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입력 2024-02-26 08:01 수정 2024-02-26 22:5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4)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4)

2024년이 되어서도 국내에선 여전히 에너지전환을 흰소리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프로파간다가 아닙니다. 에너지전환은 '말'을 넘어 '투자'로 이어졌고, 그러한 투자의 흐름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로 자리매김했죠. 전 세계 에너지 투자 규모를 봤을 때, 2015년만 하더라도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는 1조 3,190억달러로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1조 740억 달러)를 앞섰습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청정에너지 투자는 화석연료 투자액을 넘어서기 시작하더니 2019년부터 그 격차는 점차 벌어졌습니다. 2023년 기준, 글로벌 청정에너지 투자액은 1조 7,400억달러로, 화석연료 투자액(1조 500억달러)의 1.7배에 달하게 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청정에너지 투자의 확대를 견인한 것은 재생에너지였습니다. 분야별 투자규모를 살펴봤을 때, 재생에너지 발전 분야 투자는 2015년 3,310억달러에서 2023년 6,590억달러로 배 수준이 됐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 기간 소폭의 증가가 이뤄졌으나 그 어떤 분야도 재생에너지에 비할 바가 안 됐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외의 눈에 띄는 분야를 꼽자면, 전기차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15년 기준, 10억달러에도미치지 못 해 글로벌 통계에 잡히지도 않던 전기차 분야 투자는 2016년 10억달러에서 2023년 1,290억달러로 급증했죠.

이러한 변화는 개별 에너지원별 투자규모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3년, 전 세계에서 석유생산에 투자된 돈은 6,360억달러, 태양광에 투자된 돈은 1,270억 달러로 그 격차는 매우 컸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태양광 투자 규모는 3,820억달러로 석유생산 투자 규모(3,710억달러)를 사상 최초로 넘어서게 됐죠. 재생에너지가 석유를 꺾은 것을 넘어, 재생에너지 중 하나에 불과한 태양광에만 석유생산을 뛰어넘는 투자가 이어진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지난 2주간의 연재를 통해 '에너지전환은 비단 발전원의 전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에너지전환이 갖는 의미가 그 이상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당장, 에너지전환의 비포와 애프터로 설명하더라도, 국내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용된 에너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전력이 아닌 열입니다. 1990년 이래로 열-수송(동력)-전력 순서로 에너지를 소비해왔고, 2008년에서야 이 순서가 열-전력-수송(동력)으로 바뀐 것이죠. 당장 2022년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사용 용도별 최종에너지소비를 보면 열(8,448만 5,000toe)-전력(4,569만 3,000toe)-수송(3,629만 2,000toe) 순으로, '에너지 정책'이라는 백년대계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정부가 단순 발전원의 전환에만 집중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발전이 중요해지는 것은 에너지전환의 '애프터'에서부터입니다. 화석연료를 청정 전력으로 대체하는 전기화가 이 과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정책 개발자의 입장에선 전기로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해법도 더불어 찾아야 하고요. 이미 에너지전환을 진행 중인 국제사회에선 발전분야에서도 변화가 뚜렷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발전분야만 떼어놓고 보더라도, 재생에너지 투자규모는 2019년 4,510억달러에서 2023년 6,590억달러로 급증했습니다.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엔 불과 2023년 기준 1,060억달러, 재생에너지의 16.1%에 불과한 자금이 투입됐죠. 우리나라도 이 통계에 분명 포함되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평균에 못 미치는', '평균을 까먹는', '변화에 뒤처진' 것 아닌가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신규 설치 속도가 더디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당장 지금 이 순간 국내에서 공사가 착실히 진행 중인 대형 발전시설 가운데엔 화석연료 중에서도 퇴출이 가장 임박한 석탄화력발전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최근 총선을 앞두고 정당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대결 구도가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축소되거나 왜곡되고 있습니다. 바로, 유연성입니다. 지난 2022년, 134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 환경 문제? 경제 문제? 아니면 안보 문제? (하)〉에서도 설명해 드렸던, 실제 하루 중 전력 공급량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루 중 전력의 수요는 결코 일정하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달라지죠. 모두가 잠든 한밤, 전력 수요는 최저점을 기록하고, 출근시간 무렵 한 차례 오르내립니다. 그리고, 퇴근시간을 전후로 전력 수요는 일일 최고점에 다다릅니다. 이러한 그래프의 형태를 우리는 카멜 커브(Camel Curve)라 부릅니다. 마치, 쌍봉 낙타와도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죠. 수요가 이처럼 변하는 만큼, 전력의 공급 역시 이에 맞춰 증감을 조절해야 합니다. 수요 변화를 좇지 못해 수요보다 전력 공급량이 줄어들면 전국적인 대정전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수요 변화는 무시한 채 말도 안 되게 과공급이 이뤄지더라도 전력망이 그 부하를 이겨내지 못해 정전이 발생하거나, 쓰지도 않을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해 버려지면서 석탄이나 LNG 등의 연료비가 고스란히 우리들의 전기요금에 녹아들게 되죠.

