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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입력 2024-02-05 08:00 수정 2024-02-05 10:2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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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1)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오늘날 에너지전환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표현 중 하나입니다. 기존 화석연료에 기반한 국가나 지역, 대규모 산업계에 이르기까지 '탈 화석연료'로 규정될 수 있는 에너지전환 초기, 에너지전환에 대한 흠집 내기는 계속됐습니다. 발전단가 측면에서 보더라도, 재생에너지는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구를 위해 이를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공급망 리스크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거 봐. 결국 가스나 석탄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니까'와 같은 회의론을 부추겼죠.

하지만 수십년간 지속된 에너지전환은 결국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고, 이젠 거스를 수 없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됐습니다. British Petroleum을 뜻하는 전통의 Oil & Gas 기업인 BP는 스스로 'Beyond Petroleum'을 외치고 있습니다. 초기 R&D 수준을 넘어 대규모 상용화에 성장한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는 화석연료의 발전단가보다 저렴해졌습니다. 당장 연료비가 공짜인 햇빛과 바람을 활용하기에, 발전기술의 발달은 즉각적인 단가 하락으로 이어졌죠. 공급망 리스크와 에너지 안보의 위기 또한 에너지전환을 더욱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했습니다. 에너지원의 수입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도록, 재생에너지는 각국의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그 결과, 한 세기 넘게 이어져 온 Oil & Gas의 영향력은 비로소 뚜렷한 하향세에 접어들게 됐습니다.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온갖 종류의 에너지 가운데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뜻하는 '최종에너지에서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0년 12.5%를 기록했고, 같은 해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28.6%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무탄소 에너지인 원자력까지 포함할 경우, 오늘날 화석연료의 비중은 60% 가량 까지 떨어집니다. 해마다 증감을 거듭하면서도 결코 '주력 에너지원'의 지위를 놓지 않고 있던 화석연료는 21세기 이후 그 비중이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물론, 수십, 수백 년간 이어졌던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형태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에너지전환이 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고, 이미 그 방향이 정해졌다는 사실은 또 다른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에너지입니다. 그러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만큼, 일은 에너지로,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배출로 이어졌죠. GDP의 성장이 곧 이산화탄소 배출의 증가를 의미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GDP와 이산화탄소 배출 사이의 상관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디커플링(Decoupling)이 이미 현실로 찾아온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이미 21세기 전부터 경제성장과 이산화탄소 배출의 디커플링이 이뤄진 미국과 EU 등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이젠 한국과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디커플링은 현실이 됐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에서조차 둘 사이 상관성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결과, 전 세계 평균으로 보더라도 'GDP가 늘어나려면 온실가스 배출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 이야기'로 남게 됐습니다.

이는 분명, 우리와 우리의 미래 세대가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2050 탄소중립'에 있어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를 칭찬하기엔 너무도 부족합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미 정책으로 만들어진 감축 노력을 넘어 각국이 공약으로 내건 감축 계획도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엔 부족하다”며 “지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전 세계가 합의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 3배 증가,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 2배 증가, 단계적인 탈 화석연료, 메탄 배출의 감축, 신흥개도국을 위한 재정 지원의 증가'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너지전환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인류는 Oil & Gas를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훨씬 전부터 석탄, 고래기름, 땔감 등 무언가를 태우며 살아왔기에, 태우지 않고 살아가는 전환은 마치 파괴적 혁신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대대적인 전환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산업 구조 자체가 뒤흔들리며, 그로 인해 대규모의 실직 사태가 벌어질 수도, 반대로 새로운 산업 구조를 받아들이기 위한 대규모의 투자와 고용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덕분에 그간의 지정학적 패권 구도까지 뒤바뀔 수 있는 그런 전환 말입니다. 때문에, 이런 전환에 대응하고자 세계 곳곳의 에너지 부문 투자에선 지각변동 수준의 변화가 이미 목격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2015년, 전 세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에 투입된 투자규모는 모두 1조 3,190억달러에달한 반면, 청정에너지 분야엔 1조 740억달러가 투입됐습니다. 세부 분야별 투자규모 순서로 따지면, 석유-천연가스-저탄소 전원-에너지 효율-전력망 및 전력 저장-석탄-전기화-저탄소 연료 순이었죠. 그러나 불과 7년만인 2022년, 화석연료 투자규모는 1조 20억달러로 줄었고, 청정에너지 투자규모는 1조 6,170억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세부 분야 순위 또한 저탄소 전원이 전체 분야 중 1위를 차지했죠.

