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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장관님 단잠 깨우지 말라?' 황당 지진 매뉴얼

입력 2016-09-22 18:48 수정 2016-09-2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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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주 지진'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어설픈 대응과 비밀 행정에 따른 문제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상청 내부의 지진 대응 매뉴얼은 그야말로 허점투성이였고, 원자력발전소가 몰려있는 지역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른바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연구보고서가 있었음에도 정부가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이쯤 되면 '경주 지진'을 단순히 영남지역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힘든 상황인데요.

오늘(22일) 국회 발제는 이 내용을 놓고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회의 모두발언 도중에, 지진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언급하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도대체 나라가 왜 이러냐!"하면서 버럭 화를 냈습니다. 어느 정도 정치공세의 성격이 담긴 비판일 겁니다. 그런데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니까, "아, 진짜 우리나라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장!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어제 심야에 어떤 취재원을 만나서 정말 엄청난, 세상이 뒤집어질만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당장 속보를 때려야 하는 정도의 뉴스입니다.

그런데 그게 팩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느라 여기저기 전화도 돌려보고 했더니, 자정 가까이 됐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앵커]

당연한 걸 뭘 물어요. 자정이 아니라 새벽이라도, 당연히 저한테 보고를 해야죠.

[기자]

제가 부장의 단잠을 깨워도 괜찮으시겠어요?

[앵커]

잠이 문제입니까. 속보 상황이면 더한 것도 해야죠.

[기자]

그냥 다음날 아침에 할게요.

[앵커]

그러다 다른 회사에 물 먹으면 양 반장은 혼나는 거죠. 제가 요즘 착해져서 그렇지, 가만히 안 놔둡니다.

[기자]

그러면 부장, 손석희 사장께도 새벽에 전화로 보고하시겠어요?

[앵커]

당연히 해야죠. 확인을 안해봤으면 당연히 해야죠.

[기자]

손 사장님이 새벽에 상당히 예민하시다던데…

[앵커]

그래도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자]

네, 그렇습니다. 하물며 저희 기자들도 이럴진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건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기상청에서 제출받은 < 국가지진화센터 운영매뉴얼 >입니다.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여기 21페이지에 보면요, < 지진 탐지 후 15분 이내 > < 15분 이후 > 이렇게 각각 어디에,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를 정리해놓은 게 있습니다.

먼저 지진 탐지 15분 이내, 행동 요령입니다. 기상청 지진분석반장이 "기상청장과 차장에게 전화보고를 하라"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있네요. "심야시간에는 가능한 익일 또는 당일 아침에 전화보고하라"고 말이죠.

자, 그러면 지진 탐지 15분 이후, 행동 요령입니다. 지진화산관리관이 환경부 장·차관에게 전화보고하라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사족이 달려 있습니다. "심야시간엔 가능한 익일 또는 당일 아침에 전화보고"하라고 말이죠.

자, 결국 이런 얘기입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기상청장님, 차장님, 우리 환경부장관님, 차관님, 밤에 단잠 주무시는데, 지진이 무슨 대수라고 그걸 밤늦게 보고해서 심란하게 만드냐, 그냥 다음날 아침에 전화해서 '아이고, 간밤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하고 말아라"는 겁니다.

시민들은 공포감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면서, 노숙 해야하나 하고 있는 상황인데, '장관님 청장님 깨울까봐, 어지간하면 다음날 아침에 보고하라'는 이런 매뉴얼을 버젓이 만들어놓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우리 정부입니다.

물론 이번 '경주 지진'은 규모가 워낙 엄청났기에, 기상청이 이 매뉴얼대로 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을 대하면서도, 그저 윗사람에 대한 심기 경호, 의전부터 생각하는 공무원 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서 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 까짓거 새벽잠 설치면 어떻습니까, 낮에 잠깐 눈 좀 붙이면 되잖습니까.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국회 기사 제목은요 < '장관님, 청장님 단잠 깨우지 말라?' 황당 지진 매뉴얼 > 이렇게 정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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