그런데,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은 대체로 한낮에 집중됩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 태양광 발전량이 늘어나고, 해가 짐에 따라 점차 발전량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를 간헐성이라고 부르고, 이처럼 발전량이 변화하는 태양광이나 풍력을 떼어내어 VRE(Variable Renewable Energy, 변동성 재생에너지)라고도 부르죠. 이러한 간헐성을 두고, 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쪽에선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해친다'며 '늘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우리의 전력 수요 곡선의 변화를 봤을 때,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대체로 쌍봉 낙타의 혹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수요가 존재하는 시간에 발전량 또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간헐성으로 인한 전력망의 부하를 걱정하기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현실은, 전국적 차원에선 너무도 미약한 '새 발의 피' 수준입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국가 차원의 '주요 발전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위의 카멜 커브는 덕 커브(Duck Curve)로 변화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커지면서, 도리어 낮 시간 전력망의 부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방향으로 그래프가 그려지는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위의 전력망 부하 그래프는 호주의 AEMO(Australian Energy Market Operator, 호주 에너지 시장 운영국)의 데이터를 활용해 그려졌습니다. 해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증가할수록 한낮 전력망 부하는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더욱 늘어나게 되면, 줄어든 부하로 만들어지는 그래프 상의 골짜기는 더욱 깊어질 전망입니다. 오리 모양의 덕 커브를 넘어 캐니언 커브(Canyon Curve)의 형태를 보이게 되는 것이죠. 전력 수요가 재차 증가하는 퇴근 시간 무렵, 급격히 줄어드는 태양광의 발전량을 받쳐 줄 다른 발전원이 신속하게 전기를 생산해 공급해야 하는 것을 넘어, 한낮의 깊은 골짜기 또한 전력망의 불안정성을 높이게 됩니다.

하루 중의 전력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놓고 보더라도, VRE의 변동성과 간헐성이 갖는 한계는 분명히 나타납니다. 앞서 2022년 4월 25일, 시시각각 달라진 수요와 그에 따른 발전량의 변화를 살펴봤다면, 이번엔 2022년 한 해 동안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연초, 추위와 함께 높은 월별 전기 소비량은 봄이 찾아오며 점차 줄어들다 7, 8월 폭염과 함께 다시 급증합니다. 그러다 가을이 찾아오면서 다시금 전기 소비량은 줄어들고, 겨울과 함께 증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추이는 수요의 변화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봄철부터 초여름까지 발전량이 늘어나다 날이 더워지고, 장마가 찾아오는 여름철에 발전량이 줄어드는 것이죠.

그런데, VRE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내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줄이거나 제한한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연료비 0원'인 VRE를 줄이고, 대규모의 건설비와 상주 운영 인력에 연료비까지 투입되는 다른 발전원으로 이를 대체하는 일은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저렴한 전력 공급이라는 경제성의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최대한 늘리고, 수요를 초과하거나 전력망의 안정성을 위협할 만큼 부하를 떨어뜨릴 수 있는 발전량은 별도로 저장해두거나 추가적인 수요를 창출해내는 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등을 이용한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이를 저장하거나, 수요를 초과한 만큼 가격이 저렴해진 청정 전력을 활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거나, 거의 무료에 가까운 요금으로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그 결과, 2015~2022년 에너지전환 기술 분야의 투자 또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수송부문 전기화와 열 공급의 전기화에 집중됐습니다. IRENA(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국제재생에너지기구)는 2015년 6,620억달러 규모였던 에너지전환 기술 분야 투자가 2022년 1조 3,080억달러로 7년 만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2015년이나 2022년이나 주된 분야는 재생에너지였지만, 가장 빠른 속도의 증가세를 보인 분야는 수송부문의 전기화였습니다.

그럼, 이러한 투자가 어디서 이뤄졌을까요. IRENA는 2013~2022년, 10년간 지역별 투자 분포를 분석했습니다. 2022년, 유럽과 북미 지역의 투자는 글로벌 재생에너지 투자의 24%를 차지했습니다. 소위 '서구 선진국'으로 부르는 두 지역을 합친 투자규모가 전 세계 투자규모의 4분의 1이 채 안 됐던 겁니다. 또, 지리적 위치에 상관없이, 개발도상국 및 신흥시장국으로 분류되는 120여개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전체의 15%에 그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분명, 동아시아의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이 70% 육박할 정도인데, 소위 동아시아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는 한국과 일본은 우리가 알다시피 '세계 선도 수준'은 분명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 위와 같은 그래프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의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

.

