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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맥주잔 대신 피켓…을지로 노가리골목에 무슨 일이

입력 2022-06-17 20:41 수정 2022-06-1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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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을지로 노가리골목은 1980년대부터 380원짜리 생맥주와 구운 노가리 안주를 팔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이 골목의 원조 가게로 통하는 '을지OB베어'가 장사를 접게 됐는데, 손님들 대신 이곳에 매일 모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밀착카메라 이희령 기자가 가봤습니다.

[기자]

을지로 노가리골목은 평일에도 손님들로 북적입니다.

골목 한쪽에 간이테이블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테이블엔 맥주와 안주가 아닌, 현수막과 서명운동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날씨가 선선한 저녁이라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요.

건너편에선 을지OB베어 관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한쪽에선 술잔을 들고 한쪽에선 피켓을 드는 풍경이 반복됩니다.

이곳에 모인 직장인, 학생,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요구하는 건 상생입니다.

[현욱/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 각자의 개성과, 또 서로 돕고, 또 어떤 때는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이곳을 수십 년 동안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42년 동안 자리를 지켜오던 원조 맥줏집 을지OB베어는 건물주로부터 임대차 계약 연장을 거절당했습니다.

임대료를 더 낼 테니 계속 장사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을지OB베어는 이후 명도소송에서 졌고, 두 달 전 새벽 갑자기 진행된 강제집행으로 철거됐습니다.

을지OB베어 가게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철제문이 내려와 있습니다.

이곳은 2018년 맥줏집 중 처음으로 '백년가게'에 선정됐습니다.

현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경고장만 남았습니다.

을지OB베어가 있던 건물 주인은 2014년 문을 연 만선호프 가게 회장입니다.

8년 사이 이 골목에서 만선호프 지점은 10곳으로 늘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가게들은 골목을 떠나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명으로 힘을 보탭니다.

39년생 옛 단골손님부터 03년생 청년까지 다양합니다.

[1980년대 단골손님 : 80년대부터 여태까지 변함없이 다닌 사람이야.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있는 이런 골목에 다 잡아먹는 이런 업자들이 나서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아.]

[이승찬/취업준비생 : OB프리미어(맥주)를 쓰는 데가 별로 많지 않았어요. 그거와 비슷한 OB베어가 여기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찾게 됐었죠. 이제는 먹기가 어려울 거 같아서 좀 속상하네요.]

이들을 지켜보는 시민들.

[방승현/대학생 :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사람들이) 신경 안 쓰는 모습이 보기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라도 이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항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술집 손님 : 어쨌든 시끄러워. 난 시끄럽다고.]

공감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습니다.

[임지원/만선호프 손님 : 진짜 왔을 때 만선호프밖에 안 보였거든요. '만선호프 거리'라고 보일 정도로. 그래서 저희는 만선호프를 선택했는데, 만약 선택지가 더 많았다면, 이것(연대 행사)도 봤으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벌써 두 달째,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고 을지OB베어를 찾아옵니다.

[안근철/직장인 : 제가 하는 일이 도시 재생, 도시 기록 이런 일이기도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직업에 대한 책임 의식 이런 마음도 들기도 하고…]

[이종건/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 서울미래유산이고, 백년가게고…이런 공간까지도 독점 가게로 인해 쫓겨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면 전국의 어떤 가게도 지킬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을지OB베어도 있고, 만선호프도 있고, 다른 가게도 함께 어울리는 그런 골목 생태계가 조성돼야…]

안타까운 일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흘려보내기엔 지금도 많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법만으로는 지키지 못하는 가치가 이 골목엔 있다고,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오늘도 말하고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이희령입니다.

(VJ : 김원섭 / 영상디자인 : 강아람 / 인턴기자 : 남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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