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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이른 봄꽃'에 숨겨진 무서운 경고

입력 2024-03-04 08:00 수정 2024-03-04 21:58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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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5)

곳곳에서 봄꽃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장 대표적인 봄꽃 중 하나인 매화의 경우, 제주(1월 15일)와 서귀포(1월 21일)를 시작으로 부산(2월 6일)에서 일찍이 개화가 관측됐습니다. 3월에 접어들면서, 매화는 남부지방 곳곳에서 피어났고, 부산에선 주요 봄꽃(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 가운데 가장 늦게 개화하는 벚꽃이 일찍이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평소 부산과 비슷한 시기 벚꽃이 피는 창원의 경우, 군항제를 역대 가장 일찍(3월 22일) 열기로 했을 정도입니다. 자꾸만 높아지는 기온 때문입니다.

지난 2월만 놓고 보더라도, 전국 97곳의 주요 관측지점 가운데 75곳에서 '역대 2월 일평균기온 Top 5'에 드는 기온이 기록됐습니다. 역대 2월 일평균기온 최고 기록이 새로 경신된 곳도 서울(2024년 2월 14일, 12.9℃), 부산(2024년 2월 19일 16℃), 양산(16.7℃) 등 총 22곳에 달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이른 봄꽃'에 숨겨진 무서운 경고
전국 단위 기상 관측이 본격화한 1973년 이래, 우리나라의 봄 평균기온을 살펴보면, 점차 빨라지는 꽃 소식의 이유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1973년, 전국 평균 11.5℃를 기록했던 봄 평균기온은 2023년 봄 13.5℃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아무리 해마다 봄철 평균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해도, 상승세는 분명했습니다.

내륙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전남과 경남의 경우, 전남은 12.3℃에서 13.3℃로, 경남은 12.6℃에서 14.2℃로 따뜻해졌죠. 14℃ 안팎이면 그래도 선선한 편인데, 너무 호들갑이 심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삼한사온(요즘은 삼한사미이기도 하지만)이라는 특성을 감안했을 때, 이는 봄철에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들이 점차 늘어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도 포근했던 남부지방만 이런 변화를 보였을까요? 봄철 평균기온의 상승 속도만 놓고 보면, 수도권은 더욱 빠릅니다. 1973년 10.8℃에서 2023년 13.3℃로, 기온 자체만 놓고 보면 전남이나 경남에 비할 바 아닙니다만, 상승 속도는 연평균 0.05℃에 달해 남부지방을 압도했습니다.

이는 그저 아름다운 꽃을 보다 빨리 만나본다는 반가움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꽃이 전에 없던 수준으로 일찍 핀다는 것은, 우리나라 생태계 전반의 '생태 시계' 또한 뒤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태 시계의 변화는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서머타임을 적용 중인 것처럼, 단순히 시간이 앞당겨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저 '보고 즐기는 자연환경'으로 여기는 꽃이나 나무, 숲뿐만 아니라, 우리의 밥상을 책임지는 곡물과 작물 또한 이러한 생태 시계의 변화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죠. 그 영향은 단순히 추수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이른 봄꽃'에 숨겨진 무서운 경고
지난 175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역대급 가뭄과 고온의 콜라보…식량안보 '위기'〉에서 설명드렸던 것처럼, 당장 벼에서 쌀알이 열리는 비율도, 그렇게 열린 쌀알 가운데 정상립의 비율도 크게 줄어듭니다. 쌀알이 열리는 벼는 현재 92.2%에서 2050년대 51%로, 정상립의 비중은 현재 73.1%에서 2050년대 46.5%로 떨어지는 것이죠.

이는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을 하지 않았을 경우(RCP 8.5 시나리오)에 따른 전망치인데, 그 결과 우리나라의 쌀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짐에 따라 2060년대엔 10a(에이커)의 땅에서 불과 368kg의 쌀밖에 얻지 못 하는, 1970년대보다 못한 생산성을 보이게 됩니다. 당장 농업인구와 더불어 농지면적의 감소가 심각한 상황인 만큼, 같은 면적에 땅에서 1970년대보다 못한 수준의 쌀밖에 얻지 못한다면, 국가 전체의 쌀 생산량은 전국 각지에 논이 분포해 있던 1970년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2040년 67.4%, 2050년 5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까지 일찍이(2012년) 경고했을 정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이른 봄꽃'에 숨겨진 무서운 경고
당시 농촌경제연구원은 ① 국내 생산능력 제고, ② 완충능력 제고, ③ 해외 수입능력 제고, ④ 정책적 대응능력 제고 측면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한 안정적인 식량공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농업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식량비축을 늘리고, 해외 식량기지를 건설하고, 교육 및 훈련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농촌의 '대응'이지만, 이 노력이 직접적으로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일들은 아닙니다.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일은 이미 모두 아시다시피 농촌만 고민하고, 노력해서 가능한 일도 아니고요.