2015~2023년 지역별 청정에너지 분야의 투자를 살펴봤을 때, '지역 단위'를 뛰어넘는 단일 국가가 하나 존재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2023년, 중국의 청정에너지 투자 규모는 무려 5,660억달러로 EU 회원국 전체(4,340억달러)의 투자 수준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최근 5개년(2019~2023년) 연간 투자 증가액을 보더라도, 중국의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무려 1,840억달러가 늘어, EU(1,540억달러)는 물론, 미국(970억달러)과 일본(280억달러), 인도(190억달러) 등과 비교 자체가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저탄소 에너지 기술 RD&D 예산을 비교해봤습니다. 혹시나 '재생에너지 올인'을 하고 있는 국가와의 비교에 불편함을 느낄 분들을 고려해 현재 대규모 원전을 가동 중이거나 가동했던 한국 외 5개국과 함께 예산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근 10년(2013~2022년), 저탄소 에너지 기술 RD&D 예산 규모는 꼴찌 수준입니다. 올해 대폭 삭감된 국가 R&D 예산이 무색하게, 이미 우리는 꼴찌였던 것이죠. 올해는 꼴찌였던 예산이 더욱 줄어든 것이고요. 녹색성장을 외쳤던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탄소중립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저탄소 에너지 기술 RD&D 예산은 주요 선진국 대비 '제자리걸음'을 거듭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22년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입한 돈은 1조 3,080억달러. 앞으로 2050년까지 계획된 에너지 부문 투자규모는 무려 103조달러에 이릅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사탕발린 프로파간다가 아닌, 국가와 산업계가 총력을 기울이는 '쩐의 전쟁'이 이미 진행 중이고, 앞으로 그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 중 34%는 여전히 화석연료 공급에 향할 것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석탄을 LNG로 대체하거나, LNG를 통해 수소를 생산, 공급하는 등 여전히 일부 화석연료를 계획에 담고 있는 나라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발전용 재생에너지에만 전체의 17%가, 전력망과 에너지 유연성에 10%, 에너지 절감 및 효율 개선에 23%가 투입될 전망입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이라는 큰 틀에 103조달러의 절반 이상이 투입되는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IRENA는 이 정도의 투자로는, 이러한 투자 포트폴리오로는 1.5℃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봤습니다. 당장 전체 투자규모는 2050년까지 150조달러로 37조 달러, 연간 1.7조달러 늘어야 합니다. 또한, 이중 화석연료 공급에 들어가는 돈은 그 규모가 8% 수준으로 줄어들고, 에너지 절감 및 효율 개선에 전체 29%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또, 발전용 재생에너지에만도 26%가, 전력망 및 에너지 유연성에도 15%가, 그리고 최종에너지 사용에서의 전기화 확대에도 11%가 투입되어야 하죠.

개별 요소별 투자규모를 따져보자면, 전력망에는 현재 2023~2050년 3,150억달러가 투입될 계획인데, 이 규모는 6,300억달러로 배가 되어야 합니다. ESS와 같은 유연성 확보에도 현재 계획된 660억달러가 아닌 1,700억달러가 투입되어야 하고요. 태양광에는 현재 계획된 1,600억달러를 넘어 3,330억달러가 투입되어야 하고, 해상풍력은 1,390억달러에서2,830억달러로, 육상풍력은 1,590억달러에서3,560억달러로 투자 규모가 늘어나야 합니다. 효율 개선을 위한 투자의 경우에도 건물부문은 현재 계획된 4,180억달러에서9,350억달러로, 산업부문은 2,120억달러에서4,240억달러로 크게 늘려야 하고요.

기존 계획 대비 투자 규모가 줄어도 괜찮은 분야는 일부 수송부문 관련 항목뿐이었습니다. 수송부문의 전동화엔820억달러가 아닌 500억달러로, 수송부문의 효율 개선엔 2,010억달러가 아닌 1,470억달러가 투입돼도 1.5℃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IRENA는 내다봤습니다. 다만 전기차 충전 인프라엔 현재 계획된 1,180억달러가 아닌 3,14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하지만요.
 
[박상욱의 기후 1.5] 화석연료와 청정에너지, 점차 벌어지는 투자 격차
비단 IEA나 IRENA 같은 국제기구의 제언을 넘어, 세계 각국은 에너지전환에서의 패권 확보를 위해 점차 투자 확대 계획을 발표하거나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흐름에 제대로 된 첫발조차내딛지 못한 모습입니다. 국제사회 차원의 '쩐의 전쟁'에서 중요한 '실탄'은 결국 제대로 된 에너지 가격에서 비롯됩니다. 국가가 거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에너지 가격은 여전히 왜곡된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장 예나 지금이나 주력 발전원인 석탄의 가격과 전력 가격의 변천사만 봐도 그렇습니다. 1990년, 톤당 4만 740원이던 무연탄 가격은 2022년 17만 9,380원으로 4.4배가 됐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저압·고압 평균 전력 가격은 kWh당 52.9원에서 120.5원으로 2.3배가 되는 데에 그쳤습니다.

이런 왜곡이 지속된 결과, 초기 대대적인 투자가 불가피한 재생에너지는, 이후 규모의 경제에 따라 '연료비 0원'이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음에도, 제때 확대되지 못했습니다. 세계 평균으로 보더라도, 우리와 입지 조건이 비슷한 해외 선진국을 보더라도, 이젠 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가장 저렴한 화석연료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해졌음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가장 비싼 발전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죠.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는 정당 또는 정치인이 에너지 가격의 정상화 또는 합리화를 외면한다면, 이는 실질적인 공약이 아닌 흰소리에 그칠 뿐입니다. 반대로, 원자력발전 확대를 외치는 정당 또는 정치인이 신규 원전이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의 부지와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외면한다면, 이 또한 실질적인 공약이 아닌 흰소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