용했던 만큼, 난방도일의 감소와 냉방도일의 증가는 냉난방의 전기화와 온실가스 감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당장 화석연료를 태워야 하는 일이 줄어드는 만큼, 이는 직접적인 화석연료 수요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또, 난방 수요가 해마다 늘어난다면, 난방의 전기화는 일반 시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차를 운행한 사람이라면, 여름철 에어컨을 켜고 전기차를 운행할 때와 겨울철 히터를 켜고 전기차를 운행할 때의 전비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난방은 냉방 대비 더욱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전기화의 연착륙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그런데, 날씨의 변화가 도리어 탄소 배출의 증가 효과를 부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부족한 강수의 영향으로 2023년 전 세계 수력발전량이 전년 대비 무려 202TWh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연간 전력 사용량에 맞먹는 수준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2023년 수력발전소의 용량은 전년 대비 20GW나 늘었습니다. 이러한 역대급 신규 설치에도 불구하고, 엘니뇨 등의 영향으로 줄어든 강수와 담수량에 수력발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수력발전량이 20여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한 나라에서만 수력발전량이 무려 126TWh 감소할 정도였죠.

IEA는 이처럼 기상 상황이 탄소 배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주요 개도국(중국과 인도)과 선진국(미국과 EU)의 배출 증감 요인에 대해서도 분석했습니다. 우선 중국의 경우, 2023년 에너지 관련 탄소 배출량은 무려 12.6Gt으로 전년 대비 4.5%(565Mt) 증가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수자원 부족으로 인한 수력발전 감소만으로도 배출량이 115Mt 가량 늘어날 정도였죠. 수력발전의 문제 하나가 우리나라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2022년 기준, 654.5Mt)의 17.6%에 달하는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강도 높은 봉쇄 조치를 취했던 중국이었던 만큼, 엔데믹에 따른 리바운드 효과도 컸습니다. 오랜 기간 발이 묶였던 시민들이 폭발적으로 이동에 나서면서, 고속도로 이동량(거리 기준)은 전년 대비 50% 가량, 항공 이동량(거리 기준)은 160%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이동 만으로도100Mt이 추가로 배출됐다는 것이 IEA의 분석 결과입니다. 또한, 봉쇄 조치와 함께 멈췄던 각종 개발 사업이 차츰 정상화됨에 따라 신규 건설 준공 면적은 전년 대비 16% 증가했습니다. IEA는 “지난해 전 세계에 새로 설치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설비와 신규 판매된 전기차의 60% 가량이 중국 한 나라에 집중되면서 중국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비중은 2015년 4%에서 2023년 15%로 선진국 평균(17%)에 근접하게 됐고,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은 선진국의 배를 넘게 됐다”면서도 “이러한 청정에너지 기술 확산 속도도 중국의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따라잡기엔 충분치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인도 또한 중국과 마찬가지로 강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2023년, 인도의 배출량은 2.8Gt에 육박하며 전년 대비 7% 이상(190Mt)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GDP 성장률(6.7%)을 넘어설 정도였죠. 통상 6~9월 사이 이어지는 몬순은 기온을 낮추고, 수자원을 풍족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몬순으로 인한 강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2023년 인도의 수력발전량은 전년 대비 15% 줄었습니다. 덕분에 발전부문의 배출량은 전년 대비 무려 60%나 늘었죠. 모자란 전력을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수자원에 농민들의 펌프 사용량은 급증했죠. '농민들이 펌프를 써봤자 얼마나 쓴다고 그러냐'는 분들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농업부문의 전력 사용량은 국가 전체 전력 수요의 5분의 1에 달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선진국의 경우, 탈석탄을 시작으로 탄소 배출량의 감소가 더 이상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뚜렷한 경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OECD 회원국들의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은 2007년 13.1Gt을 정점으로 계속해서 감소세를 이어갔습니다. 2023년 연소 배출량은 10.4Gt으로 50년 전 수준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석탄 에너지 공급량 또한 2007년 50EJ로 정점을 찍고, 이후 전에 없던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2023년엔 26EJ을 기록했습니다. 100년 전인 1923년보다도 석탄 사용이 줄어들어 1905년(24EJ)~1906년(26EJ)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된 것입니다. 당장 미국에서만도 석탄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166Mt 줄었고, EU에선 136Mt, 일본에선 30Mt 감소했습니다.

