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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목숨 값은 얼마입니까?"...희망고문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입력 2021-11-21 08:00 수정 2021-11-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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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목숨 값은 얼마입니까?"...희망고문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사람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우리 사회에 아무리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이런 질문은 생경함을 넘어 금기의 영역입니다. 모든 것에 값어치가 매겨진다 해도 사람의 생명은 그 대상이 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목숨값이 정해져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장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그러합니다.

의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 포기해야 했던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치료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세포 치료제와 유전자 치료제 같은 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활용한 맞춤형 치료는 시한부 인생을 살던 환자들이 기대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려줬고 아예 완치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치료해도 다시 재발했던 혈액암이 말끔히 사라지고 근육에 힘이 빠져 평생 누워 지내야 했던 아이들이 일어서고 걷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기적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치료제 '킴리아(티사젠렉류셀)'를, 지난 6월에는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를 허가했습니다. 킴리아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이 없던 재발성·불응성 말기 혈액암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치료제이고 졸겐스마 역시 불치병이었던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자에게 한 차례 투여만으로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보이는 신약입니다. 두 치료제 모두 치료 대안이 없던 환자들을 구원하면서 기적의 신약으로 불립니다.
 
[취재썰]"목숨 값은 얼마입니까?"...희망고문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문제는 약값입니다. 졸겐스마는 투약에 25억 원, 킴리아는 5억 원이 필요합니다. 기존 약물로 치료가 듣지 않던 환자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지만 치료를 받고 싶어도 비용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급여 대상에 해당 약들이 올라가면 됩니다. 우리나라만 허용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졸겐스마는 미국과 영국 등 9개 나라에서, 킴리아는 미국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20개국에서 급여 등재가 됐습니다. 일본과 유럽은 허가와 동시에 급여가 인정됐고, 우리나라와 보험 급여 등재 방식이 비슷한 호주, 영국, 캐나다, 스코틀랜드는 허가 뒤 1년 이내에 신속 심사를 통한 급여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은 희망고문과 같습니다. 더뎌도 너무 더딥니다. 병마다 다르지만 졸겐스마와 킴리아가 필요한 아이들이 병을 발견한 뒤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1년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첨단신약이 허가된 뒤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이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약사의 신청 준비기간을 포함해 평균 2년이 넘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고 제약바이오 기업과 건강보험공단의 약가협상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와 고시절차까지 완료돼야 본격적으로 급여가 적용됩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치료제를 바라보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아이들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앓다 숨진 차은찬 군(JTBC 뉴스룸 캡처)급성림프구성백혈병 앓다 숨진 차은찬 군(JTBC 뉴스룸 캡처)
13살 은찬이도 그렇게 시간과 싸움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세 번째 재발한 급성림프구성 백혈병과 싸우다 지난 6월 하늘로 떠났습니다. 재발 이후 1년 넘게 킴리아 허가를 기다렸고 허가가 나자 곧바로 집을 팔아 약값 5억 원을 준비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치료를 받으려 해도 코로나에 출국길마저 막혀 오도 가도 못했습니다. 은찬이 엄마는 말합니다. “아이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질 않더라고요. 아이들이 이 약을 기다리다가 그 허가를 기다리다가 죽거든요. 근데 너무 느려요. 지금도 그냥 보고만 있어요.”

 
척수성근위축증 앓고 있는 14개월 희진양(가명)(JTBC 뉴스룸 캡처)척수성근위축증 앓고 있는 14개월 희진양(가명)(JTBC 뉴스룸 캡처)
14개월 희진이(가명)는 꺼져가는 생명의 끈을 잡고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척수성 근위축증이 하루 하루 숨통을 쪼여옵니다. 먹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손으로 들 수 있는 비닐장갑을 만지작 거리는 일 뿐입니다. 은찬이의 약 킴리아에 이어 희진이가 기다리는 졸겐스마도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역시 시간은 희진이 편이 아닙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더라도 생후 24개월 이내만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은찬이, 희진이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각각 200명과 150명에 달합니다. 약값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사람의 목숨값은 얼마입니까?” 우리 사회는 그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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