당장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결과입니다만, 전 세계 투자의 흐름은 이랬습니다. 개별 기업뿐 아니라 국가가 실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말이 아닌 돈의 방향을 봐야한다는 점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해 에너지전환에 소극적인 나라도 일부 있음에도 이런 결과를 이끈 나라는 어디일까요. 청정에너지 분야의 투자 급증이 돋보이는 곳은 EU와 중국입니다. 탄소중립에 가장 적극적인 지역과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국가가 같은 지향점을 보인다는 점은 매우 이색적인 부분입니다.

IEA는 〈World Energy Outlook 2023〉 보고서에서 “중국이 글로벌 에너지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2022년 전 세계 신규 풍력 및 태양광발전 설치량의 절반,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청정에너지 강국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습니다. 과연 중국이 그저 그간의 온실가스를 비롯한 각종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만회하기 위한 '참회의 투자'를 하는 것일까요.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 미세먼지도 그렇고, 우리나라 많이 고생시켰으니 그럴 만도 하지' 넋 놓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미 세계 각국은 새로운 에너지 패권을 두고 '말잔치'를 넘어 진검 승부를 벌이는 중입니다. 여기서 검(劍)은 자본과 기술, 그리고 정책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IEA는 지금의 투자 규모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화석연료의 성장기가 끝났고, 투자 규모가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2050년 넷 제로 시나리오 상의 2030년 Oil & Gas 투자금액의 배에 달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결국, 더 많은 청정에너지 투자와 신속한 화석연료 투자 감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 가까운 미래인 2026~2030년 대규모의 투자가 요구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2050년 넷 제로를 달성하려면, 선진국은 이보다 적어도 5년은 앞서 넷 제로를 달성하고, 2050년엔 '넷 마이너스' 상태에 도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가장 많은 금액이 투입돼야 하는 분야는 바로 '에너지 효율 및 최종 사용'입니다. IEA는 적어도 7,30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어 청정 전력 분야에 6,100억달러, 전력망 및 저장 분야에 2,500억 달러, 청정 연료에 1천억 달러가 투입돼야 하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선언은 쏟아졌으나 실질적인 예산과 정책은 그에 미치지 못 했습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저탄소 에너지 기술 RD&D 예산은 10억 7천만달러로 일본(33억 6,480만달러)의 3분의 1이 채 안 됩니다. 얼핏 말잔치만 성대할 뿐, 대내적으론 막강한 Oil & Gas 자본의 로비로 청정에너지 투자가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미국은 무려 94억 5,760만달러로 우리나라의 9배에 달하죠. 이런 '뜨뜻미지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첨단클러스터 현황 및 맞춤형 지원계획 (자료: 기획재정부)

첨단클러스터 현황 및 맞춤형 지원계획 (자료: 기획재정부)

계획은 다양합니다. 연초 공개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계획을 보면, 이차전지, 수소, 미래차, SMR, 원자력수소 산업단지에 대한 지원 계획이 담겼습니다. 전 세계가 급격한 확충을 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합의하고 서명한 COP28 합의문에 담긴 '발전용량 3배 확대'의 주인공인 재생에너지의 경우, 'ㅈ'자도 찾아볼 수는 없지만요. 문제는 돈입니다. 단순히 계획만으로는 될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2024년 예산은 어떻게 됐을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올해 기후위기대응예산은 13조 8,259억원으로 최종 확정됐습니다.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른 재정 목표치보다 19%, 액수로는 무려 3조 4,155억원이나 적은 수준입니다. 정부는 이 목표치보다 적은 13조 9,598억원을 예산안으로 국회에 제출했는데, 기후위기특별위원회까지 마련한 국회는 이 예산을 1,338억원 더 깎았습니다. 무공해차 보급사업, 미래환경산업 육성 융자, 탄소중립전환 선도 프로젝트 융자지원 등 대대적으로 삭감된 이들 분야는 공교롭게도 글로벌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패권 확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부분이었습니다.

에너지전환은 이데올로기적인 표현도 아닐뿐더러, 소수가 벌이는 캠페인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를 계속 부정하고, 외면한다면,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실패를 넘어 새로운 에너지 시대에서의 패권 확보 실패, 대외 에너지 종속의 연장 및 심화라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문명의 전환' 급인 에너지전환, 관건은 재원 마련에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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