그로부터 10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이 낮다고 평가한 주된 이유로는 ① 수입 식량 및 곡물 의존도가 높기 때문(85.7%), ② 국제곡물시장 위기대응체계 및 대응수단이 미흡하기 때문(42.9%), ③ 향후 경제위기 및 공급망위기 등으로 식량 수입에 어려움이 증가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40.5%) 등이 꼽혔습니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인데 너무 겁박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충분히 많을 것입니다. 식량자원의 부족과 그로 인한 심각한 타격이 가가호호 개인의 생활에까지 미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다양한 국제기구나 평가기관이 평가한 식량안보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상황은 주요 선진국보다 열악한 것이 사실입니다.

기후변화는 작물 자체의 생육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위의 평가들은 그러한 작물 영향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작물을 넘어, 그 작물을 생산하는 이들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입힙니다.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외부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은 비단 작물뿐 아니라 농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농업 활동의 환경적 조건이 열악해질수록 '탈농촌'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래도 생산성 악화로 농가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일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이나수재해와 같은 직접적인 리스크에 노출되는 빈도까지 높아지면 농촌을 떠나는 이들은 늘어나고, 농촌으로 유입되려는 이들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당장 식량작물 재배면적은 2002년 130만ha에서 2022년 90만 2,000ha(추정)로 줄어들었습니다. 농가호수는 같은 기간 128만호에서 102.1만호로, 농가인구는 359.1만명에서 219.1만명으로 줄었고, 농가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비율은 26.2%에서 46.8%로 높아졌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32년 농가호수는 95.7만호, 농가인구는 194.3만명으로 줄어들고,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율은 무려 5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기후변화로 뜨거워지는 것은 한반도의 대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주변의 바닷물도 달궈지고 있죠. 전 세계 평균 해수온이 오르는 것보다 우리나라 주변 바다는 더욱 빠르게, 더 뜨겁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업생산량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이른 봄꽃'에 숨겨진 무서운 경고
'시장에 물고기가 넘쳐나는 데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최근 50년 우리나라의 어업생산량 통계를 보면, 그런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 총 어업생산량은 배고픔에 시달리던 1974년 202만 6천여톤에서 2023년 367만 8천여톤으로 분명 증가했습니다. 50년새 최고 기록 또한 최근인 2019년(386만 1천톤)의 일로, 전체 생산량만 보면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는 연근해어업 통계를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1970~1980년대 점차 늘어나던 고기잡이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2016년 100만톤 선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2022년 연근해어업 생산량은 88만 8천여톤으로 50년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이듬해인 2023년에도 95만 6천톤 가량으로 100만톤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연근해어업뿐 아니라 원양어업 또한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바다에서 잡아올리는 물고기의 양은 계속 줄어든 것입니다.

그저 '수산물 소비자'의 입장에서 수산물을 구입하는 일반 시민들은 왜 이런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을까요. 이는 양식의 증가 덕분이었습니다. 1974년 34만톤을 간신히 넘겼던 해면양식업 생산량은 2006년 125만 9천여톤을 기록하며 연근해어업 생산량을 넘어섰고, 2019년 241만톤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대응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가리고 있는 것'이죠. 마치, 농지 면적은 해마다 줄어만 갔는데, 농업기술의 발달로 같은 면적에서 생산되는 작물량이 늘어 1970년대와 같은 쌀 부족을 겪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셈입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속화하는 기후변화로 결국 생산성이 1970년대보다 못 한 수준으로 떨어질 쌀처럼, 수산물 또한 우리 모두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없다면, 양식 생산량 확대로 연근해어업 생산량 감소를 만회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실제, 뜨거운 바닷물로 인한 집단 폐사나 바닷속 열용량의 급증에 따른 강력한 태풍의 등장에 따른 양식장 구조물의 피해 등은 지금도 발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매년 봄을 맞이할 때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선 '벚꽃이 역대 가장 이른 시기에 폈다'와 같은 보도가 쏟아지고, 그러한 보도에 대한 조회수 또한 높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꽃놀이 갈 때구나'를 알려주는 신호가 아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심각한 경고입니다. 꽃이 일찍 피고, 작물의 경작지가 북상해 열대과일이 한반도에서 자라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죠. 지난 여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심각한 표정과 강경한 어조로 “지구 온난화의 시대(Era of Global Warming)가 끝나고, 끓는 지구의 시대(Era of Global Boiling)가 도래했다”고 소리친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입니다. 또한 이는, 우리가 온난화를 기후변화로 부르고,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부르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이른 봄꽃'에 숨겨진 무서운 경고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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