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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회] 창작인가 도용인가? '솔섬' 사진 논란

입력 2014-02-09 23:52 수정 2014-02-0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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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같은 사진 같고 다시 보면 좀 달리 보이는데요, 이 두 장의 사진을 두고 우리나라 대기업과 영국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사이에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술계와 법조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두 장의 사진에 얽힌 다툼을 박성훈 기자 취재했습니다.

[기자]

청와대 춘추관 옆 갤러리에 흑백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모래 언덕인데 하얀 눈처럼 보이는 해변, 소나무 뒤로, 눈 쌓인 기와지붕이 겹쳐지는 고택.

영국의 유명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전시회입니다.

[마이클 케나/영국 사진작가 : 작업을 하면서 추상적으로, 더 단순해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수백 개로 시작했는데 3개로 줄였죠.]

그런데 이 케나의 사진 한 장이 우리나라 사진계에 저작권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케나 측이 대한항공 광고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며 3억 원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케나가 이 사진을 찍은 건 2007년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서였습니다.

[신민화/2007년 마이클 케나 가이드 : 폴라로이드를 저에게 보여줬는데 현실 속의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멋있더라구요.]

그로부터 몇 달 뒤 '파인 트리스(Pine Trees)'란 케나의 작품이 발표됩니다.

영문 작품명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소나무들'이지만 한국에 소개되면서 '소나무 섬'을 뜻하는 '솔섬'이라는 작품명이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2010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솔섬을 테마로 한 아마추어 사진가 김성필 씨의 작품 '아침을 기다리며'가 입선을 했고, 2011년 김씨의 사진이 대한항공 광고에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마이클 케나의 소송 권한을 위임 받은 공근혜갤러리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합니다.

[조상규/마이클 케나 측 변호사 (법무법인 정률) : 대한항공은 실질적으로 유사한 사진을 악의적으로 상업적으로 이용한 주체라는 것이죠.]

대한항공 측은 즉각 반박합니다.

[장선/대한항공 측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 그거 가지고 자기가 독점권을 주장한다고 하는 거는 저작권법의 기본적인 취지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케나의 '솔섬'과 김성필씨의 '아침을 기다리며', 두 작품은 얼마나 유사할까.

취재진은 중앙일보의 20년차 사진 기자와 함께 직접 섬을 찾아가 촬영해 보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차로 5시간 남짓 달린 뒤 도착한 강원도 삼척의 솔섬.

움푹 들어간 해안가 한가운데 흙이 쌓여 만들어진, 소나무 숲이 있는 아주 조그만 섬이었습니다.

케나가 사진을 찍은 지점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박종근/중앙일보 사진 기자 : 나무 모양이 비슷해지죠? 양쪽의 차이가 지금 더 크거든요. 이 위치일 것 같아.]

다음날 새벽, 취재진은 다시 섬을 찾았습니다.

노출을 다르게 설정해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박종근/중앙일보 사진 기자 : 1초 정도를 주니까 그게 거의 없어지면서 그래도 아직은 있어요. 물결이 눈에 보이는데 30초까지 내려가니까 물결이 없어지죠.]

케나의 사진과 대한항공이 사용한 김성필씨 사진에서 물결과 구름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박종근/중앙일보 사진 기자 : 마이클 케나의 사진은 보면, 아주 서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출) 시간을 길게 준 것 같아요. 대한항공 광고 사진은 그거보다 (노출이) 짧은 거 같아요. 그 사진이 갖고 있는 메시지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표절로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웁니다.

지난달 14일, 마이클 케나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저작권 침해 관련 소송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케나는 법정에서 대한항공 광고 사진이 자신의 작품과 거의 유사하다며 "촬영지점은 물론 실루엣 부분까지 크기가 똑같다”고 진술했습니다.

취재진이 두 사진을 겹쳐본 결과 섬과 실루엣의 모양이 95% 이상 일치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작권 침해에 해당될까?

사진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 봤습니다.

[김승곤/순천대 교수 : 이건 정방형이지만 이건 장방형을 이루고 있죠. 또 하나는 컬러가 들어있습니다. 또 사진만이 구사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비슷한 구도로 찍었다고 해서 도작이라고 얘기할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1년 일본에서 크게 논란이 된 '폐허'라는 사진 작품의 사례도 근거로 제시됩니다.

[김승곤/순천대 교수 : 이 건물하고 이 건물하고 똑같은 각도에서 찍은 거죠. 최고재판소에서 도작도 저작권 침해도 아니라는 판결이 난 거죠.]

작품의 독창성을 도용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안시준/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 케나의 사진들을 보시면 근경이 있어요. 여기도 근경이 있어요, 이렇게. 일부러 노출을 맞추고 또 이 반사를 없애고 해서 일부러 집어넣어요.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그런 것조차 없어요. 그래서 그걸 모방했다고 조차 할 수가 없죠.]

반면 두 작품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진동선/사진평론가 : 까만 옷을 입고 사진관에서 제 얼굴을 찍더라도, 제가 컬러를 입더라도 다 사람들은 저라는 것을 알아보죠. 이목구비의 윤곽선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거든요. 여기는 솔섬 자체가 얼굴로 말하면 이목구비에 속해요.]

외국 전문가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쟝 사를르 장봉/프랑스 사진 평론가 : (일반적으로 풍경 촬영에 대한 저작권이 보호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문제는 이 두작품이 너무 비슷하다는 겁니다. 지적재산권이 적용되는 작품이고 이것은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다릅니다. 색감과 시간이 다르지 않나요?) 각도가 같고, 그림자가 일치합니다. 또 둘 다 가운데 위치해 있지요.]

