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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텍사스 빙하기? 욕속부달, 급할수록 차근차근 (상)

입력 2021-02-22 09:32 수정 2021-02-22 11:0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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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6)

'텍사스 빙하기'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만큼 미국엔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재난 영화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가 현실이 됐다고 보도할 정도입니다. 현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APCC(APEC 기후센터)는 최근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16일 폭설이 내린 텍사스 포트워스에 전선 수리를 위해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AP 연합뉴스〉지난 16일 폭설이 내린 텍사스 포트워스에 전선 수리를 위해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1월 말, 미국 서부의 300mm 넘는 폭우와 129cm 폭설을 시작으로 2월 초, 동부엔 90cm의 적설량이 기록됐습니다. 2월 중순인 현재 기준, 미국 본토의 73%가 눈으로 덮인 상태입니다. 미국에서 18년만에 가장 넓은 지역에 눈이 쏟아졌고, 콜로라도 유마(-41℃), 캔자스 노턴(-31℃), 오클라호마시티(-24℃), 텍사스 휴스턴(-10℃), 아칸소 리틀록(-18℃) 등 곳곳에선 최저기온 기록이 깨졌습니다. NOAA(미국 국립해양대기청)는 1899년 12월, 1905년 2월과 비교할 만큼 기록적인 추위라고 분석했습니다. 말 그대로 역대급 한파, 그것도 일부 지역이 아닌 넓은 미 대륙 전반에 걸친 한파인거죠.

APCC 기후변화감시과는 "극지방의 온난화로 지난 연말부터 강한 음의 북극진동이 발생했고, 연초 성층권 극 소용돌이가 평년보다 약해지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오기 쉬운 조건이 형성됐다"고 분석했습니다. APCC가 언급한 성층권 극 소용돌이는 우리가 '북극 제트', '한대전선 제트기류', '폴라 보텍스'로도 부르는 것으로, 최근 한반도에 갑작스런 한파가 찾아오게 된 이유와 같습니다. 여기에 태평양에선 라니냐 현상까지 지속되면서 미 대륙에 북극의 찬 공기와 함께 폭우와 폭설을 쏟아진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텍사스 빙하기? 욕속부달, 급할수록 차근차근 (상)

이 같은 중요한 기후변화 상황을 감시하는 APCC, APEC 기후센터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나라, 부산 해운대에 위치해있습니다. 인천 송도엔 UN 산하기구인 GCF(녹색기후기금)가, 부산 해운대엔 APCC가 있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계가 머리를 맞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대표인 의장은 한국인 이회성 의장이 맡고 있죠.

뭔가 멋지고 자긍심이 차오르는 듯 하다가도 정작 국내 상황을 보면 이 '국뽕'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 합니다. 도리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고 고생하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질 정도죠. 분명 탄소중립도 선언했고, 그린뉴딜도 선포했는데 왜 그런걸까요. 하나 하나 따져보겠습니다.

#과장은_불신의_단초
최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그야말로 '역대급'입니다. 물론, 충분하다거나 지나치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후위기 대응지수 전 세계 최하위권을 면치 못 했던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보다는 분명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여전히 '에너지 전환'에 대한 공감대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목표가 설정됐다면 이에 발맞춘 관심과 호응이 뒤따라야 정책의 지속가능성이 더욱 커질테니까요.

지난 5일, 신안 앞바다에서 열렸던 해상풍력 투자 협약식은 특히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를 짓기 위해 2030년까지 48.5조원이 투입되고, 이를 통해 1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며, 지역 주민들도 지분을 갖고 수익을 분배받는 사업이었으니 말이죠.

그런데 협약식이 끝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러한 내용이 아닌, 대통령 발언 속 '팩트' 논란이었습니다.

 
.(사진: 청와대).(사진: 청와대)


"여기서 생산되는 8.2GW의 전기는 한국형 신형 원전 여섯 기의 발전량에 해당하고, 서울과 인천의 모든 가정이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발언 직후 온갖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풍력발전단지에 지어지는 설비 용량이 8.2GW인 것이지, 실제 이 발전 시설이 지어졌을 때 그만큼의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단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거의 모든 발전시설들이 '△△GW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의 경우 햇빛이나 바람과 같은 자연 환경, 현상을 이용한 것인 만큼 설비 용량에 버금가는 실제 발전량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사실'은 '안티' 재생에너지 이론가들이 가장 단골로 꺼내는 카드 중 하나이고요.

설비 용량과 발전량을 구분하지 못 한 이 발언은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에 있어 '아찔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분명한 의미와 성과가 있을 것임에도 이를 한 순간에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 수 있는 순간으로 말입니다.

#이미_선_넘은_재생에너지
기후변화 싱크탱크인 엠버는 최근 EU 27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EU 27개국 일 발전량 중 풍력 및 태양광 비중 (자료: 엠버)EU 27개국 일 발전량 중 풍력 및 태양광 비중 (자료: 엠버)


위의 들쭉날쭉한 그래프는 EU 27개 나라에서 풍력과 태양광을 통한 발전량의 일별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맑은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모두가 드러난 데이터죠. 날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상반기, 발전량이 가장 적었던 날은 1월 24일이었습니다. 전체 에너지 발전량의 9.7%밖에 차지하지 못 했죠. 반면 20여일 후인 2월 16일엔 풍력과 태양광의 발전 비중이 전체의 33.6%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답은 그럼 "에이, 풍력이랑 태양광은 못 써먹겠네"일까요?

 
EU 27개국 전체 발전량 비중 추이 (자료: 엠버)EU 27개국 전체 발전량 비중 추이 (자료: 엠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2019년, 풍력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의 양이 석탄으로 만든 전기의 양을 추월한 데에 이어 2020년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을 비롯한 모든 화석연료 발전량을 넘어섰습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답은 그럼 "에이, 그건 유럽이니까 가능하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하고 날씨도 제각각이라 안 돼"일까요?

 
2019년 상반기, 2020년 상반기 EU 국가별 풍력 및 태양광 발전량 비중 (자료: 엠버)2019년 상반기, 2020년 상반기 EU 국가별 풍력 및 태양광 발전량 비중 (자료: 엠버)


2020년 상반기, 덴마크에서 만든 전기의 63.6%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직전 해인 2019년에도 무려 57%에 달했었죠. 코트라가 공개한 국가정보에 따르면, 덴마크는 "연중 바람이 많고 겨울에는 기후 변화가 심함"이라고 합니다. "연평균 강우량은 765mm이며 강우가 있는 날은 연간 약 171일"이라고 하고요.

풍력과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가 전체의 41.5%를 차지한 독일은 어떨까요. 코트라 국가정보에선 "온대성"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적혀있기에 1971년부터 2020년까지의 독일 평년 강우일수를 살펴보니 123일 가량이었습니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강수일수는 평균 107.2일입니다. 덴마크보다 바람은 덜 불 수 있겠지만 맑은 날은 더 많고, 독일에 비해 우리나라가 바람이나 일조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이미 2020년, 이러한 성과를 실제로 낸 사례가 존재합니다. 개별 국가별 사례뿐 아니라 EU 공동체의 개별 27개 나라들의 사례들로도 말이죠.

욕속부달(欲速不達), 서두르려 욕심을 내면 도리어 미치지 못 한다는 사자성어입니다. 국제사회에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제출하기 직전에서야 뒤늦게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그렇다고 그 계획과 실천마저 신중함 없이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탄소의 대기중 잔존 기간이 200년을 넘는다는 것(NASA는 이보다 더 긴 300~1000년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탄소와의 싸움에 말 그대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준비해 맞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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