EU의 경우, 전년 대비 2.2억톤의 감축을 달성했는데, 이는 거의 팬데믹의 충격 당시와 맞먹는 수준의 감소폭입니다. 이러한 감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재생에너지의 확산과 산업부문의 감축이었습니다. EU에선 처음으로 풍력발전량이 석탄화력발전의 발전량뿐 아니라 가스화력발전의 발전량을 넘어섰습니다. IEA의 표현을 빌자면,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또, 다른 지역과 달리 유럽에선 지난해 많은 비가 내리면서 수력발전도 발전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부문의 경우, 전체 감축량의 30%를 차지할 정도였는데, 그저 '반가운 감축'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IEA는 “높은 에너지 가격과 고금리, 내수 부진과 강력해진 글로벌 시장 경쟁으로 유럽 내 산업 생산량은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산업부문의 부가가치 감소율보다 이산화탄소 감소율이 더 높았고, 중공업 제품의 생산량 감소율보다 이산화탄소 감소율이 더 높았던 만큼, 단순히 산업 둔화를 넘어 산업부문의 에너지 효율 개선과 연료 전환 노력이 더해진 결과라는 것이 IEA의 분석 결과였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미국의 경우, 2.5%의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4.1%라는 배출 감축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1.9억톤에 달하는 미국의 전체 감축량 가운데 3분의 2는 발전부문에서 비롯됐습니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탈석탄이었습니다. 석탄화력발전 일부를 가스화력발전으로 전환함으로써 거의 9천만톤 가량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강수에 수력발전량이 전년 대비 6%(15TWh) 감소했고, 엘니뇨의 영향으로 바람이 약해지면서 풍력발전량 역시 2022년보다 줄어들었지만, 태양광 등 다른 재생에너지의 활약으로 2천만톤 가량의 감축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IEA는 열악한 기상 요건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재생에너지 확산의 효과는 더욱 커져 4천만톤의 탄소 배출 감축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계는, 선진국들은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어떨까요. 2주에 걸쳐 연재에서 살펴본 중국과 인도, 미국, EU,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국가 단위의 배출량 측면에서 봤을 때, 미국과 EU뿐 아니라 일본도 금세기 들어 감축은 이미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평균'을 높이는 축에 속하고 있죠.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중국과 인도가 문제지, 우리나라는 새 발의 피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배출량은 인도의 5배가 넘고, '세계의 공장',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는 중국보다도 많습니다. 그런 중국과 인도보다도 에너지전환의 속도는 훨씬 느리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개도국 할 것 없이 전방위적인 감축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선 '감축은 배부른 소리', '감축은 먼 미래,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목소리가 여전한 것이 현실입니다.

에너지전환의 속도는, 그로 인한 탄소 배출의 증감은 국제사회 내에서 그저 한 나라의 Reputation(평판)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나라가 낼 수 있는 목소리의 힘을 좌우하고, 자국 내 산업의 지속가능한 이윤 창출과 대외 수출 경쟁력을 결정짓고 있죠. 이는 '결정지을 것'이라는 전망이 아니라,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웃 나라의 한 기업은 이미 수년 전, 자국 산업계를 대표해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고, 정부는 이러한 산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이 기업과 비슷한 업종에 있는, 우리나라의 수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이자, 국내 주요 수출기업 가운데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기업 중 한 곳을 보더라도, 이러한 현실은 숫자로 다가옵니다. 2020년, 이 기업은 미국과 유럽, 중국 내 사업장에서 이미 재생에너지 100%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2022년엔 베트남과 인도, 브라질의 제조사업장에서도 재생에너지 100%로의 전환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 국내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전 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려운 나라”로 꼽혔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생에너지는 미래의 일', '재생에너지는 다른 나라의 일'이라며 재생에너지의 'ㅈ'도 꺼내기 어려운, 그럼에도 여전히 '재생에너지보다 ○○이 우리나라에 맞다'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오고 있는 오늘입니다. 무엇이 더 맞고, 합리적이라고 다투기엔 고작 7% 안팎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OECD 최하위권'에 불과한, 당장 어떻게 늘려야 할지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오늘임에도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 배출 증가세 둔화, 기후변화 '덕분'?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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