[반 덴 호드/네덜란드 사진 작가 : (대한항공에서 사용한 이미지가 케나 작품의 복제품이라고 보시는지요?) 만약 마이클 케나가 없었다면 그 이미지는 없었을 겁니다. 대한항공은 분명히 그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사용했을 겁니다.]

[앵커]

박성훈 기자, 취재 내용을 보니 피사체인 솔섬에 주목하느냐, 아니면, 촬영 기법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군요.

[기자]

네, 지금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핵심인 솔섬은 누가 봐도 거의 비슷합니다.

다른 요소, 즉 색깔과 형태, 예술적 표현 방식의 차이 등이 있는 것이죠.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셈인데요, 그래서 마이클 케나가 머물던 베이징을 연결해 직접 입장을 들어봤는데요, 잠시 보시죠.

[마이클 케나 :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저는 평생 창조적이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작품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만의 독창적인 작품에 대해서 말입니다.]

[앵커]

자신의 독창적 작품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케나의 얘기가 결국 자기 작품을 모방 당했다는 뜻인 거죠?

[기자]

네, 그렇죠. 저희가 논란이 된 김성필 씨도 직접 만나봤는데, 자신은 전혀 모방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김성필 : 저는 절대 아니라고 얘기를 하죠. 당연히 아니구요. 자꾸 마이클 케나와 연관이 돼서 제가 이렇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저는 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앵커]

예, 김성필 씨의 생각도 확고하군요. 정리해보면, 핵심은 비슷하고 디테일이 다르다는 건 양쪽이 다 인정하는 것 같은데 결론은 정반대네요.

[기자]

네, 그래서 취재진은 솔섬 저작권 논란을 다른 관점에서 더 취재해 봤습니다.

+++

지난해 초, 르까프란 브랜드로 알려진 화승 기업의 의류 CF입니다.

달리는 장면을 볼록렌즈로 보듯 이미지를 굴곡시켜 표현했습니다.

카메라를 회전시켜 얻은 이미지를 조합해 작품을 만드는 주도양 작가는 이 광고가 자신의 작품을 도용했다며 업체 측에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화승 측은 도용한 적이 없다고 맞섰습니다.

[화승 측 관계자 : 기법 자체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그런 이미지거든요. 주도양 작가의 작품을 본 적도 없고.]

결국 김씨는 소송을 포기했습니다.

[주도양/사진작가 :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법무법인을 섭외해서 작가 개인으로서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웠습니다.]

마이클 케나 역시 이번 '솔섬' 논란의 핵심이 모방한 작품을 기업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마이클 케나 : 제 문제 제기의 핵심은 모방작의 상업화입니다. 저는 모방작의 상업화가 찬양받아도 안 되고 허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인 측은 대한항공 광고의 사진 제목에서도 모방 의혹이 드러난다는 주장입니다.

[조상규/마이클 케나 측 변호사 : 솔섬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마이클 케나의 유명세를 이용한 작품이라는 걸 스스로가 입증하는 것이거든요. 그 장소는 지명이 속섬입니다. 마이클 케나가 찍었던 사진의 제목이 솔섬입니다.]

케나 측은 김성필씨의 다른 사진들에서도 케나 작품과 유사점이 발견된다고 지적합니다.

김씨는 풍경 촬영의 유사성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성필/아마추어 사진가 : 풍경사진에 있어서 이런 구도, 느낌이 비슷하니까, 마이클 케나를 많이 생각하고 찍지 않았냐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단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논란이 된 사진이 광고에 사용된 과정은 어떻게 될까.

일단 2010년 여행 사진 공모전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표절 여부는 검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사진공모전 심사위원 : (심사위원) 4명 중에서 이게 표절에 관련됐다 마이클 케나 얘기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광고를 제작한 HS애드는 김성필씨에게 저작권료로 항공권 두 장을 줬고, 다른 아마추어 사진가의 작품은 30만원에 저작권을 넘겨 받았습니다.

그 해 대한항공은 이 광고시리즈로 각종 상을 휩쓸었습니다.

대한항공측은 케나의 작품을 모방한 사실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전제로 한 케나와 공근혜갤러리측의 주장은 모두 터무니 없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케나의 솔섬 사진 이전부터 이미 같은 구도의 사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케나가 촬영하기 10여 년 전 옥맹선 작가가 거의 동일한 구도로 촬영했고, 케나가 사진을 찍은 해인 2007년 1월 박유필 작가도 같은 지점에서 촬영한 사진이 있습니다.

또 대한항공이 한 해 수억 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하면서 미술 작품을 거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저작권료를 아끼려고 표절 작품을 쓸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같은 풍경을 찍었다는 이유로 모방이라고 하는 건 법적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오히려 소송을 제기한 공근혜갤러리측이 '네거티브 마케팅'에 나선 것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대한항공측은 공근혜갤러리를 대상으로 명예훼손으로 맞소송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장선/대한항공 측 변호사 : 저작권이라는 것 자체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는 건데, '찍는 건 상관없는데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법적인 주장이 아닌 거죠.]

강원도 삼척의 아름다운 섬을 두고 벌어진 국제적인 사진 작가와 대한항공의 싸움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사진예술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앵커]

이번 논쟁이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날지 궁금해지는데 박 기자가 만나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어떤가요?

[기자]

일단, 제가 만나본 국내 사진 전문가들은 표절이 아니라고 보는 쪽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다른 판례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앵커]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가 사진 저작권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네요. 박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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